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WTO 개도국 논란, 한국 피해 없도록 만반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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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7.28. 오후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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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또 한 가지 걱정거리를 던졌다. 경제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나라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혜택을 누리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한 것이다. 이 지시는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우리나라의 개도국 지위 또한 안심할 수 없어 상황에 따라 타격이 예상된다. 최근 여기저기서 터지는 외교·통상·안보 이슈로 여념이 없는데, 이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WTO 체제는 선진국과 개도국을 부분적으로 차별대우하고 있다. 개도국에 불리한 차별이 아니라 유리한 차별이다. 수많은 개도국을 WTO 체제에 편입하기 위해 만든 유인조항이다. 회원국이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으면 150개 항목에서 우대를 받을 수 있다. 관세를 높게 매겨 외국산 제품이 몰려오는 걸 막을 수 있고 보조금도 여유 있게 주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식이다. WTO 가입 당시인 1995년 개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다음해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때 선진국으로 분류될 뻔 했지만 농업 분야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농업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합의하고 개도국으로 남았다.

개도국 대우 문제는 오랜 기간 논란거리였으나 개도국들의 강력한 반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90일 내로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혀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게 됐다. 미국은 OECD 회원국, G20 회원국, 고소득국가(1인당 국민총소득 1만2천56달러), 세계 무역량 0.5% 이상 국가 등 4가지 중 하나에라도 해당하면 개도국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4가지에 모두 해당한다. 개도국 지위 쟁점이 불거지면 우리가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가 개도국 지위에 신경 쓰는 이유는 국내 농업 때문이다. 우리 농업 기반은 넓은 토지와 저렴한 노동력을 가진 국가들과 비교할 때 매우 열악하다. 글로벌 시장 논리로 보면 생존이 어려워 높은 관세와 정부 보조금 등 각종 지원책에 의존하고 있다. 개도국 지위를 잃어 혜택을 받지 못하면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농업을 방치하면 각국의 분쟁 와중에 언제 식량이 무기화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 위축되게 놔둘 수도 없다. 식량과 에너지는 국민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자원이어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는 중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 우리나라에 별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 우리 농림축산식품부도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당장 개도국 대우를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개도국 지위는 다른 농업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유지된다"면서 큰 위험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처럼 각국은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입장을 달리 할 수 있다. 일본이 수십년간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우리나라에 막무가내식 수출규제를 가하는 것도 봤다. 강대국들이 여러 분야에서 경쟁하고 격돌하다가 그 불똥이 우리나라에 튀는 것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참에 외교의 중요성과 국제사회의 냉혹함을 다시 인식하고 만반의 준비를 통해 피해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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