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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립운동가` 이동휘, `철파엠`이 환기시킨 "지금 기억해야 할 주인공"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성정은 기자]

‘7월의 독립운동가’ 이동휘,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가 25일 아침 누리꾼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날 방송된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이하 철파엠)’ 검색 퀴즈 문제로 7월의 독립운동가가 출제됐고, 정답인 ‘이동휘(1873~1935) 선생’에 관심이 모아졌다. 김영철은 “요즘 일본 관련 뉴스가 많아서 잊지 않고 기억해야할 독립운동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며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을 소개했다.

이동휘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독립을 위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인물로 1873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 침략이 가속화되자, 1905년 보창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했으며 이후 대중의 자각과 구국운동을 위해 교육문화 활동을 전개했다. 또 기독교야말로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종교라는 신념에서 기독교 전도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이동휘 선생은 서북학회와 비밀결사 신민회 지도자로 구국운동을 전개하다 1911년 3월 안명근·양기탁 사건에 연루돼 일제총감부에 체포됐다. 인천 무의도에서 1년간 유배생활을 마치고 1913년 2월쯤 압록강을 건너 북간도로 탈출했다. 그는 북간도에서 한인자치기관인 간민회를 지도하는 한편, 북간도 각지를 순회하며 신교육 보급과 기독교 전도활동을 계속해 동포사회의 단결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러일전쟁 10주년이 되는 1914년에는 제2의 러일전쟁 발발에 대비해 항일광복전쟁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그는 만주와 러시아의 민족운동세력을 규합한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했으며, 북간도 왕청현 나자구에 사관학교를 설립했다.

1918년 이동휘 선생은 하바로브스크에서 김알렉산드라·유동열·김립·오성묵·오와실리·이인섭 등 동지들과 최초의 한인사회주의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당했다. 한인사회당은 기관지 발행, 군사학교 설립, 일본군병사들을 상대로 한 반제반전 선전, 한인적위대 조직 등을 추진했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총리직에 취임했다. 상해임시정부는 이동휘 선생을 비롯한 주요 각원들이 취임함으로써 지지기반이 훨씬 확대됐으며, 독립운동 최고기관으로서의 권위도 확립됐다. 권위와 제약을 과감히 개혁해 조국 광복을 이뤄내려고 했던 탁월한 행동력과 혁명성으로 진보적 민족혁명가로 꼽힌다.

정부는 이동휘 선생의 공훈을 기려 지난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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