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터키, 18세 돼야 성적 결정 가능… “은별이 사건 해외선 유죄” [탐사기획-'은별이 사건'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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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14개국 설문 조사/ “성관계 위험 알기엔 아이들 미성숙” 인정/ 아일랜드 동의 연령 17세, 英 16세, 佛 15세/ 印尼 18세… “외모 성숙도 법정 참작 안 돼”/ 亞서 한국보다 동의 연령 낮은 국가 比뿐/ 일각 “동의 연령 올리면 또래 성관계도 범죄”/ 전문가 “로미오와 줄리엣法 등 보완 가능”

“나는 판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 아동의 ‘강간’ 주장이 성인 가해자의 ‘연인관계(romantic relationship)’ 주장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론적으로 16세 미만 아동은 성행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아리안 쿠브외 활동가·벨기에)

‘은별이 사건’은 5번의 소송을 거쳐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로 결론 났다. 그러나 27살 연상인 남자와 성관계를 맺고 아이까지 출산한 소녀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논쟁적’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였으면 무죄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 사건을 두고 국내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낮은 아동인권 인식을 꼬집었다. 그럼 외국인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까. 세계일보 취재팀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다양한 관점과 ‘성적 동의 연령’ 기준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판단,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6일까지 국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강선혜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팀장, 비영리 국제네트워크 ‘엑팟 인터내셔널’ 사무국의 도움을 받아 세계 각국에 은별이 사건에 관한 의견과 동의 연령 기준 등 질문을 담은 설문을 보내 14개국 시민단체로부터 답변서를 받았다. 활동가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로 이를 정리해 봤다.

◆“아이는 아이다(a child is a child)”

우선 설문에 응한 14개국 중 12개국에서 ‘우리나라 같으면 유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왔다. 설문에 응한 이들이 속한 나라들 가운데 태국, 사모아, 보츠와나는 아동의 성적 동의 연령이 18세로 가장 높았다. 반면 나이지리아와 필리핀은 12세로 가장 낮았다.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는 연령과 상관없이 ‘혼전 성관계는 모두 처벌된다’고 했다.

동의 연령이 높은 국가에선 이 사건을 ‘범죄’로 보는 시각이 확고했다. 성관계 당시 아동의 나이가 15세란 점에 주목한 것이다.

마후루프 활동가(스리랑카)는 “스리랑카의 동의 연령은 16세이고, 그 이하 아동과 성관계 시 무조건 범죄가 된다”며 “아이를 출산한 것은 성관계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로, 가해자가 부인할 경우 유전자(DNA)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리오 활동가(인도네시아)도 “아동보호법에 의거해 18세 미만 아동과의 성교는 범죄”라며 “18세 미만 아동의 경우 외모의 성숙도가 법정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껫사니 찬뜨라꿀 활동가(태국)는 “15세 이하 아동과 음란행위를 할 경우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10년 이하 중형이 선고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답변들은 모두 ‘아이들은 미성숙해 성관계가 야기하는 각종 위험을 충분히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모레니케 아데예오마이보예 활동가(나이지리아)는 “아이들은 ‘결정’에 대한 의미를 잘 모를 수 있으므로 18세 미만은 법률로 충분히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결정’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달랐다. 예컨대 동의 연령이 16세인 스위스 같으면 이 사건은 ‘범죄’다. 하지만 17세 이상 청소년과 어른의 성관계는 그 자체로 범죄가 되진 않는다. 마누엘 오이크스터 활동가(스위스)는 “스위스에서 17세 이상은 성관계에 동의할 수 있는 나이”라고 했다. 물론 ‘아이와 어른의 사랑’은 유럽에서도 논쟁의 소지가 큰 사안이다. 토마스 카우프만 활동가(룩셈부르크)는 “최근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20대 남성이 13세 여아와 성관계를 했다가 법원에 기소됐으나 ‘연인관계’로 잠정 결론이 났다”며 “하지만 대중의 압력(huge pressure from general public)으로 결국 ‘강간’이란 재판결이 내려졌다”고 소개했다.
‘무죄’ 쪽에 무게를 둔 의견도 있었다. 소피아 파파도풀루 활동가(그리스)는 “아동의 나이가 15세 이상인데, 그리스 같으면 미성년자에 대한 남성의 성적 행동(lechery)에 대한 제재가 그리 엄격하지 않다”며 “법원에서 미성년자의 공포감보다는 행위의 동의 여부에 중점을 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리스의 동의 연령 기준은 15세다.

