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시선 수필가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 밥, 그 소중한 밥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해본다.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사니? 먹기 위해서? 왜 먹니? 살기 위해서? 일단 웃음이 나온다. 왜냐하면 너무도 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답은 쉽지 않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혼자 밥을 해 먹는다.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과 직장이 한 시간이 더 걸리는 거리다. 또 운전하다보면 왜 이리 졸리는지 모르겠다. 하여 혼자 밥을 해 먹기로 하고, 지금껏 직장 관사에서 생활해 오고 있다. 요즘은 이를'혼밥'이라고 하는 것 같다. 월요일이 되면 아내가 반찬을 만들어서 싸준다. 고맙기 이를 데가 없다. 허나 밥을 하고 차려 먹는 것이 곤욕이다. 가끔 재미도 느끼는데 귀찮을 때가 더 많다.

어디 글에서 본 것 같은데, 남자와 여자가 노후를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남자는 밥해 먹는 것이 제일 두렵고, 여자는 경제적 어려움을 꼽는다. 물론 홀로 되었을 때 이렇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접하고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아직 홀로 된 건 아니지만, 내가 늘 느끼고 있으니 동의할 수밖에. 가끔 아내가 집을 비운다. 가장 두려운 것이 먹는 것이다. 어떻게 끼니를 때울까.

요즘은 그래도 몇 가지 요리를 할 줄 안다. 특히 토종 된장을 넣어서 하는 요리라든가 몇 가지 국은 끓일 줄 안다. 김치찌개나 계란 후라이도 할 줄 안다. 문제는 아내처럼 맛을 못 낸다. 관사에서 스스로 요리를 하고 나서,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낸다. 그러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 준다. 그러나 맛은 없다. 다행이 아들은 요리를 잘한다. 미리부터 가르쳤고 스스로 배웠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혼자 사는데 가끔 가보면 식단까지 짜서 잘 해 먹고 있다. 부러울 지경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밥이란 "쌀, 보리 따위의 곡식을 씻어서 솥 따위의 용기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고 물기가 잦아들게 끓여 익힌 음식, 또는 끼니로 먹는 음식"이라고 되어 있다. 요즘은 밥하기 참 편하다. 전기밥솥이 얼마나 인공지능인지, 다 되었다고 알려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아는가? 어머니가 그 옛날 큰 솥에 보리쌀을 안치고 눈물을 훔치며 불을 때서 퍼 주던 그 따스한 밥을!

그런데 깜짝 놀랐다. 이 밥이란 어원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온다. 요즘 영화 '나랏말싸미' 때문에 한글 공부를 위해 관련 서적을 사서 탐독 중인데 정말 그렇다. 훈민정음 해례본 57번 째 쪽인 '용자례(用字例)'부분에 하나의 예로 나와 있다. 1997년에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이 책은 특별히 해설과 용례가 되어 있어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부른다. 1940년경에 이 책이 발견되지 않았으면 한글창제에 관한 의문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 뻔했다. 서울 광화문 앞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데 세종이 들고 있는 책이 바로 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그러니 밥이란 참 오래된 순 한글이다. 해례본에 한자의 '飯(반)'을'밥'이라 쓴다고 해 놓았다.

나는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다. 어떤 사람은 몇 분 되지도 않아서 뚝딱 한 끼 식사를 마친다. 밥을 먹으며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특히 혼자 밥을 먹는 날에는 아주 편안하게 꼭꼭 씹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진다. 아, 맛있다. 이 밥이 어디서 왔는가? 지금 먹는 이 밥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가끔 어머니 얼굴도 그려진다. 말하자면 밥 명상이다. 과연 밥은 어디서 오는가?

한자에 쌀 미(米)자가 있다. 글자를 풀어보면 팔십팔(八十八)이다. 쌀 한 톨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여든여덟 번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이야 농사가 기계화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어떠했겠는가? 이 말은 참말이다. 심어서 가꾸고, 거두어 빻고, 씻어서 안치고, 퍼서 그릇에 담아 마침내 내 입에 들어온다. 대충만 해도 그 과정이 기나긴 여정이다. 이를 안다면 어떻게 밥을 남길 수 있다는 말인가.

언젠가 사찰에서 발우공양을 한 적이 있다. 이 공양은 앉은 자리에서 먹고 앉은 자리에서 설거지까지 하는 식사법이다. 핵심은 남기면 안 된다. 처음이라서 좀 남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 대가로 설거지물까지 다 들이켠 적이 있다. 밥의 소중함을 하늘처럼 깨닫는 순간이었다.

논어 향당 편에 보면 공자의 식습관이 나와 있다. 그 중에 식사하실 때는 말을 하지 않았고, 비록 거친 밥이라도 고수레를 지냈다는 말이 있다. 맞다. 밥을 먹을 때는 말을 하지 않고 음식을 만든 이의 공덕을 생각한다. 또 혼자 다 먹는 것이 아니라, 미물에게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조상들이 밥 먹기 전에 행했던 고수레 의식이다.

왜 먹는가? 살기 위해 먹는다. 결코 먹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 밥은 그 자체로 생명이요, 공덕이요, 어머니이다. 다짐해 본다. 앞으로는 혼자 밥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최시선 수필가
최시선 수필가

※약력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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