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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IMF "中, 개도국 빌려준 돈 공개하라"…차이나머니 정조준

신헌철 기자
입력 : 
2019-04-03 17:32:21
수정 : 
2019-04-03 19: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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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 IMF·세계銀 춘계총회서 공론화 예고

부채 내역·조건 불투명
이면계약 가능성도 커
개도국 디폴트 현실화땐
국제기구가 中부채 떠안아

中 강력반발…G2갈등 새불씨
사진설명
중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 개발도상국에 빌려준 대규모 부채 문제가 미국 등 선진국과 중국 간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개도국에 빌려준 부채 내역과 조건 등에 대해 투명한 공개를 촉구하고 있지만 중국이 이에 반발해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오는 12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총회에서 이 같은 갈등이 표면화할 것으로 예상돼 주목된다. 중국에서 돈을 빌린 개도국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갈등의 원인이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겸해 열리는 이번 춘계총회에서 미국 등 선진국들은 세계경제의 둔화 우려 외에 개도국 국가부채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 15년간 개도국 100곳 이상에 차관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미의 베네수엘라부터 아시아의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까지 전 세계 개도국들이 중국에서 큰돈을 빌렸다.

선진국들은 이를 중국의 '부채-함정 외교(debt-trap diplomacy)'라고 부르면서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중국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IMF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최빈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지난해 평균 48.2%로 2010년(27.7%)에 비해 급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한 시기와 맞물린다. 사하라 이남 국가들 가운데 36개국은 1990년대 말 이미 세계은행 등에서 빌린 돈을 전부 또는 일부 탕감받은 바 있지만 중국에서 돈을 빌리면서 다시 부채비율이 높아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저소득 개도국 가운데 부도 위기에 내몰린 16개국의 자금원(2017년 기준)을 분석한 결과 중국이 44%로 세계은행(18%)을 압도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또 개도국 관련 민간기구를 인용해 전체 아프리카 국가들이 외부에서 빌린 돈의 약 20%가 중국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단일 대출국으로 정부와 상업 대출을 합해 2006~2017년 줄잡아 1320억달러를 외국에 빌려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적극 동참해 무리한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하다가 디폴트 위기에 내몰린 파키스탄은 일단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추가로 급전을 빌리고 있다. 동시에 IMF와 60억~8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협상도 진행 중이다. IMF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대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중국에 20년간 400억달러의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IMF와 세계은행의 1대 주주인 미국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중국에서 돈을 빌린 나라들이 빚을 못 갚을 처지가 되자 IMF나 세계은행에 손을 벌리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국제기구가 긴급 수혈을 해 주면 이 돈이 도로 중국에 들어갈 것이란 우려도 크다.

워싱턴의 관련 소식통은 지난 2일 "IMF와 세계은행 이사국 다수가 이번 총회에서 중국발 정부부채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분위기"라면서 "하지만 중국이 이에 반발해 귀추가 주목된다"고 전했다. 중국은 IMF와 세계은행에서 각각 지분율 3위이기 때문에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면 미국이 원하는 대로 회의가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소식통은 "선진국이 제공하던 저금리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줄자 그 틈을 파고든 게 바로 중국"이라며 "중국은 대출을 각종 이권 사업과 연계해 불공정 계약 논란이 있는 데다 대출 규모나 조건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중국은 채권국 협의체인 '파리클럽'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개도국에 대출한 자금의 규모와 조건을 공개할 의무를 지지 않고 있다.

또 2016년부터 국제결제은행(BIS)에 내역 일부를 제출하고는 있으나 채무국이 제출한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중국에서 돈을 빌린 개도국들이 연쇄 부도 사태에 직면한다면 세계경제가 겪을 파장은 만만치 않다. 돈을 빌려준 중국 개발은행도 디폴트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국제기구를 무대로 갈등을 빚은 사례는 또 있다.

지난 3월 말 중국 청두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미주개발은행(IDB) 연차총회가 전격 취소된 것도 미·중 간 신경전 때문이었다. 두 나라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가운데 누가 임명한 정부 대표를 참석시키느냐를 놓고 갈등을 빚었고, 결국 총회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세계은행도 다음주 데이비드 맬패스 지명자가 총재로 공식 취임하면 한바탕 격랑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차관에서 세계은행 총재로 발탁된 맬패스는 '트럼프 충성파'로 불린다. 그가 전면에 나서 세계은행을 통해 중국의 '부채-함정 외교'를 차단하려고 나설 공산이 크다.

한편 미국은 이달 말 중국 정부가 베이징에서 주최하는 제2회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고위 관리를 보내지 않으며 사실상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개최된 1회 포럼에는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참석했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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