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 룸

2016.08.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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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레건 주의 깡촌 구석에서 사는 [Ain't Rights ('권리가 아냐' 또는 '뭔가 이게 아냐' 의 복수형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듯. 영화의 내용을 생각하면 후자가 더 적합)] 라는 펑크 록 밴드의 멤버들이 주인공이다. 후줄그레한 모양을 하고 등장하는 이들은 밴드 리더이자 베이스 기타 패트릭 (최근에 어이없이 타계한 안톤 옐친), 약간 멍청해 보이는 보컬 타이거 (칼럼 터너), 리드 기타리스트고 밴드 매니저 역할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만다 (알리아 쇼캣), 그리고 브라질 유술을 할 줄 아는 꽤 침착한 드러머 리스 (조 콜). 영화가 시작하자 어딘지도 모를 옥수수밭에 차를 처박고 있다가 잠에서 깨어난 멤버들은 남의 차에서 기름을 훔쳐서 겨우 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세한 밴드다. 모호크발을 비롯한 나좀봐요 펑크 스타일로 몸을 두른 껄렁해 보이는 "록 저널리스트" 와 로컬 스테이션의 라디오 인터뷰를 끝낸 후, 거지 같은 길거리 샌드위치 식당에서 "공연"을 마치고, 각종 경비와 커미션을 제외하고 보니, 각 멤버 당 6달러 87센트가 달랑 남아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멤버들은 분통을 터뜨리지만, 이미 놓친 뻐스다.


이때 록 저널리스트 녀석이 문제 해결해주겠다고 나서면서, 정말 아무도 안 오는 숲 속에 달랑 들어앉은 한 선술집에서의 공연을 주선한다. 공연비는 자그마치 350달러! 아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좀 있긴 한데… 이 선술집은 네오나찌 스킨헤드들이 운영하는 곳이란다. 그런데 뭐 그런 거 따질 것 있겠어? 잽싸게 질러버리고 돈 받고 뜨면 되지 뭐. 하여튼 툴툴거리면서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선술집에 도착해보니, 의외로 음향기기며 무대며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 청중들도 꽤 있다. 물론 손님들은 다 머리를 짧게 깎거나 밀어버렸고, 군용 자켓을 걸치고, 이마에 후까시 잡고 여기저기 퇴행적인 문신을 새겨넣은 스킨헤드들이다. 


밸이 꼬인 멤버들은 경솔하게도 데드 케네디스의 옛날 곡인 [나찌 펑크들은 Zot 빨아라!] 를 신나게 연주하면서 청중들을 도발한다. 스킨헤드 청중들 일부는 눈쌀을 찌푸리고 욕설과 맥주병을 던지기도 하지만, 뭐 이 정도면 사실 도널드 트럼프 유세에 나타나서 헐레벌거리는 인종들보다도 오히려 점잖은 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적당히 청중들도 디스하면서 기세를 한껏 부풀린 만족스러운 공연을 마치고, 돈도 받고, 빨리 이 재수없는 곳을 뜨자 하면서 나가던 멤버들은, 패트릭이 어 내 휴대폰 놓고 나왔어 라면서 대기실 (그린 룸) 로 다시 들어가는 바람에… 


자 여기까지는 본편 리뷰에 쓴 내용이다. 


클럽의 청중 들 사이에 언뜻 스킨헤드 중 하나인 다니엘 (마크 웨버)가 할리퀸처럼 생긴 금발머리 앰버 (이모젠 푸츠) 와 같이 있는 예쁜 처자 에밀리 (테일러 튠스) 에게 쪽지인지 편지인지를 넘기는 샷이 있지만 패트릭만 잠깐 이상하게 여기는 정도고 복선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나치다가 잠깐 보이는 모멘트인데, 그린 룸에서 패트릭이 본 것은 끔직하게도 머리에 칼이 찔려 죽어있는 에밀리의 시체. 웜이라는 추잡스러운 나찌 녀석이 죽였다. 왜? 


클럽 바운서 게이브 (메이콘 블레어) 는 코끼리 덩치인 빅 저스틴 (에릭 에델스타인) 에게 일동을 감시하도록 맡겨놓고는 클럽 주인이자 네오나찌 갱단의 두목인 달시 (패트릭 스투어트) 에게 열심히 전화를 한다. 이 시점만 하더라도 Ain't Rights 의 멤버들 중 일부는 어떻게 해서든 목숨을 부지해서 이 스킨헤드의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지만, 달시는 경찰에 911번 전화한것을 어린 스킨헤드 녀석들이 서로 칼부림 한것으로 위장하는 등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고, 일찍 클럽을 닫고 고객들을 돌려보내는 등, 아무리 봐도 멤버들을 살려 내보낼 생각이 없는 듯하다. 쥬지추 할 줄 아는 리스 덕택에 일행은 빅 저스틴을 제압하고 그의 권총을 빼앗지만, 그린 룸에 갇힌 채 나갈 수가 없다. 


