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경축사에 ‘세월호’는 없었다

이용욱·유신모·박병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15일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사는 향후 국정운영의 두 축인 경제활성화와 통일 준비 방안 등을 망라하는 수준이었다. 경제활성화 필요성과 이를 위한 각종 조치, 남북 간 각종 협력사업 제안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하지만 획기적인 내용은 없었으며, 기존 방침들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북의 반발만 산 ‘드레스덴 구상’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남북 간 환경·문화 협력 등부터 시작하는 ‘작은 통일론’을 새롭게 꺼냈다.

국정운영 방향으로 국가적 적폐 해소와 혁신을 강조했지만, ‘세월호 참사’는 없었다. 박 대통령은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 등과 함께 “잇따라 발생한 사건·사고들”이라고만 지칭한 뒤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쌓여온 비정상적 관행과 적폐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무능력과 무책임 등 국민들에게 국가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지만, 국정 최종·최고 책임자다운 진단과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한 달여 동안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의 말도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경축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경제로 총 21번 등장했다. 다음으로는 혁신(16번), 북한(15번), 국가(12번), 미래(11번), 성장(10번) 등의 순으로 많이 사용했다. 지난해 경축사에서 11번 언급했던 경제에 대한 강조가 21번으로 늘었다. 1번만 언급했던 성장이란 단어도 이번에는 10번이나 썼다. 지난해에는 언급하지 않았던 혁신이란 단어는 12번 등장하며 키워드가 됐다. 언급 횟수에 맞춰 활자를 크고 작게 구성했다.   그래픽 | 박지선 기자·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경축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경제로 총 21번 등장했다. 다음으로는 혁신(16번), 북한(15번), 국가(12번), 미래(11번), 성장(10번) 등의 순으로 많이 사용했다. 지난해 경축사에서 11번 언급했던 경제에 대한 강조가 21번으로 늘었다. 1번만 언급했던 성장이란 단어도 이번에는 10번이나 썼다. 지난해에는 언급하지 않았던 혁신이란 단어는 12번 등장하며 키워드가 됐다. 언급 횟수에 맞춰 활자를 크고 작게 구성했다. 그래픽 | 박지선 기자·연합뉴스

▲ 경제활성화·통일 준비 망라 “남북관계 작은 사업부터 추진”
획기적 내용 제시는 없어
세월호 대신 “잇단 사건·사고” 비정상적 관행·적폐 탓만

■ ‘중대 제안’은 없었다… 작은 통일부터

박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공동발전을 위한 작은 통로들이 모인다면 생활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작은 사업부터 하나하나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 하천·산림의 공동관리, 남북 문화유산 공동발굴 사업, 내년도 광복 70주년 행사의 공동기획 및 준비 등 구체적인 남북 간 사업을 제안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문화·생태 쪽이 강조돼 있는데, 안보·군사 위주 접근보다는 소프트파워 위주 협력에 초점을 둔 것 같다”며 “ ‘작은 발걸음 정책’을 원용해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작은 발걸음 정책은 동독 동방정책의 핵심이다.

그러면서 북한이 반발하는 ‘드레스덴 구상’이나 대북정책의 근간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언급하지 않는 등 대북 유화 제스처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날 제안이 남북관계 전환점이 될지는 미지수다.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6자회담 재개 방안 등 민감하고 굵직한 남북 간 현안은 모두 피해갔기 때문이다. “핵을 포기한 카자흐스탄과 개혁·개방을 선택한 베트남, 미얀마 등은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며 북핵 포기만 거듭 강조한 것도 북한 반발을 부를 수 있다.

대일관계를 두고는 “군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 계시는 동안 그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전향적 조치를 요구해왔다. 이런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때 한·일관계가 건실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3·1절 기념사에 이어 8·15 경축사에서도 처음으로 거론하면서 현 시기 한·일관계 개선 핵심은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다만 “일본 일부 정치인들은 오히려 양 국민의 마음을 갈라놓고 상처 주는 일을 하고 있다”면서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에 대한 공격은 피했다.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앞두고 관계 회복 필요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를 위한 일본 정치인들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한·중·일 원자력 안전협의체를 제안한 것도 한·일관계를 중국·몽골 등 주변국을 포함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틀 안에서 풀어나가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 내수경기 활성화에 올인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에 국정역량을 집중해 침체와 저성장의 고리를 끊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재정·세제·금융 등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내수경기를 살려낼 것이며, 내년 예산도 최대한 확대기조로 편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경축사에 없었던 ‘성장’이라는 말이 10차례나 등장했다. ‘경제’는 21번, ‘혁신’은 16번 썼다.

박 대통령은 “경제법안들이 발이 묶여 어렵게 일궈낸 경기활성화의 불씨가 언제 꺼져버릴지 모르는 위기감에 싸여 있다. 여와 야가 따로 없다. 정치권도 국민을 위한 국가혁신에 동참해달라”고 말했다.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 등 경제활성화법의 국회 통과를 다시 요청한 것이다.

반면 대선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는 지난해 경축사에선 ‘원칙이 선 시장경제’로 포함됐지만, 이번엔 아예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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