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이 화제다.

25일 방송된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이하 철파엠)’ 검색 퀴즈 문제로 7월의 독립운동가가 출제됐다. 정답은 ‘이동휘 선생’이다.

▲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동휘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동휘 선생은 선생은 1873년 6월20일 함경남도 단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했다.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 침략이 가속화되자, 1905년 보창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했다.

선생은 기독교야말로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종교라는 신념에서 기독교 전도활동에 힘썼다.

이동휘 선생은 서북학회와 비밀결사 신민회의 지도자로서 구국운동을 전개했으며, 1911년 3월 안명근·양기탁 사건에 연루돼 일제총감부에 체포됐다.

이후 인천 앞바다에 있는 무의도에서 1년간 유배생활을 끝내고 1913년 2월께 압록강을 건너 북간도로 탈출했다.

선생은 북간도에서 한인자치기관인 간민회를 지도하는 한편, 북간도 각지를 순회하며 신교육 보급과 기독교 전도활동을 계속해 동포사회의 단결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18년 선생은 하바로브스크에서 김알렉산드라·유동열·김립·오성묵·오와실리·이인섭 등 동지들과 최초의 한인사회주의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당했다. 한인사회당은 기관지 발행, 군사학교 설립, 일본군병사들을 상대로 한 반제반전(反帝反戰)선전, 한인적위대 조직 등을 추진했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총리직에 취임했다. 상해임시정부는 선생을 비롯한 주요 각원들이 취임함으로써 지지기반이 훨씬 확대됐으며, 독립운동 최고기관으로서의 권위도 확립됐다.

선생은 안정된 체제에서 방안을 찾는 정치가라기보다는 혁명적 방법에 의해서만이 조국광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녔던 진보적 민족혁명가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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