[횡설수설/이진]제대혈과 차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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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조선 중종 28년(1533년) 2월 11일 약방제조 장순손 등이 “상(上)의 건강이 이제 매우 좋아지셨으니 신들의 기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라고 인사를 올렸다. 임금이 먹은 약은 뭔지 모르게 해야 더 효험이 있기 때문에 이제야 말하겠다고 그들은 머리를 조아렸다. 자하거(紫河車), 바로 태반이었다. 태반은 동의보감에 혈기 보충, 심신 안정, 피부 질환에 좋다고 나와 있다. 대통령이 주사를 맞았대서 요즘 뜨고 있는 그 태반이다.

 ▷태아는 탯줄로 어머니의 태반과 연결돼 영양을 공급받는다. 태반이나 탯줄에 들어 있는 피를 제대혈(탯줄피)이라고 한다. 단순한 혈액과는 달리 소아암부터 치매까지 난치병 치료에 희망을 줄 줄기세포가 풍부하다. 출산 때 제대혈을 냉동 보관하면 나중에 본인이나 가족의 치료용으로 쓸 수 있다. 이를 수익사업으로 만든 것이 제대혈 은행이다. 소중한 제대혈을 함부로 사고팔지 못하도록 2009년 ‘제대혈 관리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의원이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었다.

 ▷2011년 이 법 시행 이후 제대혈을 사고팔거나 제대혈을 연구가 아닌 미용이나 노화방지용으로 쓰는 건 불법이다. 최근 분당차병원은 연구용으로 기증받은 제대혈을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과 그의 부친 차경섭 명예이사장 등 가족에게 9차례 불법 시술했다가 적발됐다. 차움의원은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지 않았는데도 노화방지·건강관리 전문의료기관이라고 광고하다 3개월 업무정지까지 받았다. 이곳 단골이었던 최순실과 박 대통령도 혹시 제대혈을 맞지 않았나 하는 억측이 생긴다.

 ▷차 회장 부자(父子)는 1960년 차산부인과를 시작으로 강남차병원 분당차병원 차의과학대 등을 잇달아 세웠다. 차 회장은 외환위기 때 320억 원을 장학금 등으로 내놓을 만큼 기부에도 적극적이었다. 부친은 1995년 ‘훌륭한 아버지상’을 받고 자부(慈父)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내년에 백수(白壽·99세)인 그가 네 차례 제대혈을 맞은 것은 아들의 효성 덕분인지 모르겠다. 명성을 쌓긴 어려워도 허물어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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