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무잡잡 세종돌, 네모반듯 숙종돌... 이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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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촌기행②] 동촌의 경계선, 한양도성 길

[오마이뉴스 김정봉 기자]

백악·낙산·인왕·목멱,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內四山)이다. 내사산 등줄기를 성으로 이은 것이 한양도성(漢陽都城)이고 한양도성 너머 10리 까지를 성저십리(城底十里)라 한다. 얼추 현재 서울 경계와 비슷하다. 성저십리 밖에는 외사산(外四山)이라 하여 북한산, 아차산, 덕양산, 관악산이 한양을 둘러싸고 있다.

▲ 낙산 아래 한양도성 도성은 성 안팎을 나눈다. 성안은 종로요, 밖은 성북이다
ⓒ 김정봉

한양도성은 방어를 위한 것이지만 한성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권의 권위를 대내외에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죽어서는 성안에 머물지 못하였으므로 도성은 삶과 죽음의 경계이기도 하였다. 성안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왕, 평민이 따로 없었다. 왕도 죽으면 교(郊)교에 묻혀야 했다.

성문(城門)에서 외사산 기슭에 이르는 곳을 교라 하는데 남대문 밖을 남교, 동대문 밖을 동교, 서대문 밖을 서교, 창의문 밖을 북교라 했다. 요새 쓰이는 교외(郊外)라는 말도 교 바깥이라는 의미로 교에서 나온 것이다.

송동앵도 성북도화(宋洞櫻桃 城北桃花)

동촌은 한양도성 아랫마을이고 도성 너머와 동대문 밖은 성북(城北)과 동교(東郊)다. 주산으로 말하면 낙산과 응봉 아랫마을이 동촌이다. 응봉은 내사산에 들어가지 않지만 창덕궁과 종묘, 창경궁, 성균관의 주산역할을 한다. 동촌 동쪽 경계는 한양도성 동쪽으로 성균관대학교 위, 와룡공원에서 시작하여 혜화문을 거쳐 낙산, 흥인지문(동대문)까지 이어진다. 

동촌 경계선 첫머리는 와룡공원, 응봉줄기에 있는 공원이다. 와룡공원 아랫마을은 송동(宋洞). 송시열 집이 있어 이렇게 불렸다. 예전부터 앵두나무로 유명하여 단오 때 앵두놀이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와룡공원 성너머는 성북동. 성북은 복숭아꽃이 유명하여 시인묵객의 입에 오르내렸다. 송동앵도(宋洞櫻桃)요, 성북도화(城北桃花)로다.

▲ 도성과 북정마을 성 아랫마을, 북정마을은 개발의 유혹을 뿌리치고 달동네로 남아있기를 자처한 보석 같은 마을이다
ⓒ 김정봉

암문(暗門)으로 성너머에 나가 보았다. 서울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이 코앞이다. 산꼭대기 성벽아래 마을로 사탕발림에 불과한 개발의 유혹을 뿌리치고 달동네로 남아있기를 자처한 보석 같은 마을이다.

끊어진 성곽은 마음으로 잇고

도성은 응봉 등마루 타고 내려오다, '서울왕돈가스'와 경신고등학교 앞에서 결딴났다. 여기서 혜화문까지 성은 성한 곳 없이 군데군데 성돌만 남아있다. 

▲ 경신고 학교담과 성돌 학교담이 성돌 목을 죄고 있다
ⓒ 김정봉

▲ 살림집 담과 성돌 왜식 쌓기한 살림집 담 밑에서 성돌이 신음하고 있다
ⓒ 김정봉

결딴난 성은 경신고등학교 뒷담에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새로 쌓은 학교담이 주인행세하고 성돌은 '종노릇'하고 있는 험한 꼴을 보게 된다. 주객전도다. 또 일부 성돌은 살림집 담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그 집담이 하필 일제강점기 이후에 흔해진 '왜식 쌓기(견치석 쌓기)' 담이란 말인가? 여간 거슬려 보이는 게 아니다. 혜성교회 아래 성돌은 '성북동도시텃밭'의 밭담으로 쓰이고 있어 그 또한 보기 흉하다. 

▲ 혜화문 부근 도성 옥수수알맹이처럼 올지게 쌓은 도성은 이제 영양실조 걸린 어린아이 배처럼 배가 불록해지는 배부름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 김정봉

혜성교회에서 대략 100미터까지 성곽흔적이 전혀 없다가, 두산빌라에서 혜화문까지 성은 그런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영양실조 걸린 어린애 배처럼 담 가운데가 불룩해지는 '배부름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영양보충'이 필요해 보인다.

