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맹 전 중앙위원장 백태웅의 옥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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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7.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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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맹은 ‘사회주의 혁명만이 남한 민중의 살 길’이라고 주장했던 가장 급진적인 반정부 조직이었다. 이들이 92년 4월 모두 검거된 뒤 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들의 급진 노선을 주도했던 중앙위원장 백태웅씨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글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5년 형을 선고 받고 원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백씨가 부인 전경희씨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는 통일·한총련 사태·출소 후 활동 계획 등에 대한 그의 심경이 담겨 있다. <편집자>

기상 나팔이 울립니다. 아침 일곱시. 창 밖은 파르스름합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때가 요즈음입니다.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킵니다. 차가운 기운이 목덜미를 스칩니다. 또 하루가 시작됩니다. 머리맡에는 어제밤 늦게까지 뒤적이던 책이 놓여 있습니다. 동아일보사에서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한국 백년>입니다. 강만길 교수의 날선 주장은 밤새도록 나의 머리 속을 휘저었습니다.

‘개항 100년의 우리 역사는 한마디로 실패의 역사라 할 수밖에 없다. 근대적인 사회로 옮겨올 수 있었다는 점, 독립운동 과정을 통하여 민족적 역량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 발전의 요인을 자율이란 점에 두고 생각해보면 개항 100년의 역사는 속된 말로 남의 장단에 춤을 춘 강요당한 역사였다.’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는 오늘 이 순간 역사의 어느 고개를 넘고 있는가. 아직도 우리는 ‘실패의 역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머리를 몇 바퀴 좌우로 돌리고 벌떡 일어납니다. 맨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이불과 담요를 갭니다. 베이지색의 솜이불·담요·침낭, 다시 담요, 그리고 매트리스까지…. 침구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내가 아직 감옥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벌써 5년째입니다. 엊그제 면회 때 만난 어머님의 쪼글쪼글해진 손, 홀쭉한 입언저리, 머리밑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푸석푸석하던 머리카락이 뇌리를 스칩니다. 나는 변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어머님의 그 모습에서 가차없이 흘러간 시간의 흔적을 느낍니다.

“너무 조급했었다, 너무 미숙했었다”

‘사람들이 당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합니다.’ 시대가 변하니 생각도 변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세웠던 대의를 폐기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수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를 지탱하는 힘도 나의 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양심수입니다.

방을 정리합니다. 좁은 창문을 통해 멀리 하늘을 내다봅니다. 창에는 쇠창살이 쳐져 있고 다시 촘촘한 철망이 덧씌워져 있어서 마치 모눈종이처럼 바깥 경치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틈에 비치는 하늘의 빛깔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색입니다. 담장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겨울을 맨몸으로 이겨내는 참나무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저 숲을 사랑합니다. 군데군데 까치집이 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침 산책에 나서는 까치들.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만나는 것이 이리도 반갑고 소중한 까닭은 아마도 우리 영혼이 냉랭하고 어둠침침한 벽돌의 세계에는 영영 동화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문 밖에 자물통이 두개나 걸린 독방 안에서 고독한 아침시간을 시작한다는 것….

혼거방 여기저기서 식사 준비를 하느라 부산합니다. 1식3찬입니다. 밥과 찬을 받아놓고는 여기가 아마도 절집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법대를 졸업하고 감옥에 잠시 들어갔다가 대오각성하여 머리를 깎은 한 친구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성철 스님 아래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마지막 만난 지 십몇년이 훨씬 더 지난 요즘 그 친구의 기억을 종종 떠올립니다. 수행 정진하여 많은 걸 이루었을까. 생로병사의 고뇌를 뚫어내고 있을까. 이 시대의 구조적 모순에서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는 나,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에 도전하는 그.

