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Konglish가 자랑은 아니다
요즘 콩글리시(Konglish)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매우 커진 것 같다. 2015년 12월, 디지털타임스가 매주 목요일마다 뉴스 속의 콩글리시를 키워드(Key word)로 한 시사-교양적인 칼럼 [뉴스와 콩글리시]를 게재한 이후로 한국식 엉터리 영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커졌다.
나는 오래전부터 신문·방송에 등장하는 콩글리시에 주목해 왔다. 잘못된 말이라고 하더라도 특정 집단 내에서 널리 쓰이고 구성원이 서로 이해하고 있으면 그것은 좋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항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한국식 영어의 유래나 뿌리 등 문화적 배경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잘못된 말의 뿌리를 알고 쓰자는 것이다. 둘째로 콩글리시가 바깥 세계에 나가서는 통용되지 않으니까 제대로 된 영어를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미국의 어떤 가게에 가서 쇼핑을 할 때 ‘이거 디씨(D/C) 좀 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이거 좀 깎아 주세요.’라는 표현은 ‘Can you give me a discount?’처럼 디스카운트(Discount)라고 해야지 우리 식으로 디씨(D/C)라는 말을 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지난 가을에는 『콩글리시 찬가』라는 재미있는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외국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저자 신견식은 여태껏 잘못된 영어, 일제의 잔재로만 취급되던 콩글리시를 우리나라 근대사뿐 아니라 수많은 세계 언어가 교류한 흔적이 담긴 문화유산으로 격상해 보자고 제안하였다.
콩글리시를 우리 사전은 ‘한국식으로 잘못 발음하거나 비문법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콩글리시 찬가』의 저자는 콩글리시란 첫째로 한국 사람들이 외국어로 구사하고 있지만 원어민의 발음, 문법, 어휘 규범에서 벗어난 영어, 둘째는 한국어에 들어온 차용어(借用語)로서 영어의 본뜻이나 본꼴과 달라진 어휘를 일컫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일보2017. 6. 24.에는 옥스퍼드 대학 한국학 및 언어학과 교수 지은 케어사람 이름이다가 쓴 [콩글리시도 우리의 소프트 파워다]라는 글이 실렸다. 칼럼의 요지는 이렇다. 스킨십 등 많은 콩글리시 단어들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올라 시민권을 얻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파이팅(Fighting)은 콩글리시 단어 가운데서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낱말인데 한류 붐을 타고 세계인들에게 소개되었고 영어매체에서도 공공연히 우리식으로 쓰는 경우도 생겼다. 이 단어 역시 옥스퍼드 사전에 기재될 확률이 높아졌다.
이런 콩글리시는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한국인들의 삶과 함께해 온 콩글리시에 대해 지나치게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잘못된 단어라는 족쇄를 씌우는 것은 자해(自害)행위다. 따라서 콩글리시는 우리의 실정과 필요, 그리고 구미에 맞는 문화이고 우리의 소프트 파워를 반영하는 성과물이라는 자부심을 갖도록 하자.
사실 이 대목은 너무 나간 감이 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 그것이 자랑거리나 문화적 성과물이라고 칭송까지 할 수야 있겠는가? 좀 당당해서 좋기는 하겠지만.
조선일보는 2017년 하반기부터 재미저술가 조화유의 칼럼 [한국영어와 미국영어]를 싣고 있다. 많은 영어 학습서를 쓴 조화유는 필자의 오랜 친구다. 동양통신 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 MBC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공군(空軍) 관련 외화의 우리말 더빙을 듣고 잘못 번역된 내용, 특히 공군 계급을 지칭하는 단어의 오역을 여럿 지적하는 편지를 방송사에 보내서 관계자들이 놀랐다.
이를 계기로 그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외화 번역 알바를 맡기도 했다. 조화유 칼럼은 왜 때애드(THAAD)는 사드로 쓰고 조오셉(Josheph)은 조지프, 붓쉬(Bush)는 부시로 쓰고 있는지 비판한다. 원어의 소리를 들어보지 않고 우리말 외래어 표기 규칙만 고집한 결과다.
