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김성진 판사는 홍 감독이 아내 A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를 14일 기각했다. 홍 감독이 2016년 이혼조정을 신청한 지 2년 7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김 판사는 “홍씨와 A씨의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르기는 했으나 그 주된 책임이 홍씨에게 있다”며 “우리 판례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2015년 대법원 판례는 혼인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 사유를 들어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유책주의다. 다만 상대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거나 이혼 청구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허용된다.
김 판사도 “A씨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거나, 홍씨가 그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A씨와 자녀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충분히 배려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은 배우 김민희씨와 불륜설이 불거진 뒤인 2016년 11월 법원에 아내 A씨를 상대로 이혼조정을 신청했다. 당시 법원은 A씨에게 조정신청서와 조정절차 안내서를 2차례 보냈지만 A씨가 서류 수령을 거부해 조정이 무산됐다. 홍 감독은 그러자 같은해 12월 정식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3명 중 7 대 6, 즉 한 표 차이로 유책주의를 인정했다. 진보 성향 대법관이 다수인 이번 정부에서 유사한 이혼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맡긴다면 파탄주의로 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인철 변호사(법무법인 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유책주의를 인정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며 “부부 관계를 도자기에 비유한다면 금이 간 뒤에 회복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 곧 파탄주의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단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신뢰 관계가 파탄났다는 걸 현실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양소영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는 “부부 관계에서 별거가 길어졌다고 하더라도 부인 입장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자녀와의 관계도 원만했다면 과연 그것을 파탄으로 볼 수 있는지 정확한 입증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2015년 대법원도 “유책 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입법적인 조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현 단계에서 파탄주의를 취해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널리 인정할 경우 유책 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결과가 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다.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논란은 최태원(59) SK그룹 회장과 노소영(58)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이 시작될 때도 불거졌다. 두 사람은 지난해 이혼조정에 실패해 정식 소송절차를 밟게 됐다. 최 회장은 2015년 12월 내연녀와 혼외자가 있다고 공개한 뒤 이혼을 청구했다. 노 관장은 그동안 이혼에 반대해왔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 네이버 메인에서 중앙일보를 받아보세요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