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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 Story >“나란 존재는… 첫 번째는 남편, 두 번째는 아빠, 세 번째가 야구선수”

기사입력 2019.08.14. 오전 11:11 최종수정 2019.08.14. 오전 11:11 기사원문
두산의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이 지난 9일 낮 잠실구장 1루 더그아웃에서 직구 그립으로 공을 잡은 채 인터뷰하고 있다. 린드블럼은 “등판할 때마다 아내와 아들딸이 관중석에서 응원한다”며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4관왕’ 질주린드블럼두산 외국인 투수

고교때 아내 만나 ‘둘만의 약혼’

대학때 양가 부모 앞에서 청혼

2008년 다저스 지명받았지만

2014년까지 이곳저곳 ‘떠돌이’

2015년 한국서 안정 찾았으나

막내가 병 안고 태어나 미국行

수술 성공이후 컴백해 맹활약

다승·자책점·탈삼진·승률 1위

동료보다 3시간 일찍 일어나

자녀들 유치원 등교 직접 챙겨

경기 없는 날엔 언제나 가족과

다저스 투수 커쇼와 절친 사이

그의 꾸준한 봉사정신 본받아

아내와 재단 만들어 자선활동


두산의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32)이 2019 신한은행 마이카 프로야구를 지배하고 있다. 린드블럼은 14일 현재 23경기에 선발등판, 148이닝을 던져 18승 1패에 평균자책점 1.95를 유지하고 있다. 린드블럼은 다승과 평균자책점, 탈삼진(132개), 승률(0.947)에서 1위에 올라 시즌 4관왕이 유력하다.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투수는 선동열(1989∼1991년·당시 해태)과 윤석민(2011년·KIA) 2명뿐이다. 린드블럼은 투구 이닝, 그리고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0.96, 피안타율 0.216으로 역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는 호투, 역투의 비결로 ‘가족의 힘’을 꼽는다. 린드블럼은 마운드 위에선 ‘지배자’지만, 가족 앞에서는 ‘상냥한 남편, 따뜻한 아빠’다. 아내(오리엘 린드블럼)와 첫째 딸 프레슬리(5), 아들 팔머(4), 그리고 막내딸 먼로(3)는 린드블럼에겐 삶 그 자체다.

지난 9일 낮 잠실야구장에서 린드블럼을 만났다. 린드블럼은 미국인이지만, 영락없는 ‘한국 아빠’다.

야간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기상 시간은 오전 10시 전후. 하지만 린드블럼은 원정경기를 제외하곤 자녀들의 유치원 등교를 직접 책임진다. 매일 아침 7시면 눈을 뜬다. 아들이 ‘기상나팔’을 분다. 린드블럼은 “팔머가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침대로 와 나를 깨운다”면서 “몸이 힘들더라도, 귀찮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엔 키즈 카페에 가거나, 서울 근교로 나들이를 나간다. 아내를 대신해 요리하는 건 기본.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잊지 않고 만든다. 린드블럼은 “당연한 일”이라며 “나란 존재를 3가지로 분류한다면 첫 번째는 남편, 두 번째는 아빠, 그리고 세 번째가 야구선수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린드블럼 부부의 ‘러브스토리’는 특별하다. 린드블럼이 고등학생이었던 15세 때 한 살 연하의 아내를 만났고 둘만의 약혼식을 올렸다. 린드블럼이 고교 졸업 후 퍼듀대에 진학하면서 둘은 잠시 떨어졌지만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린드블럼은 대학 1학년 때 양가 부모에게 ‘아내와 꼭 함께해야 하는 이유’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마침 퍼듀대에서 대학풋볼리그 경기가 열렸고, 린드블럼은 양가 부모를 이 경기에 초청했다.

다음 날 린드블럼은 양가 부모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청혼했다. 린드블럼은 “나는 행운아”라면서 “아내는 영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 같다”고 말했다. 린드블럼은 “아내는 전적으로 나를 지지하고 야구장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서 “아내는 우리 가족의 영웅”이라고 덧붙였다.

린드블럼은 2008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LA 다저스의 지명을 받았고, 2011년 다저스에서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에서 밀린 린드블럼은 다저스를 떠나 201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3년 텍사스 레인저스, 2014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전전하는 떠돌이가 됐다. 린드블럼은 “이 팀, 저 팀을 옮겨 다녔기에 거주지도 자주 바뀌었다”면서 “아내와 떨어져 지내야 했는데, 무척 힘들었고 또 미안했다”고 털어놓았다.

