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천 개항장 대표 음식인 쫄면(왼쪽), 밴댕이회(오른쪽 위), 카페 싸리재 커피와 카페봉봉(오른쪽 아래). 인천은 쫄면의 성지다. 밴댕이회는 가시의 촉감이 날카롭지 않아 뼈째 곱씹으면 고소한 맛이 오래간다. 우유크림과 커피, 연유를 섞은 카페봉봉은 묘한 단맛이 난다.
인천 개항장 음식탐방
밴댕이회
5~7월 산란기로 가장 맛있을때
인천 사람들은 ‘순정이’라 불러
뼈째 씹다보면 ‘고소한 맛’ 일품
칼국수 골목
튀김가루 넣어 국물 걸쭉·달콤
직선형 아닌 고리형 골목 특이
신포국제시장은 ‘쫄면’ 탄생지
싸리재 카페
동네 터줏대감이 약방 겸 운영
일본식 상가 ‘복고풍 리모델링’
크림·연유 넣은 카페봉봉 인기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해 여름, 인천에 살며 예술기획을 하는 후배로부터 그가 지역전문가를 초빙해 여는 컴퍼니 안 기획전 ‘잇다, 있다’ 컬래버 전시회의 부대행사로 ‘시대를 잇다, 인천을 걷다’를 기획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천역에서 후배를 만나 차이나타운, 일본조계지, 신포국제시장, 답동성당 등 인천의 역사문화 현장을 소개하며 컬래버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까지 에스코트하는 도보여행을 통해 행사를 홍보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이 부대행사는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서울에서 온 참가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지역전문가와 함께했던 도보여행은 감동 그 자체였다. 행사를 함께 진행했던 인천골목대장 이성진 선생을 다시 만났다.
개항장 도보여행은 인천역에서 시작된다. 인천역 건너편 차이나타운의 출입문 ‘중화가 패루’가 있어 인천의 중국이 펼쳐지고, 개항장 도시임을 알게 해줬다. 이성진 선생을 따라 인천역 오른쪽 언덕에 있는 올림포스호텔로 올라갔다. 인천항은 물론 가까이 월미도, 그리고 멀리 영종도와 강화도까지 볼 수 있는 숨겨진 명소다. “이 언덕을 인천사람들은 해망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월미도와 영종도 앞을 통해 한양으로 들어가는 세곡선이 다녔고, 그래서 포대와 봉화대가 있었어요. 1884년 영국영사관이 들어섰던 곳이기도 합니다.” 1965년 인천 최초의 호텔인 올림포스호텔을 세웠고, 1967년 한국 최초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개설했다. 최근 건물 노후로 인한 안전진단을 위해 휴업 중이지만 올림포스호텔은 단출하면서도 단아한 모더니즘 건축의 특징을 갖추고 있어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천에 오셨으니 회를 드셔야죠. 밴댕이 계절입니다. 서해에서 1년 내내 잡히기는 하지만 5∼7월이 산란기로 지금 가장 기름지고 찰져서 맛이 제일 좋은 때예요.” 올림포스호텔에서 내려와 둘러보니 곳곳에 밴댕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손님이 많은 밴댕이집으로 들어갔다. “어쩌죠. 오늘은 신안에서 올라온 밴댕이예요. 우리 집은 생물만 팔아서 그래요.” 인천에서 30여 년간 밴댕이 장사를 했다는 김순이 사장의 말이다. “허허. 사람들이 의외로 좋아해 곳곳에 밴댕이집이 많이 생겨서 그럴 거예요.” 이 선생이 인천 출신 수필가 서부길의 ‘파일을 열며’라는 책을 소개했다. “서부길 수필집에 인천 갯벌과 도서 지역의 생태계와 어물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나와 있어요. 인천사람들은 밴댕이를 순정이라고 했데요. 작은 몸체에 비해 눈이 커서 그렇게 부른지는 모르지만 정겨운 이름 아닌가요.”
밴댕이회는 씹는 맛이 좋다. 뼈째 먹는 생선회로 가시의 촉감이 날카롭지 않아 곱씹어 즐기니 고소한 맛이 오래갔다. “여성들은 무침을 좋아하고, 남성들은 술과 함께 회로 많이 드세요.” 밴댕이 무침의 경우 얇게 채 친 양배추가 아삭해서 물컹한 밴댕이회와 함께 씹을 때마다 경쾌한 느낌이 들었다. 신안의 밴댕이를 함께 쓰는 이유를 김순이 사장에게 물으니 수심이 깊은 곳의 생선이 더 좋다는 본인의 생각과, 여러 곳에 밴댕이 골목이 형성돼 있어 인천 인근 바다에서 잡은 밴댕이로는 일정하게 공급이 유지되지 못할 때가 있어 그렇다고 한다.
