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조국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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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5   |  발행일 2019-08-15 제27면   |  수정 2019-08-15
[영남타워] 조국
임성수 주말섹션부장

2014년 10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Auschwitz Birkenau)를 방문했다. 아우슈비츠는 독일어 지명이고, 폴란드어로는 오슈비엥침(Oswiecim)이다.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55㎞ 떨어진 이 곳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폴란드 학생들의 단체 방문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은 폴란드 다른 지역에서 찾았다고 했다. 독일에서 온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독일 청소년들은 동행한 교사가 들려주는 나치스의 만행에 대해 메모하고, 죄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을 위해 기도도 했다. 아우슈비츠는 20세기 최대 인종학살이 자행된 독일의 강제 수용소에서 이제 독일의 끊임없는 과거사 청산 작업의 상징적 출발점이 됐다.

아우슈비츠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스와 히틀러가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정치인, 지식인, 예술인 등을 수용하기 위해 1940년 건립한 수용소다. 폴란드 정치범을 시작으로 주로 나치스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수용됐던 이 곳에서만 무려 150만명이 학살을 당했다. 독일은 1970년 빌 브란트 총리가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이후 50년째 과거사를 반성하며 사죄하고 있다.

오늘은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4년 되는 광복절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 여부다. 독일은 매년 총리가 직접 나서 사죄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오히려 총리가 앞장서 역사를 왜곡하고 그것도 모자라 경제보복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이에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자제 등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왜 일제강점기를 겪어야 했고, 그 당시 선열들은 어떻게 싸우고 맞섰는지에 대한 고민은 다소 부족해 보인다.

솔직히 나 자신부터 부끄럽다. 조국의 독립과 국권회복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대구경북 출신 애국지사 52분이 잠들어 있는 대구 동구 국립신암선열공원을 지난 7일에야 처음으로 찾았다. 그것도 취재차. 1묘역 송서룡 애국지사부터 5묘역 최동식 애국지사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 주신 분들이 계셨다.

일본의 잘못된 선택을 따끔하게 일깨워 주기 위한 일본제품 불매운동도 필요하다. 일본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본여행도 가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전에 일제에 맞서 싸운 우리 선열, 그것도 대구경북의 애국지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광복절과 3·1절에다 당선사례로만 이 곳을 찾는 지역 단체장들의 관심도 절실하다. 국립신암선열공원은 아파트단지와 주택가, 학교에 둘러싸여 대로변에선 보이지도 않는다.

정치권은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공방만 벌였다. 조 후보자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됐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것을 두고 야권은 자격문제, 여권은 색깔론 중단으로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조 후보자를 지명한 것에 대한 여론조사까지 진행됐다. 리얼미터가 14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문 대통령이 조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데 대해 잘했다는 답과 잘못했다는 답이 각각 43.7%와 49.1%로 오차범위 내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념성향별, 지역별, 성별, 연령대별로는 오차범위 밖에서 의견이 갈렸다.

일본 우익의 잇단 망언과 경제보복에 국민들은 조국(祖國)을 위한다는 마음 하나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정치권의 관심은 광복절에도 조국(曺國)에만 있는 듯 하다.
임성수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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