2015년에 한국으로 넘어왔고 롯데에서 자리를 잡는가 싶더니, 2016시즌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막내딸이 오른쪽 심장이 작은, 형성저하성 우심증후군이라는 병을 안고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딸의 곁을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아빠를 본 어린 딸은 힘을 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린드블럼은 2017시즌 중반 롯데로 돌아왔다. 그리고 2018시즌을 앞두고 두산으로 이적했다. 린드블럼은 두산으로 옮긴 뒤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 가족의 힘일까. 롯데에서 13승 11패가 개인 최고 성적이었는데, 두산 유니폼을 입고 지난해 15승 4패를 거뒀고 올 시즌엔 20승과 1점대 평균자책점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린드블럼은 가족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강조했다. 린드블럼은 “등판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내와 아들딸이 잠실구장을 찾는다”면서 “가족 모두가 한국 생활에 만족하고, 한국 생활이 미국보다 편하기에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고 귀띔했다.

린드블럼의 글러브엔 막내딸의 심장박동 초음파 사진을 형상화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린드블럼은 “막내딸은 수술이 잘돼 평범한 세 살짜리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면서 “재발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당분간은 수술 없이 지낼 수 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두산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가운데)이 지난 4월 16일 잠실구장에서 막내딸 먼로를 안고 아내 오리엘(오른쪽), 아들 팔머, 첫째 딸 프레슬리와 포즈를 취하고 하고 있다. 두산 제공

아들에게 아빠는 우상. 린드블럼은 “아들은 ‘아빠가 야구 하는 모습이 멋있고,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면서 “야구선수로의 자질도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아들이 원하기에 야구선수로 성장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라고 강조했다.

린드블럼은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인 다저스의 클레이턴 커쇼와는 둘도 없는 ‘절친’이다. 린드블럼과 커쇼는 다저스 입단 동기. 커쇼는 2008년 곧장 메이저리그로 직행했고, 린드블럼은 3년 뒤 빅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출발은 다르지만, 둘은 처음부터 깊디깊은 우정을 나눴다.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야구장 밖에서도 친형제처럼 어울린다. 2011년 ‘루키 헤이징’, 즉 메이저리그 신인선수 신고식에서 커쇼가 무당벌레 복장 차림인 린드블럼과 함께 걷는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린드블럼은 “커쇼와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면서 “다저스 시절 커쇼와 함께 ‘야구선수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커쇼는 시즌이 끝나면 고교 동창생인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봉사를 떠나는 등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커쇼는 2012년 메이저리그에서 선행을 많이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상’을 받았다.

린드블럼도 커쇼처럼 봉사에 적극적이다. 2011년 10월 아내와 함께 ‘조쉬 린드블럼 파운데이션’(Josh Lindblom Foundation)을 설립했고 자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2016년엔 삼진을 1개 빼앗을 때마다 자신의 등번호(당시 롯데)와 같은 43달러를 비영리단체에 기부했다. 지난해 7월엔 막내딸과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우와 가족, 치료사 등을 야구장에 초청했다. 린드블럼은 또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린드블럼은 “커쇼는 엄청나고 대단한 야구선수지만 야구장 밖에서는 더욱 멋진 사람”이라면서 “커쇼는 훌륭한 야구선수이자,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말했다. 린드블럼은 “커쇼는 좋은 남편, 훌륭한 아빠”라면서 “커쇼의 선행과 가족에 대한 애정과 의무를 꼭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린드블럼은 지난 7월 4전승에 월간 평균자책점 2.25를 거둬 생애 처음으로 월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8월에도 2전승. 지난 6월 14일 LG전부터 마운드에 오른 9게임에서 빠짐없이 승리투수가 됐다. 가장 강력한 정규리그 MVP로 거론되고 있지만, 린드블럼은 모든 공을 동료들에게 돌린다. 린드블럼은 “야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승리와 평균자책점에서 결코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동료들을 믿기에 투구에 전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린드블럼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첫 외국인 투수 4관왕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린드블럼은 그러나 1위를 유지하는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보다 WHIP와 9이닝당 볼넷허용률 등 세부 스탯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다.