사노맹. 정부는 우리를 무장 테러 조직인 것처럼 선전하고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검사가 마지막 논고에서 ‘이 사람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구형하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왜? 우리는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 독재 정부를 끝장내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지금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사 반란과 내란의 수괴로서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우리는 ‘군사 독재 타도’를 외쳤습니다. 현 대통령 김영삼씨도 야당 시절 그렇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는 청와대에 있고 수많은 양심수들은 여전히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했습니다. 군사 독재 시대를 끝내고 민중이 나라의 주인 자리로 복귀하는 것을 꿈꿨습니다. 자본주의의 높은 생산력과 강점을 살리면서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 정당을 허용하여, 보수와 진보가 나란히 사상의 자유 시장에 상장되어 대중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 하는 이때 이 정도의 정치적 민주주의조차도 지탱해 낼 수 없는 것일까요. 국가보안법과 양심수가 없는 나라. 그 나라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나가면 또 사노맹을 할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노맹을 다시 재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대답합니다. 나는 정당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진보 정당을, 70~80년대를 관통하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과 변혁운동의 성과를 끌어안으면서 전체 진보 진영의 역량을 아우르는 통 큰 단결을 이루어내야 할 때입니다. 지난날을 돌아보건대 우리는 한 시대의 벽을 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헌신성을 가진 반면, 너무 조급하고 미숙했습니다. 좀더 유연했어야 하고 좀더 현실적이었어야 하고 좀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가슴을 열었어야 했습니다. 연대와 단결과 그 위에서의 새로운 전진. 바뀌고 또 바뀌어야 합니다.

조간 신문을 펼쳐 듭니다. 눈을 끄는 기사 한 토막. 미 중앙정보부(CIA)는 북한이 향후 2~3년 내에 붕괴하거나 남침하거나 통일을 위한 결정적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미 국방정보국은 북한의 붕괴는 15~20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될 거라고 합니다.

과연 북한은 붕괴될 것인가. 북한의 사상·이론·이데올로기를 실제로 이끌고 있는 사람은 김정일 비서입니다. 그리고 그는 20~30년 이상 지도자 수업을 해왔습니다. 그의 통치 능력은 이미 유일 지도자의 지위에 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감옥이 몸은 가두어도 영혼은 가두지 못한다

따라서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새로운 비전을 내놓지 못한 채 유훈 통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후퇴를 의미합니다. 달리 말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 정부는 두 개의 선택지를 내놓고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을 더욱 흔들어 무너뜨리는 것, 다른 하나는 북한의 안정과 개혁·개방을 돕는 것입니다.

통일을 하려면 남북한이 모두 변해야 합니다. 실제적인 변화는 도외시한 채 통일만 목청껏 외치는 것은 북한 붕괴를 바라는 수구적 논리이거나 또는 구체적 프로그램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관념적 논리일 뿐입니다. 우선 식량난을 비롯하여 사회주의권 붕괴의 연쇄 작용으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 사회가 안정을 되찾고, 또 자본주의 경제 체제인 남한과 실제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구축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개혁·개방을 진행해야 합니다. 정치적 민주화도 이룩하고, 사회주의적 시장 체계를 활성화해야 하며,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한국 역시 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진보 정치를 수용하는 민주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행되어야만 한국이 자신의 경제력 규모에 걸맞게 통일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총련 사태. 이제 그 후유증도 서서히 수습되어가는 듯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학생운동이 정권에 의해 좌경 폭력이라고 핍박을 받는 모습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시대는 변화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낡은 눈이 아직 청산되지 않은 탓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생운동이 통일 운동 한 부분에만 편향되지 말고 정치·경제·국제 관계·학문·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두루 문제 제기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웃습니다. 단 한 가지 실천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으면서 생각만 많습니다. 사람들과 격리되어 외딴섬 속에 산다는 사실이 요즘은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노동자와 농민과 숱한 보통 사람들을 사랑한 죄로, 사랑하는 모든 것과 차단된 채 홀로 지냅니다. 참 역설적입니다. 그러나 슬픔과 절망감보다는 새로운 그리움과 사랑이 더욱 크게 자랍니다. 그래서 감옥은 나의 몸을 가두고 있긴 하지만 영혼을 가두지는 못합니다. 나의 마음은 이미 담장을 훌쩍 넘어 당신 곁에 있습니다.

오전 11시. 운동시간입니다. 방문 자물쇠를 열고 운동장으로 나갑니다. 담당 직원 한 사람, 그리고 나. 가벼운 체조를 합니다. 그리고 심호흡. 다음은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이 푸릅니다. 그 아래 빙둘러 치악산의 장대한 봉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치악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병풍 같은 산세. 그렇습니다. 저 산처럼 흔들림없이 당당하게 당당하게! 당신 잘 지내고 계시지요? 연말인데 좋은 일 많이 만드세요. 또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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