패트릭은 권총을 내놓으라는 달시의 구렁이같은 설득 겸 협박에 정신줄을 거의 놓을 지경에 이르르고, 아무튼 총알을 뺀 권총을 조심스럽게 방 밖에 던지려고 팔을 내민 순간... 패트릭의 팔은 마치 도마 위에 오른 생선처럼 저며지고 만다! 손목이 반쯤 너덜너덜하게 떨어진 패트릭은 완전 발광 직전상태, 격분한 리스는 저스틴을 쥬지추로 목을 비틀어 죽이지만 달시가 일동을 몰살할 생각이라는 것은 이제 명백하다. 멤버들은 마루바닥을 뜯어서 지하실로 도망을 시도해 보지만 하수구나 통풍구도 없다. 갇힌 공간이 좀 더 늘어났을 뿐. 


결국 일동은 기습공격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각자 무기를 만들어 든 채 앞문으로 나가지만 한 명씩 스킨헤드들에게 잡혀 죽는다. 될수 있으면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죽이고 싶은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서) 달시는 부하 대니얼과 조나산을 전위대로 임명하고 들여보내는데, 대니얼은 앰버에게 사건의 진상을 듣자 달시를 배신한다. 알고보니 대니얼은 에밀리와 함께 네오나찌 그룹을 탈당하기로 계획을 짜고 있었으며 'Meat Grinder' 라는 곡이 연주되는 것을 신호로 도망을 가기로 했다가, 그 계획이 웜에게 들키는 바람에 살해당한 것이다. 그냥 도망가는 거라면 또 모르되 이전에 벌어진 모종의 살인사건의 증거품인 야구배트까지 고이 싸가지고 경찰에 가져다 바치려고 했다는 것이다. 달시는 흑인 갱들이 다루는 것으로 위장한 헤로인 장사를 오랫동안 벌이고 있었으며 그 장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지 할 용의가 되어 있다. 


아무튼 대니얼이라는 든든한 한편을 얻었다고 여긴 것도 잠시, 그는 어이없이 간단하게 산탄총에 얼굴이 뭉개져서 죽고, 한쪽 팔을 못 쓰는 패트릭과 다리를 개에게 물린 앰버 둘 만 남는다. 이들은 슬픔과 피로에 사무쳐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지만, 진짜 18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한 놈이래도 더 죽이고 죽자!! 라고 둘을 죽이러 들어온 산탄총으로 무장한 조나산과 스킨헤드들과 총알이 몇 개 안 남은 권총 한자루로 맞서서 발악하며 싸운다. 


흐아악....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액션시퀜스가 끝나자 어깨숨을 몰아쉬고 피와 눈물을 철철 흘리는 앰버와 패트릭은 어찌 어찌~ 살아있다. 문제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달시가 클럽의 청소와 뒷정리를 맞겨둔 게이브를 간단히 제압한 두 사람은 걸어서 차도가 있는 데 까지 가는데, 날이 스멀 스멀 밝아온다. 차도로 이어지는 과수원길에서,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주인공들은 친구들의 시체를 끌어다가 이리 저리 흩어놓고 교통사고 위장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자빠졌는 달시와 그의 부하와 딱 마주친다. 


"뭐여 니네들 어떻게 아직 살아있는겨?" 라는 벙찐 얼굴이 된 달시. 막판에 패트릭과 앰버는 "이놈들 죽여야 되는 거야?" 라는 안건을 놓고 약간 의견이 갈린다. 패트릭은 뇌까린다 "아이고... 이건 악몽이야."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달시. 마치 "에이 이 지랄을 왜 내가 봐야 돼." 라는 듯한 태도다. 2, 3초만에 탕탕탕 총성이 울리고 달시와 그의 부하는 몸과 머리에 총알이 여러군데 박힌채 널브러진다.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고, 헤로인 주사를 맞고 죽어있는 (? 달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웜에게 아마도 순도가 지나치게 높은 헤로인 봉지를 줘서 과다복용 사망을 유도한듯) 웜 옆에서 게이브가 얌전히 아이스크림인지를 먹고 있고, 모두에 나왔던 껄렁한 "록 저널리스트" 가 자기 집 청소를 하면서 [Ain't Rights] 인터뷰를 듣고 있다. 멤버들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도록 훈련받은 맹견 한마리만 살아남아 죽어 널브러져 있는 주인 옆에 끙끙거리며 다가간다. 멍하게 평화스러운 분위기. 


피투성이의 친구들과 적들 시체 가운데서 넋빠진 채 앉아있는 패트릭과 앰버. "무인도에 밴드 음악을 하나만 가져가야 된다면 뭘 가져가겠어" 라는 밴드 멤버끼리의 농담을 패트릭이 맥아리 없이 다시 한다. 앰버는 "그런 Zot 같은 거 알게뭐여" 라고 역시 맥없이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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