린드블럼은 “WHIP와 9이닝당 볼넷허용률은 꼭 1위를 차지하고 싶다”면서 “다승과 평균자책점은 오히려 신경 쓰게 되면 스스로 무너질 수 있기에 경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린드블럼은 올해 가장 큰 목표를 한국시리즈 우승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는 무척 아쉬웠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SK에 2승 3패로 뒤진 6차전에서 4-3으로 앞선 9회 초 마운드에 올랐다. 그런데 최정에게 뼈아픈 동점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연장전으로 돌입했고 4-5로 패해 SK에 우승 트로피를 내줬다.

린드블럼은 “남은 시즌 내가 등판한 경기만큼은 팀이 꼭 이길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꼭 우승 트로피를 안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난공불락’투구 비결은…

공 회전수 최대 2792 찍고 제구력 탁월

“가장 껄끄러운 타자는 KT 강백호”


두산의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32)이 난공불락에 비유되는 비결은 회전수(RPM)다.

염경엽 SK 감독은 지난 7월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올스타전에서 린드블럼의 RPM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올스타전에 출전한 투수들의 트래킹 데이터가 3루 쪽 보조 전광판에 공개됐다. 염 감독은 “올스타전에서 린드블럼의 RPM은 믿기 힘들었다”면서 “살살 던지는 것 같은데도 쉽게 2700을 넘기는데, 회전수가 높다는 것은 공 끝이 좋다는 걸 의미하고 린드블럼이 최고의 투수라는 걸 입증하는 데이터”라고 설명했다.

올해 린드블럼의 직구 평균 RPM은 최대 2792까지 찍혔다. 물론 KBO리그 선발투수 중 최고다.

린드블럼의 평균 RPM은 2591이며, 리그 평균은 2200대다. 압도적인 수치다. 지난해 린드블럼의 회전수는 2300대 후반이었다. 올해 400 가까이 수치를 늘렸다. 린드블럼은 올해 회전수가 늘어나면서 직구 위주의 피칭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데이터상으로도 직구 구사율이 지난해 29%에서 올해 40%로 높아졌다. 린드블럼은 “(RPM과 관련한) 특별한 비결은 없다”면서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투구폼을 약간 바꿨고 더 잘 던지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린드블럼은 “올 시즌엔 직구가 너무 좋아, 투심패스트볼을 아예 쓰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전수 높은 직구와 함께 컷패스트볼의 위력도 좋아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통계사이트인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린드블럼은 2017시즌까지 컷패스트볼을 던지지 않았지만 올해는 그 비중이 30%에 이른다. 그런데 린드블럼이 던지는 컷패스트볼은 사실 슬라이더의 일종이다.

린드블럼은 “슬라이더와 컷패스트볼은 같은 폼에서 나온다”면서 “하나의 구종이 2개의 구질을 지니는 셈”이라고 말했다. 린드블럼은 “등판하기에 앞서 상대 타자의 데이터를 분석한다”면서 “컷패스트볼에 약한 타자에겐 컷패스트볼을, 슬라이더에 약한 타자에겐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말했다.

린드블럼이 스스로 꼽는 가장 큰 무기는 제구력이다. 린드블럼은 2016시즌 30경기에 출장, 10승 13패에 평균자책점 5.28로 부진했다. 볼넷은 무려 77개에 달했다. 그 후 제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린드블럼은 “경기당 하나의 볼넷만 내주려고 애쓴다”면서 “힘들지만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린드블럼은 올 시즌엔 23경기에 출장, 정확하게 23개의 볼넷을 남겼다.

마운드에서 호령하고 있지만, 린드블럼에게도 껄끄러운 타자가 있다. KT의 2년 차 젊은 타자 강백호(20)다. 린드블럼을 상대로 한 강백호의 타율은 0.231(13타수 3안타)이다. 강백호가 올 시즌 3할을 넘기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린드블럼의 판정승. 하지만 린드블럼은 가장 경계하는 타자로 강백호를 꼽았다. 강백호에게 내준 안타 3개 중 2개가 홈런이었기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린드블럼은 “강백호를 상대할 때는 최대한 집중해서 던진다. 그는 재능과 힘을 갖춘 타자다. 무엇보다 두려운 스윙을 구사하기에 결코 방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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