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차이나" 수호 나선 中 연예인들…그 뒤엔 거대 시장에 공산당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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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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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빙빙·공리 등 홍콩·대만 문제에
中 정부 입장 맞춰 선명 메시지
원 차이나 당연 中 여론 의식해야
反정부 발언은 '연예계 퇴출' 의미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정책을 놓고 중국 아이돌과 가수, 영화배우 등 각계 연예인들이 곳곳에서 수호 투사로 나서고 있다.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중국인 멤버 레이(중국 이름 장이싱·张艺兴)가 삼성전자 웹사이트 국가 표기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13일 모델 계약을 해지했던 게 가장 최근의 사례다. '하나의 중국', 이른바 '원 차이나(One China)' 정책은 홍콩은 물론 대만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대외 정책이다. 국제사회를 향해 중국 만을 국가로 간주하라는 요구다.
엑소 중국인 멤버 레이가 모델로 나선 삼성 스마트폰 광고. [연합뉴스]

레이의 중국 현지 기획사는 공식 SNS 계정을 통해 “레이가 모델로 활동하는 삼성전자의 공식 글로벌 사이트에서 국가·지역의 정의가 불분명한 상황이 있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는 기업은 환영하지만, 중국 주권과 영토 보존에 대해 모호한 입장과 태도를 보이는 단체나 조직은 거절한다”고 같은 날 밝혔다.

그룹 엑소 멤버 레이소속사가 13일 중국 웨이보에 올린 성명서[중국 웨이보]

삼성 글로벌 사이트에서 ‘당신의 나라와 지역을 방문하세요’ 페이지에 중국과 홍콩이 나란히 표시된 부분이 있는데, 홍콩을 중국과는 별개인 또 다른 국가로 표기했다는 식으로 문제삼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연예인들이 홍콩과 대만 문제를 두고 중국 측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대만의 금마장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받은 푸위(傅楡) 감독이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개체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소원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히자 중국의 유명 배우 공리(巩俐)는 시상을 '보이콧'했고, 다른 중국 측 참가자들도 피로연에 대거 불참했다.
중국의 배우 판빙빙. [일간스포츠]

여기에 판빙빙(范冰冰)은 시상식 하루 뒤 자신의 웨이보(중국 SNS)에 "중국은 한뼘도 줄어들어선 안된다(中國一點都不能少)"며 영토 수호의 의지를 외치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의 글과 그림을 올려 논쟁을 가열시켰다. 대만 감독의 "독립국" 발언을 "한뼘도 안 된다"며 사실상 받아친 것이다.

판빙빙 웨이보 화면. [사진 웨이보]

중국 연예인들이 일국양제와 같은 정치 현안에 대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배경을 놓곤 이들이 중국 일반인의 여론을 대변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중국 일반인들은 절대 다수가 '하나의 중국'을 당연시하는 만큼 연예인이라서 특출나게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하나의 중국'에 관한 한 중국 여론이 워낙 분명해서 연예인들도 이 대목에선 극히 조심하거나 여론 관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 소식통은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의 입장에선 하나의 중국을 놓고 애국적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분석도 있다.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에선 관을 의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 공산당은 때로는 연예인의 액세서리, 머리 색깔, 문신까지 간섭하기도 한다. 중국 관영 매체 신화사는 지난해 사설에서 "민족부흥의 큰 임무를 지닌 신세대가 불건전 문화의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며 연예인 '외모 검열'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남자 연예인의 귀걸이 착용, 땋은 긴 머리 등이 화면에 노출되지 않고 흐릿하게 모자이크 처리돼 중국에서 방송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27일 "최근 중국 검열 당국이 TV나 인터넷에 등장하는 귀걸이를 착용한 남자 아이돌 스타의 귓불 주위를 흐릿하게 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금마장 영화제 '불참 사태'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이하 중선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한다. 대만 빈과일보는 지난해 11월 홍콩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중국 미디어를 총괄 감독하는 중선부가 중국 영화국을 통해 자국 영화사들에 금마장 발언 논란을 알려 이듬해부터 금마장의 참가 신청 금지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홍콩의 가수 데니스호가 지난 7월 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이 날 호는 홍콩의 인권 현황에 대해 비판하고 중국을 유엔 회원국에서 퇴출할 것을 요구했다. [AP=연합뉴스]

여기에 중국 연예인들로선 중국의 거대시장을 염두에 둬야 하는 점도 있다. 홍콩 연예인들의 경우 반중 성향을 드러냈다가 불이익을 받는 일이 있었다. 홍콩 가수 데니스 호는 2014년 우산혁명을 응원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중국 연예 시장에서의 퇴출을 의미하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당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홍콩 시위를 지지한 배우 채프먼 토, 가수 앤서니 웡과 데니스 호 등을 지목해 "중국에서 인기와 높은 수입을 누리면서도 중국을 모욕하는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연예인들은 미디어를 관장하는 광전총국, 문화부, 선전부로부터 삼중 사중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중국 정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홍콩 시위가 격화할수록 시진핑 리더십이 타격을 받기 때문에 연예인을 동원해 내부 선전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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