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110분 / 사극 /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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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년, 불굴의 신념으로 한글을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속에서 모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마지막 8년을 그린다.

 불교 국가인 고려를 뒤집고 유교를 국시로 창건된 새 왕조 조선의 임금인 세종이 스님과 손을 잡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그들의 인연을 날줄로, 그리고 아픔과 고민 속에 잉태된 한글이 어떤 원리를 가지고 마침내 태어났는지 창제 과정을 씨줄로 짠다. 또 지식을 독점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권력 또한 독점하고자 했던 유신들에 맞서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를 꿈꿨던 세종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로 구현됐는지를 보여 준다.

 특히 훈민정음 서문의 첫마디인 ‘나랏말싸미’를 제목으로 한 영화는 개인의 업적이 아닌 ‘모두’의 성취였던 한글, 그 이면의 이야기를 재미와 울림 속에 전한다. 이 때문에 영화 속에서는 가장 높은 곳의 임금 세종과 가장 낮은 곳의 스님인 신미의 인연과 협업, 충돌 과정과 함께 소헌왕후, 대군들, 신미의 제자이자 도반인 스님들, 새로 태어난 문자를 익혀 퍼뜨렸던 궁녀들까지 강한 개성과 매력을 가진 인물들이 나와 각축과 공존의 역동적인 드라마를 펼친다.

 배우 송강호가 맡은 ‘세종’은 위인전의 주인공이 아닌 고뇌와 번민 속에 좌절과 성취를 함께 겪고 위대함의 뒤편에 숨어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세종은 유신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천한 불승인 신미와 뜻을 합쳐 한글 창제를 시작하고 맺는다. 박해일이 맡은 ‘신미’는 역적의 아들로 유교 조선이 금지한 불교를 진리로 받드는 스님이다. 불경을 기록한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티베트어·파스파문자에 능통하다. 문자 창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세종이 도와 달라 말하자 한양 안에 불당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새 문자 창제에 함께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의 말씀은 백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세종의 신념에 공감한다. 그리고 그에게도 새 문자는 필생의 과업이 된다.

 하늘과 땅처럼 멀리 떨어져 있던 세종과 신미 두 사람을 만나게 하고 소리글자인 한글 탄생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은 물론, 신하들의 감시의 눈길 등 장애물이 나타날 때 해법을 제시하는 현명한 여장부 ‘소헌왕후’ 역은 전미선이 맡았다. 이 영화는 지난 24일 개봉했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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