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할머니의 아픔을 부인하더라도 할머니들은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면서 저와 다른 피해자를 위해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었습니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시고 힘내주세요.”(이라크 북부 야지디족 생존자 다랄)
우리 위안부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일본군으로부터 위안부 피해를 본 필리핀의 페덴시아는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아직 살아있는 피해자들이라도 정의가 실현되는 걸 봐야 한다. 끝까지 싸우자”는 뜻을 전했다. 대만 여성인권단체인 여성구제재단도 “대만엔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두 분 살아계시지만 정의실현을 위한 우리의 투쟁은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이행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짐바브웨 전시 성폭력 생존자인 밀드레드는 “우리는 무기가 아닌 정의와 책임감으로 투쟁한다”고 했고, 콜롬비아 생존자인 안젤라도 “우리의 증언이 성폭력에 맞서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폭염 아래 시민들 “할머니, 사랑합니다”
이날 서울 한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이어진 가운데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시민 등 2만명(주최 측 추산)이 수요시위가 진행된 2시간 가까이 평화로 거리를 가득 메웠다.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1) 할머니는 주위의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나 “여러분 감사합니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게 승리하는 겁니다”라고 인사했고 학생, 시민들은 일제히 “할머니, 사랑합니다”라며 화답했다.
수요시위에 참여한 정치계 인사들은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언급하며 아베 신조 총리를 규탄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아베 총리의 도발은 일본과 대한민국 국민의 영혼을 배신했다. 결코 아베의 도발을 좌시할 수도, 좌시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도 “최근 상황 극복해서 받아야 될 사과는 반드시 받아내는 사회를 만들어서 우리 모두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4일로 1400회를 맞이한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걸어온 ‘연대의 역사’다. 매주 이어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일본 정부는 외면했지만, 이들이 전한 울림만큼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2004년 3월 17일 열린 600회 수요시위는 일본과 미국 등 8개국 15개 도시에서 함께 열렸고, 이후 700회, 878회, 930회 수요시위 등 다수 집회가 세계 각국의 연대집회 형태로 이어졌다.
김승환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이강진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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