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영칼럼] 한·일 갈등 외교로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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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규제에 삼성·SK·LG 등 국내 간판기업이 치명타를 맞았다.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급소’를 노렸다.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 수출규제로 정곡을 찔렀다. 기습적인 핵심 제재는 한국의 아킬레스건을 정밀 타격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한국 주력 산업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국내 기업 등에 칼을 꽂는 행위였다. 기업은 방패도 없이 전선에 내몰린 처지다.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돌입한 기업은 자칫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까 전전긍긍한다.

한국 IT 기업은 일본산 첨단소재와 부품을 조달할 길이 끊겼다. 제3국 공장을 통한 우회적인 재고 확보도 일본의 수출 통제망에 막혔다. 국내외 구매처에서 ‘이삭줍기’식으로 급한 물량을 조달해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 기업 총수가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성과는 별무다. 대체 소재를 테스트하고 공정에 투입하는 데 3~6개월이 걸린다. 일본의 제재는 장기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적 해결이나 근본 대책이 없다면 반도체 라인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2차 수출규제가 예고된다. 조만간 일본이 추가 제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리라는 관측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 물자 수출 우대국 목록)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850여개의 전략 물자에 대한 수출규제가 생겨 피해 범위가 확대된다. 일본산 소재·부품 의존도가 높은 대다수 한국 기업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국내 자동차·전기전자·기계·금속·정밀화학 등 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전략 물자뿐 아니라 일본과의 기술·지식 교류도 제한된다. 사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국내에서 번지면 일본 기업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는다. 양국 간 자유무역에서 얻는 공동의 이득이 상실되는 파국이 불가피하다.

일본의 소재·부품 무기화는 자유무역을 지키겠다는 G20에서의 약속과 정면 배치된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국제분업체계를 깨는 악의적 조처다. 일본(소재수출) → 한국(부품생산) → 미·중·EU(제품화)로 이어지는 국제가치사슬(GVC)이 단절 위기에 직면한다. 동북아판 슬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의 쇠퇴)이 현실화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5일 “일본의 수출규제가 글로벌 무역 규칙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가치사슬상 공급 안정성·산업 안보가 한국 산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공급망 붕괴에 대비한 안전장치 마련이 급선무다. 일본에 편중된 수입 품목을 중국·대만·러시아로 다변화하는 노력은 속도전이 필요하다. 정부는 첨단 신소재·부품·장비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100대 핵심소재·부품 육성 예산을 올해 1조5000억원대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구호에 그쳤던 소재 국산화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대기업 참여 허용 등 장기적 로드맵 마련과 추진이 요망된다.

‘삼류정치’ 덫에 기업만 만신창이 된다. 적폐 청산·외교 실패가 낳은 재앙을 기업이 뒤집어써서는 곤란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강대강 대응은 한일 양국 모두에 자충수가 된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등 한일 과거사 문제는 실용 외교로 풀어야만 한다. 국회·정부·기업 모두가 대일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파국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정부는 특사를 파견하고 외교 채널을 가동해 일본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 동시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안보를 명분 삼아 한국에 수출규제를 가하는 행위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 일본의 몽니로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세계 경제에 해가 된다는 점을 국제 여론에 호소해야 할 것이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8호 (2019.07.24~2019.07.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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