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 인터넷서 화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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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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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섭 기자 lhsskf@imaeil.com]
7월의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 국가보훈처 블로그 캡쳐


'7월의 독립운동가'로 지정된 이동휘 선생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했다. 그 이유는 바로 25일 방송된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이하 철파엠)' 검색 퀴즈 문제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김영철을 대신해 SBS 정상근 기자는 "검색창에 '7월의 독립운동가'를 검색한 뒤 7월의 독립운동가를 맞춰주시면 된다"고 말했다. 정답은 '이동휘 선생'이었다. 이동휘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독립을 위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인물이다.

1873년 6월 20일, 함경남도 단천에서 출생한 이동휘 선생은 강직한 성품과 충성심으로 구한말 국방요충지의 진위대장까지 지냈다. 강직한 성품으로 부패한 관리들을 엄격히 처벌해 명성을 얻었던 선생은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군직을 사임하고 보창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운동을 위해 힘썼다. 또한, 대중들이 스스로 깨달아 구국운동에 나설 수 있도록 교육문화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1914년, 제2의 러일전쟁이 발발할 것을 대비하여 항일 광복전쟁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만주와 러시아의 민족운동세력을 규합한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했고, 북간도에 사관학교를 설립했다.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고, 이동휘 선생은 국무총리직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선생을 비롯한 주요 각원들이 취임함으로써 지지기반이 확대되어 독립운동 최고기관으로서의 권위를 확립하게 된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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