동촌과 그 이웃 마을들

혜화문까지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한 도성은 창경궁로에 의해 다시 한 번 끊겼다. 실은 창경궁로 때문은 아니고 일제 때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에 전찻길을 내면서 끊어진 것. 이때 우리는 혜화문을 잃었다. 현재 길가에 복원해 놓았으나 도로 한가운데 있어야 할 혜화문은 여태껏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살림집에 파묻혀 있는 신세다.  

▲ 낙산아래 한양도성 마을에 붙어있는 도성은 마을 돌담길마냥 푸근하다
ⓒ 김정봉

허리 잘린 성은 가톨릭대학교 뒤에서 다시 시작하여 낙산으로 향한다. 낙산 성 아랫마을은 장수마을. 재개발 대신 재생사업으로 살아난 마을이다. 달동네로 성북에 북정마을이 있다면 삼선동에는 장수마을이 있다.

▲ 장수마을 곁 도성 요새처럼 보이는 도성은 왕권의 권위나 한성의 경계가 무너진 이 때 더 이상 벽이 아니라 따뜻하게 기댈 수 있는 등처럼 보인다
ⓒ 김정봉

성벽을 보았다. 새로 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뽀얀 돌과 잘 다듬은 정방형 큰 돌, 옥수수알맹이처럼 잘 다듬은 까무잡잡한 돌,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성돌'이 뒤섞여 있었다. 성은 언제 쌓았을까? 맨 처음 도성을 쌓은 때는 태조. 세종대에 이르러 태조 때 토성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쌓았고 숙종 때는 대대적 보수를 하였다.

▲ 여러 때깔 성돌  태조 성돌, 세종 성돌 숙종 성돌, 새로 쌓은 성돌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성돌을 한꺼번에 보고 있는 것이다
ⓒ 김정봉

자연석을 그냥 사용한 '덤벙성돌'은 태조 돌이요, 늦여름 옥수수알맹이처럼 찰진 까무잡잡한 돌은 세종돌이고 손 많이 탄 네모 반듯한 돌은 숙종돌이다. 성돌 때깔과 모양이 제각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성은 누가 쌓았을까? 태조 때 5도 장정이 달려들어 동시에 쌓았다. 숙정문과 혜화문 사이는 강원도 장정, 혜화문에서 남산까지는 경상도 장정이 쌓았다 하니 지금 보고 있는 낙산주변 성은 경상도 '박스방', '김스방'이 쌓은 것이다. 다만 성을 고쳐 쌓은 세종 때에는 낙산주변 성은 충청도 비인 장정들이 쌓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돌과 돌의 만남 우리 정통건축기술인 그랭이법으로 박힌 돌 주름에 맞춰 새 돌을 깎아 쌓았다. 새 돌과 헌 돌, 아우간의 행복한 만남으로 보인다
ⓒ 김정봉

예전 돌이 그래도 어른대접 받았나? 원래 있던 성돌의 생김새 따라 새 돌을 깎아 쌓았다.  그랭이법 정통건축기술이 연상되는데 그 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따뜻한 만남, 조선 경상도 '김스방과 오늘날 '김서방'과의 행복한 해후로 보인다.   

장수마을을 끼고 가파른 성곽 길을 오르면 동촌의 주산, 낙산(駱山)이다. 생김새가 낙타(駱駝)를 닮아 낙타산, 줄여서 낙산이라 부른다. 낙산 아래, 도성에 붙어있는 마을은 이화마을. 적산가옥과 60, 70년대 집들이 섞여있는 달동네다. 최근에는 '이화벽화마을'로 세상에 더 알려져 있다. 

▲ 이화마을 장수, 북정마을과 함께 성 아랫마을이다. 최근에는 벽화로 세상에 더 알려져 있다
ⓒ 김정봉

이화마을과 등대고 있는 마을이 창신동이다. 50, 60년대 이후 동대문시장 최 일선 생산기지로 자리 잡은 봉제마을이 있고 조선총독부 돌을 여기서 가져다 썼다는 채석장이 있는 마을이다. 박수근 화백이 예술혼을 불태운 마을이기도 하다. 박 화백의 그림을 보면 창신동이 보인다. 성 안팎을 불문하고 북정, 장수, 이화, 창신마을은 서민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통하는 마을들이다.

서민들이 성 안팎을 파고들며 성의 경계를 허물어 만든 동네다. 이제 도성의 권위는 사라지고 성의 경계는 무너졌다. 도성은 더 이상 벽이 아니고 성 아랫사람들이 따뜻하게 기댈 등이 되었다. 성으로 인하여 성 안팎이 단절되지 않고 서민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 

부자 축에 끼지 못했고, 끼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성곽 길을 걷는 내내 낯설지 않고 마음이 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동촌의 경계선, 한양도성 길은 전에 우리가 살았던, 우리 몸에 익숙한 마을과 마을이 이어져 만들어진 푸근한 길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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