차이나타운 중앙길로 걸어 올라가다 보니 우리나라 짜장면의 원조 마을이 나타났다. 1907년 ‘공화춘’에서 처음 짜장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화춘은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가 인천 중구청이 매입해 짜장면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화춘에서 사용된 물품들은 고 최응규 선생의 개인 박물관인 인천 근대역사박물관 2층에 더 많이 전시돼 있다. 이 선생은 일행을 화교학교인 중산중·고등학교 후문 앞 배다리사진관 사진카페 갤러리 헤이루체로 안내했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드뷔시의 ‘달빛’이 흐르고, 날이 맑으니 멀리 강화도까지 보이는 전망이 환상적이다. 그리고 사진작가 이상봉 선생의 부인이 정성으로 가꾼 수많은 화초가 옥상 전체를 에워싸고 내게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녹음의 계절이니 어서 즐겨라!’ 옥상 카페에서 이 선생과 인천 얘기를 나눴다. “바닷가면서 바다 보기 힘든 도시가 바로 인천입니다. 인천은 60년 동안 도시계획 자체가 전부 서울로만 향해 있어요. 그래서 바다 도시 인천의 개성을 볼 수 없게 돼버렸어요. 인천사람들이 바다를 보러 동해로 가잖아요. 그렇지만 인천의 골목 곳곳마다 특징이 있어요. 모두 다른 색 모양의 대문과 지붕들을 통해 자기 집의 존재를 보여줘서 파란 대문집, 빨간 지붕집이라고 불러요. 그렇지 않으면 고향, 자녀 이름을 불렀어요. 그런 골목이 많아요.” 반평생 아파트에서 산 나도 공감하는 말이다. 아파트는 동호수로 자기 집의 존재를 보여준다. 익명성이다. 그래서 이웃은 없다.
신포동 쪽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니 칼국수 골목이 나온다. 개항장 일대에서는 보기 힘든 고리형 골목이다. 개항기에 이 골목은 조선인 지계였다. 이 골목은 대체로 직선형이나 막다른 골목인 다른 개항장 골목과 차별된다. 내공 있는 분식집에서 떡볶이, 우무, 쫄면 등을 먹다가 매우면 칼국수로 달래주면 된다. 칼국수에는 특이하게 튀김가루가 들어가 있어 국물이 걸쭉하면서 달콤하다. 국물의 개운한 맛이 매운맛을 중화시켰다. 이렇게 먹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우무는 두껍게 썰려 있었는데 양배추와 양념장의 조화가 야무지게 매웠다. 가끔 이런 맛이 정답일 수가 있다. 늘 우리 곁에서 웃으며 우리를 항상 기다리는 음식, 바로 분식이다.
신포국제시장 골목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많은데 차이나타운에서 봤던 공갈빵과 신포시장의 대명사 닭강정이 대표적이다. 가끔 인천항에 호화 유람선이 정박하면 이곳에 외국인 단체손님으로 가득하다. “19세기 말 신포동에 있던 푸성귀전이 신포시장의 뿌리입니다. 중국인들이 채소를 팔았습니다. 주 고객은 일본인이었고요. 신포국제시장은 우리나라에서 쫄면이 가장 처음 소개됐던 곳이기도 합니다.”
시장에서 답동성당 언덕을 지나며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방대한 지식을 지닌 이 선생에게 골목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인천의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2000년부터 여기저기 다니면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2012년부터 골목을 좋아하는 ‘골목은 살아있다’ ‘골목을 보라’ 등의 팀들과 같이 다니면서 동네 사람들과 건축가, 디자이너, 그리고 특징 있는 골목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이들과 함께 사진전시회도 하고 새로 깨닫는 골목의 모습과 매력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골목은 제가 인천을 공부하는 매개가 돼줬습니다.”
이후 싸리재길이 나타났다. 과거 싸리재길은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고, 상권이 매우 좋았었다고 한다.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 등이 어울려 살아 ‘삼리채’라고도 했다. 초창기에는 포목점, 싸전, 쌀가게 등도 있었다. 1960년대에는 인천 최초의 백화점 항도백화점이 들어설 정도로 인천 상권의 중심가였다.
