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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역사왜곡 논란 피할 수 있나[무비와치]



[뉴스엔 박아름 기자]

세종대왕이 박스오피스를 제패한 밀림의 왕 포효 속 조용히 극장가에 발을 내딛었다. 예매율 부문에서도 '라이온 킹'의 1위 자리를 빼앗지 못했다. '기생충'으로 필모 사상 천만 영화 4편을 달성한 국민 배우의 출격에도 국내 언론이 이리 잠잠한 것을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할까.

송강호 주연의 대작 사극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가 7월24일 여름시장을 겨냥한 국내 기대작 중 가장 먼저 개봉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故 전미선 애도 차원에서 모든 홍보 활동을 포기한 '나랏말싸미'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송강호)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 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나랏말싸미'에 대한 반응이 여러 모로 심상치 않다.



개봉을 하루 앞두고 "출판사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평전'의 내용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며 도서출판 나녹 측이 낸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모두 기각됐지만 이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가장 먼저 우려되는 대목은 역사 왜곡 문제를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다. 세종의 한글 창제를 소재로 한 '나랏말싸미'는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 사이 신미 스님(박해일)이란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발견해 영화화한 것으로, 한글 창제를 둘러싼 여러가지 설들 중 신미가 했던 역할에 주목한다. '억불정책'을 국시로 여겼던 유교 국가에서 천대 받았던 스님이 한글 창제를 주도했다는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그동안 세종 관련 드라마나 영화에서 익히 봐왔던 시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에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임금의 탈을 쓰고 개를 자처한 세종은 영화 속에서 낮은 자세로 백성들에 새 문자를 나눠주고 싶다는 뜻을 실천하려 한다. 모든 백성들이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나라, 중국을 능가하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세종의 위대한 업적을 조명하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세종은 더 쉽고 간편한 글자를 만들기 위해, 원칙주의자 신미는 "허접한 문자를 만들거면 시작도 안했다"며 천년 가야하는 문자를 만들기 위한 고집을 부린다. 세종은 신하들의 오해를 받으면서도 신미와 함께 은밀히 한글 창제를 추진한다. 나머지 한쪽 눈마저 실명당할 수 있는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세종은 신하들의 의심과 반발 속에서도 한글 창제를 온전한 자신의 눈으로 끝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즉 한글은 올곧은 성품의 세종이 두 눈과 맞바꾼 새 문자다.



문자를 만들려는 진짜 목적을 놓고 두 사람은 갈등을 빚는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키고 퍼뜨리는 것이 더 힘든 일임에 주목한다. 가까이 지냈던 세종과 신미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해버리는 지점도 바로 이곳이다. 어렵사리 한글을 완성하고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책으로 만들어 퍼뜨리는데 유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난제에 고초를 겪기도 한다. '평소 개처럼 여기는 중들과 한글 작업'이라니. 콧대 높은 유자들이 이를 반길 리가 없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여러 한글 창제설들 중 하나로 영화화됐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흥미로운 일이기에 '나랏말싸미'의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지만 문제는 '나랏말싸미'가 세종보다는 신미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는 영화라는 점이다. 세종의 고뇌, 인간적인 면모, 신하들과의 충돌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이 아닌 낯선 이면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결국 한글 창제의 공을 신미에게로 넘기려다보니 당연히 교육 과정에서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배우고 또 그렇게 알고 있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한글 창제의 숨은 주역 신미는 극중 역적의 아들로 소개된다. 세종은 영화에서 역적의 아들이자 천한 불자, 그것도 조선이란 나라에서 임금에게 다짜고짜 반말하는 스님과 손을 잡고,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한글을 완성해낸다. 이는 조선에서 과연 가능한 얘기였을까.



한글 창제 과정을 그리는 과정에 있어서도 영화를 미리 접한 관객들의 지적들이 잇따르고 있다. 세종은 소리 글자인 산스크리트어(범어)를 접하고 소리글자로 방향을 잡지만 '새 문자는 무조건 쉽고 간단해야 한다'는 원칙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기본자가 만들어지고 소리를 채집하고 분류하기까지 세종과 신미, 그리고 신미의 제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한글을 완성시켜나가는데 한글 창제의 시작이 팜파스, 티벳어, 산스크리트어였다는 걸 암시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이에 누리꾼들은 한글 창제 시초가 된 언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나랏말싸미' 측은 이 과정을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완성시켰다고 밝혔다. 또 영화 시작 전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다,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영화일 뿐이다'는 자막을 삽입하며 팩션 사극이라는 전제를 깔고 갔다. 하지만 대중매체의 파급력이 어마무시하다는 걸 감안한다면, 더군다나 소재가 우리 언어 한글이라면 당연히 논란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위대한 한글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을 놓고 역사왜곡 논란을 피해가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놓고 스님이 등장하는 '나랏말싸미'는 종교적 색채가 짙어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볼 만한 영화는 아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신미 스님이 한글 창제에 관여했다는 가설을 토대로 만든 '나랏말싸미'는 신미가 조선에 불교 국가를 세우려는 야심을 드러내는 모습과, 불교와 유교가 첨예하게 갈등을 빚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 논란을 뛰어넘을 만한 작품성이나 흥행성을 갖췄느냐다. 아무리 일각에서 논란을 제기하더라도 이를 무마시킬 결정적 한 방이나 무기가 있다면 영화는 빛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랏말싸미'에는 없다. 물론 '나랏말싸미'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 끝에 세상에서 가장 쉽고 아름다운 문자인 한글이 탄생하는 장면은 마치 출산의 과정처럼 감동적이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의미있는 장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교과서 같은 영화는 너무 정직하고 담백하려 한 나머지 심심한데다가 어렵기까지 하다. 쉽고 간단한 새 언어를 백성들에게 선물하려 했던 세종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랏말싸미'는 정작 관객들에게는 쉽고 간단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 과정 접근법에 있어 가장 쉽고 자극적인 방법인 '국뽕'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주, 조연 할 것 없이 배우들의 연기력은 압권이나 한글 창제설을 진지하게 전달하려는 고집이 너무 강한 탓에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 한다. 때문에 영화 자체가 지루하고 밋밋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故 전미선의 유작이라는 점을 뻰다면 어쩌면 '나랏말싸미'에 대한 아쉬운 반응들이 더 부각됐을지도 모른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천의 얼굴 송강호는 세종 이면에 있던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삭발 투혼을 발휘한 박해일은 신미의 단단함과 꼿꼿함으로 무게 중심을 꽉 잡아준다. 두 배우의 흡인력과 현명한 중전 소헌왕후 역 고 전미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단조로운 '나랏말싸미'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오락영화가 판 치는 올 여름 텐트폴 시장에서 유일하게 묵직함으로 승부보는 영화 '나랏말싸미'. 무겁고 진지한데다가 역사 교과서처럼 교육적인 메시지가 가득 담겼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과 연기대왕 송강호, 비록 시작은 창대했으나 MSG도 없이, 국뽕도 없이 무색무취로 심심하게 끝난다. 한 방이 있을 줄 알았던 송강호 주연작이기에 유독 더 아쉽다. (사진=메가박스 중앙 플러스엠 제공)



뉴스엔 박아름 ja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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