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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의 독립운동가 구춘선 선생

권선민 기자 | 기사입력 2007/06/29 [12:12]

2007년 7월의 독립운동가 구춘선 선생

권선민 기자 | 입력 : 2007/06/29 [12:12]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구춘선(具春先) 선생을 2007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31일까지 근대민족운동관(제2전시관) 내에서 개최한다.

▲  구춘선 선생.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 플러스코리아
1857년 함경북도 온성에서 태어난 북은 구춘선 선생은 중앙에서 군관으로 활동하였으며, 청일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선생은 만주로 이주한 한인의 열악한 생활상을 목격하고 온성의 두만강 건너편에 한인보호소와 병영을 설치하여 한인들을 보호하였다.

선생은 용정중앙교회를 설립하여 기독교를 전파하는 한편, 1909년에는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항일애국정신을 고취시키고 1913년에는 간민회(墾民會)를 조직하여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중국과 일본의 세력이 크게 미치지 못하는 왕청현(汪淸縣) 하마탕(蛤蟆塘)에 한인마을을 개척하고 하마탕교회와 학교를 설립하여 재만한인의 생활안정을 돕는데 기여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선생은 북간도의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국내에서 전개된 3·1만세시위운동을 계기로 한인들과 함께 3월 13일 정

오 룽징(龍井)에서 3·13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보다 체계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선출된 선생은 대한국민회를 북간도지역 최대규모의 독립운동단체로 이끌어나갔다.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고자 국민회군을 조직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 국내와의 연계투쟁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북간도지방에 조직된 많은 무장독립운동단체와 힘을 합쳐 공동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에 독립군 연합부대는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둘수 있었다.

청산리전투에서 참패한 일제가 간도참변(間島慘變)을 자행하자 러시아로 이동한 선생은 그후 다시 만주로 돌아와 왕청현 백초구(百草溝) 지역을 중심으로 신앙운동과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북간도를 중심으로 한인의 권익보호와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1944년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6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사진자료를 7월 한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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