문화는 상호 교류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문화도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흐른다. 영어는 세계 공용어가 된 지 오래다. 퀸스 잉글리시라는 말처럼 표준 영어가 물론 존재하지만, 국제무대에 가 보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다 자기식의 영어(His own English)를 말한다. 어법이나 발음이 모두 제각각이다. 소통이 잘 되느냐가 문제지, 굳이 현지인 흉내를 낼 것도 없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나 호주인이라고 해서 똑같은 영어를 쓰는 것도 아니다.
나라마다 우리 같은 콩글리시는 어디에나 있다. 일본식 영어는 재플리시(Japlish)라고 하고, 중국식 영어는 칭글리시(Chinglish)이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싱글리시(Singlish)를 쓰고, 인도사람들은 힝글리시(Hinglish)를 쓴다. 다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콩글리시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 외국인과 소통할 때는 영어다운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 『뉴스와 콩글리시』의 궁극적 목표가 여기에 있다.
콩글리시가 우리의 사회적·문화적 산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문화유산’이거나 ‘소프트 파워’라고 내세우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나쁜 말도 널리 쓰이면 사전에 오르는데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다고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예컨대 한국식 영어 ‘Fighting’이나 ‘Skinship’이 ‘Chaebol’, ‘Gapjil’과 함께 옥스퍼드 사전에 오른다고 무슨 영광이 있겠는가.
2015년 세모에 디지털타임스의 조명식 사장을 만났다. [뉴스 속의 엉터리 영어], [저널리즘의 콩글리시]를 진단해 보는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다. 그해 12월부터 지금까지 단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게재해 왔다. 동아, 조선 등 많은 일간지에 시론과 칼럼을 써왔지만 이렇게 쉬지 않고 매주 한 가지 토픽을 찾아서, 그것도 가능하면 시사적인 아이템을 골라 글을 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이 일을 하였다.
‘Love what you do, and do what you love!’
나의 생활신조다. 나는 언론학자일 뿐 영어 선생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 안의 영어문장은 영자신문과 옥스퍼드 사전이나 기존 문헌에서 대부분 인용하였다.
이 책이 읽는 재미와 함께 글로벌 시대에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될 것을 기대한다. 아내 유은옥은 매주 초고를 읽고 코멘트해 주었다. 디지털타임스의 담당 데스크 김광태 부장과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권선복 사장이 책을 만드는 데 많은 수고를 해주었다. 특히 권보송 작가는 윤문과 교열에 힘을 보탰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18. 2. 김우룡
출간후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콩글리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올바른 영어와 글로벌 문화에 대한 관심이 팡팡팡 샘솟아 오르길 기원합니다!
권선복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대표이사
한국정책학회 운영이사
대한민국의 공용어는 한국어이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국어 이상으로 영어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영어가 쓰이지 않는 곳을 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는 영어에 노출되어 생활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영어 단어 중에서 올바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몇 개나 될까요? 미국에서 ‘애프터서비스 기간이 얼마나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상대는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미국인에게 ‘나는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클럽에 다니려고 해.’라고 말한다면 어떤 대답을 듣게 될까요?
이 책 『뉴스와 콩글리시』는 이렇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콩글리시’를 방송과 신문, 잡지 등 언론에서부터 찾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사용하던 단어가 ‘콩글리시’라는 사실을 단순히 알려주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콩글리시 단어의 어원, 실제 미국에서 사용하는 단어, 단어에 얽힌 우리 사회의 시사적, 문화적 단면들을 환기하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인문학적 교양을 제공합니다.
저자 김우룡 교수는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서울대 신문대학원과 미국 Columbia대학 언론대학원을 거쳐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좌교수, MBC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한국외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들려주는 ‘콩글리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렇기에 더더욱 인문학적 교양으로서 빛을 발하는 지식이 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세계화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가속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콩글리시’를 환기한 이 책을 통해 올바른 영어와 글로벌 문화에 대한 관심이 팡팡팡 샘솟아 오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