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을 피해 대한민국에 왔는데…” 비통한 심경 전한 태영호 전 북한 공사

입력
수정2019.08.14. 오전 10:05
기사원문
천금주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뉴시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탈북민 모자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그는 또 모자가 사망한 원인은 북한 정권에 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 13일 ‘탈북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새터민들에게 보냈다. “북한도 아닌 이곳 대한민국 땅에서 사람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니…”라고 운을 뗀 태 전 공사는 “굶주림을 피해 목숨 걸고 북한을 떠나 이 나라를 찾아온 탈북민이 대한민국에서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충격적인 비극을 접하면서 북한 정권에 대한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한 태 전 공사는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해줬다면 수만 명의 탈북민들이 고향을 떠나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태 전 공사는 “이번 탈북민 모자 아사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북한 당국과 김씨 일가”라고 지적하며 “국내외 탈북민 사회는 깊은 슬픔과 울분에 잠겨 있지만 북한 김정은은 미소짓고 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북한 정권이 원하는 것은 탈북민의 불행한 삶”이라고 주장한 태 전 공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민 정착실태의 미흡한 점을 재점검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으로 탈북민들의 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는 또 “울분과 분노는 오직 북한 정권을 향해 있어야만 한다. 우리의 주적은 김정은 정권이다”라고 강조하며 “불쌍한 두 모자의 죽음이 남한 정치 갈등의 희생물로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10년 전 탈북한 한모(42‧여)씨와 아들 김모(6)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요금 미납으로 물이 끊겼는데도 소식이 없자 집을 방문한 수도검침원이 악취가 나는 것을 확인해 관리인에게 알렸고 이 관리인은 강제로 창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숨져 있는 모자를 발견했다.

이들이 죽은 집엔 고춧가루 외에 먹을 것이 없었으며 통장 잔고엔 0원이 찍혀 있었다. 경찰은 한씨가 지난 5월 말 통장에 남아 있던 3858원을 모두 인출하고 2주 정도 지나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은 태영호 전 공사가 쓴 글 전문

故 한성옥 母子 餓死 과 관련하여 탈북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삼가 故 한성옥 모자의 명복을 빕니다. 안녕하십니까. 태영호입니다.
북한도 아닌 이곳 대한민국 땅에서 사람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니......
그것도 배가 고파 굶주림을 피해 목숨 걸고 북한을 떠나 이 나라를 찾아온 탈북민이 대한민국에서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저로서도 선뜻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충격적인 비극을 접하면서 저는 북한 정권에 대한 강한 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해 주었더라면 수만명의 탈북민들이 그리운 형제들과 친척들, 친우들이 있는 정든 고향을 떠나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 탈북민 모자 아사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북한 당국과 김씨일가에 있습니다.
이번 탈북민 모자의 아사 소식으로 국내외 탈북민 사회는 깊은 슬픔과 울분에 잠겨 있지만 북한 김정은은 미소를 짓고 있을 것입니다.
북한 정권은 이번 사건을 탈북민들과 남한 사회에 대한 비난과 탈북방지를 위한 내부 교양용 선전에 이용하고 한국 사회와 탈북민들, 한국 정부와 탈북민들 간의 증오와 갈등이 증폭되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하고 또 그것을 조장하려 들 것입니다. 북한당국이 원하는 것은 탈북민들의 불행한 삶과 탈북사회의 내부분열, 한국 사회와 정부, 탈북민들 간의 반목과 갈등, 그리고 탈북민들의 한국정착 실패입니다.

헌법상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보호 의무를 지고 있는 정부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탈북민들은 정부의 책임이나 남한 사회의 무관심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같은 탈북민으로서 곁에서 그의 어려운 처지를 미리 알고 어루만져 줄 수는 없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지금 오XX 선생님, 김성민 대표님, 허광일 위원장님 등 일부 반북운동 선각자들이 여유가 있는 탈북민들로 부터 매월 만원, 혹은 천원씩이라고 모아 탈북민들의 계 를 뭇고 그 돈으로 정권의 사각지대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들을 찾아 내여 도와주는 ‘탈북민 월만동지회’, ‘탈북민 월천동지회’ 같은 조직을 내오려고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저도 이 분들의 활동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
우리의 울분과 분노는 오직 북한 정권을 향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주적은 김정은정권입니다.
지금 김정은 정권은 한미동맹을 분열와해 시키고 한일공조를 붕괴시키며 남한의 보수와 진보, 여야가 매일 서로 싸우게 만들고 그 틈 속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굳혀 나가면서 어부지리를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급하게 정부나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나서서 탈북민 정착실태의 미흡한 점을 재점검하는 계기를 만들고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갑시다.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구호로 그 누구와 투쟁하거나 다투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탈북민 정착정책의 구조적인 허점들이 있으면 그것을 하나 하나 찾아 내어 정부와 국회를 설득시켜 바로 잡아 나갑시다.
불쌍한 두 모자의 죽음이 남한 정치갈등의 희생물로 이용당해서는 안됩니다.
이번 기회에 두 모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또 다른 탈북민들을 찾아내고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는 탈북민들의 협의체를 만들어 정부의 정책적 힘에 우리 힘을 보태여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데 우리 모두의 지혜와 힘을 합쳐 나갑시다.
단결은 힘이고 분열은 자멸입니다.

2019년 8월 13일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국민일보 채널 구독하기]
[취향저격 뉴스는 여기] [의뢰하세요 취재대행소 왱]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정치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
댓글

국민일보 댓글 정책에 따라 국민일보에서 제공하는 정치섹션 기사의 본문 하단에는 댓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