이슬람 문화권은 관점이 아예 달랐다. 다이레트리스 활동가(모로코)는 “(안타깝게도) 모로코에선 ‘아동이 성범죄를 유발했을 수 있다’는 식으로 가해자는 물론 아동에게도 책임을 묻곤 한다”며 “일부다처제이고 12∼17세 소녀가 30∼40대 성인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자체가 범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로코의 경우 미성년자와의 혼외 성관계는 1개월∼1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강제성이 인정되면 5년 이하 징역형이 선고된다고 한다.

◆“국제 기준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어”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한국은 아동이 성적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보는 ‘동의’의 기준 연령이 다른 나라보다 너무 낮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즉, 한국에선 아이가 13세만 넘기면 나이차가 얼마가 나든 어른을 포함한 누구와도 성행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과 달리 외국에선 최소 15∼16세, 많게는 18세는 돼야 그 정도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들과의 비교는 현재 한국이 처한 위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의 연령이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멕시코(12세) 하나뿐이다. 하지만 멕시코도 연방법상 최저 기준이 그렇다는 것이지 개별 주정부는 14∼16세를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은 아일랜드(17세), 영국·네덜란드·노르웨이·스페인·러시아(이상 16세), 프랑스·스웨덴·덴마크(이상 15세) 등이다. 미국은 16∼18세, 호주는 16∼17세로 지역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보다는 훨씬 높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동의 연령이 14세로 주변국에 비해 다소 낮지만 아동과 성관계를 맺은 상대방이 양육 책임자나 교사 등 아동과 ‘특수관계’인 사람이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아시아 국가로 좁혀도 우리보다 연령 기준이 낮은 곳은 필리핀뿐이다. 중국과 북한은 각각 14세, 15세를 경계로 아동에 대한 성적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란, 파키스탄, 쿠웨이트,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국가들은 연령과 상관없이 미성년자와의 혼외 성관계를 무조건 처벌한다.
일각에선 ‘동의 연령을 일률적으로 올리면 청소년끼리의 성관계도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완 입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2008년 동의 연령 기준을 14세에서 16세로 상향한 캐나다는 12∼13세 아동은 나이차가 2살 이내, 14∼15세 아동은 5살 이내인 상대방과는 성적 행위에 동의할 수 있도록 했다. 텍사스 등 미국 일부 주는 나이차가 4살 이내인 경우 청소년과의 성관계를 범죄로 여기지 않는 이른바 ‘로미오와 줄리엣 법’을 시행하고 있다.

앞선 설문에서도 아리안 쿠브외 활동가는 “벨기에에선 16세 미만 아동은 자기보다 5살 이상 많은 사람과의 성관계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이 경우 ‘강간’으로 치부된다”며 “하지만 비슷한 연령인 10대끼리의 ‘사랑’은 (범죄로)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선혜 탁틴내일 팀장은 “다른 국가들의 연령 기준이 무조건 옳다거나 그들이 아동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면서도 “대부분 국가가 16세 이상을 동의 연령으로 삼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하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태훈·김민순·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세계일보 취재팀은 1990년 설립된 비영리 국제네트워크 ‘엑팟 인터내셔널(ECPAT International)’의 도움을 받아 각국 시민단체에 온라인 설문지를 보냈다. 설문지는 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은별이(A씨) 사건’을 정리·번역해 만들었다. A씨가 구치소에 있던 조모씨를 77회 면회한 점, 이 과정에서 애정표현이 담긴 편지를 150여통 보낸 점, 편지를 쓸 때 여러 색깔의 펜을 이용하고 스티커를 붙인 점 등 대법원이 ‘성범죄’가 아닌 ‘사랑’으로 본 근거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객관적 답변을 당부하면서 가능한 한 구체적 법률 조항이나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설문에는 리나 창(사모아희생자지원그룹)·모레니케 아데예오마이보예(나이지리아여성컨소시엄)·리오(엑팟 인도네시아)·껫사니 찬뜨라꿀(엑팟재단·태국)·토마스 카우프만(엑팟 룩셈부르크)·마후루프(엑팟 스리랑카)·마누엘 오이크스터(아동보호를 위한 스위스 재단)·리사 자무(디딤돌인터내셔널·보츠나와)·다이레트리스(아마네·모로코)·팀 에케사(아동 발전을 위한 케냐 동맹)·아리안 쿠브외(엑팟 벨기에)·소피아 파파도풀루(아리스·그리스)·익명(엑팟 필리핀)·익명(말라위 아동의 눈) 등 14개국 활동가가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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