싸리재 터줏대감 박차영 선생이 운영하는 약방·의료기 가게 겸 카페를 방문했다. 안채는 한옥 살림집, 바깥채는 2층 일본식 상가로 주상복합 근대 건축물을 2013년 리모델링해 카페를 연 것이다. 소장품 축음기, 릴 덱, 영사기, 음반 3000장, 잡지 창간호를 포함한 서적 500권 등을 전시해 손님들이 요청하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취미로 모았고, 나중에는 소문을 타고 주변에서 가져다준 것이라고 했다. “수집은 나의 본성입니다. 아마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차 한잔 마시면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과 음악감상 행사도 열리는 지역 문화카페로 유명하다. “가끔 자료를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특히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이 오는데 돌아갈 때 웃으면서 ‘훔쳐가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고들 하십니다. 커피는 좋아하지 않았으나 25년 전 미국인 신부로부터 초대받아 처음 에스프레소를 마신 후 커피에 빠졌습니다. 전혀 상상치 못했던 맛이었어요. 다음 날 남대문 시장에 가서 그라인더를 사 가지고 와서 스스로 독학했습니다.” 70세 바리스타의 열정은 대단했다.
이곳에서 시그니처 음료 카페봉봉과 팥빙수를 즐겼다. 카페봉봉 맨 위의 차고 부드러운 우유 크림, 중간의 뜨거운 커피 그리고 바닥층의 연유를 살살 저으니 묘하게 단맛이 점점 진해졌다. 팥빙수는 우유 얼음과 연유를 사용해 빙수를 만드는데 물은 하나도 안 들어간다. 팥은 국산 팥을 쓴단다. 콩가루는 별도로 제공하며 위에 뿌리는 것은 젤리가 아니라 열대과일 말린 것으로 토핑한다.
싸리재 대표에게 카페봉봉의 탄생 과정을 질문했다. “독학입니다. 잡숴보신 분들이 다른 손님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부모와 이곳에 왔다가 저를 보고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편지를 남겨준 청소년 친구도 있었습니다.” 카페봉봉의 양을 늘려달라고 하는 손님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싸리재 커피’가 탄생했다. 그는 동작 하나하나를 허투루 하는 것이 전혀 없었다. 커피를 만드는 에스프레소 기계가 없는 이곳에서 그는 커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커피를 갈아내고 끓이는 모든 공정을 손으로 일일이 직접 해냈다.
전시공간이자 문화공간인 ‘잇다 스페이스’. 시대를 잇고 사람과 사람들이 공간을 통해 이어진다는 뜻에서 ‘잇다’라고 이름을 지었다. 1930년대 지어진 건물로 당시 일본 무역상의 소금 창고였다가 후에 여성전용 한증막으로 바뀐 후 책방으로 사용됐다. ‘동양서림 책방’ 간판이 지금도 남아 있다. “처음 이곳에 오기 위해 공사를 할 때 동네 어르신이 많이 들러 이곳의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책방을 끝으로 15년 정도 버려졌다가 목조형 작가 정희석 선생이 전시공간으로 직접 리모델링을 했다. “자주 들르시는 60대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그분의 어린 시절 음식을 재현하는 식문화 퍼포먼스와 시식과 관련된 오감의 전시를 현재 기획 중입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요리에 관심이 많은 정 작가는 식문화와 관련된 전시와 퍼포먼스에도 관심이 많다.
3시간 남짓 지역전문가와 함께 걷고, 먹고, 즐기는 식문화 탐방은 행복감을 안겨줬다. 인근 배다리 지역은 아쉽지만 다음을 위해 아껴뒀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밴댕이 골목’ 일요일 방문땐 먼저 전화로 확인을
인천 차이나타운은 국철 1호선 인천역 출구로 나오자마자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중화가 패루’를 지나 걸어 올라가면 된다. 밴댕이 골목은 중화가 패루의 옆 골목에 나란히 있다. 밴댕이 전문식당 만남의 집(032-766-8432). 첫째 주 일요일 휴무다. 사람이 많은 일요일에는 꼭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신포국제시장의 분식집 맷돌칼국수(032-762-5930). 칼국수가 대표 메뉴다. 우무와 쫄면은 똑 부러지게 맵다. 싸리재 길에 위치한 카페 싸리재(032-772-0470). 카페봉봉 시그니처 6000원. 여름 한정 빙수 7000원. 카페 인근 잇다 스페이스 갤러리(정희석 010-5786-0777)에서 매달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인천의 옛날 음식 재현을 위한 음식퍼포먼스와 전시를 계획 중이다. 인천 골목대장 이성진과 함께하는 도보여행 문의 010-4704-5415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