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혁상] 붕어, 개구리, 가재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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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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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몇 해 전 한국 사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국에서도 꽤 팔리긴 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유독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만큼 ‘정의’를 찾기 어려워진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을 듯하다. 행정부처 가운데 ‘정의’와 연관성이 깊은 부처가 법무부다. 영문으로는 미니스트리 오브 저스티스(Ministry of Justice)다. 미국 법무부도 같은 이름을 쓴다. 사법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목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우리 사회에서 꽤 오랫동안 정의와 공정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왔다. 교수 시절 소셜미디어와 기고, 강연을 통해 날카로운 말과 글로 기득권 세력의 병폐를 지적했다. 이런 것들이 청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고 그는 연예인급의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런 글과 말을 몇 개 꼽아봤다.

“내 부모가 누구인가에 따라 내 노력의 결과가 결판나는 식. 우리 사회의 가장 근원적 문제다.” “학계가 반성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잠을 줄이며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들이 있다.”

“장학금 지급 기준을 성적 중심에서 경제상태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 “위장전입은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여력, 인맥이 없는 시민의 마음을 후벼 파는 소리다.”

“대한민국은 어린이에게 주식·부동산·펀드 투자를 가르친다. 동물의 왕국이다.” “사교육 혜택은 대부분 상위계층 학생들이 누리고 있다. 명문대라면 귀족 클럽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장관 후보자의 비리 의혹을 청문회에서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남의 자잘한 구린내에 코 박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수 시절 그의 인기를 견인해온 발언들을 꼽아보니 금수저가 아닌 절대다수의 청년들이 열광했을 법하다. 그들의 마음을 100% 대변해주고 있다는 공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은 어떤가. 시민 마음을 후벼 판다고 했던 위장전입을 했어도 그 건은 2005년 이전이라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고2 딸은 모친 소개로 참여한 2주 인턴십을 통해 논문 제1저자로 버젓이 등재됐다. 자녀를 거액의 펀드 투자자로 만들어줘 동물의 왕국에 합류시켰다. 50억원이 넘는 경제상태를 고려했는지 딸은 유급을 두 번 했는데도 1000만원이 넘는 격려 차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특목고 위주 입시교육을 ‘아동 학대’라고 했지만 그의 딸은 특별한 전형을 통해 학력을 높여갔다. 문재인정부의 상징처럼 보였던 그가 알고 보니 우리 사회의 금수저이자 특권계층이었고, 불법은 아니었을지언정 이런 특권을 십분 활용해 재테크를 하고 자녀 교육을 한 것은 분명하다. 청년들이 실망 차원을 넘어 깊은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정부 대표주자인 조 후보자와 그 가족을 둘러보면 과연 기회는 평등했고, 과정은 공정했으며, 결과가 정의로웠는지, 앞으로도 그럴지 의문이다. 혹시 그 안에 위선이 숨어 있지는 않았는지도 궁금하다. “우리들 ‘개천에서 용 났다’류의 일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10대 90 사회’가 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확률은 극히 줄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경쟁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

조 후보자의 7년 전 트위터 글이다. 혹시라도 말이다. 이 짧은 글에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진심이 그대로 담겼던 것은 아닐까. 넘을 수 없는 선은 넘보지 말라는 것인데, 너무도 현실적인 말이지만 90%의 국민은 왠지 서글퍼질 것 같다. 개천에서 용을 꿈꾸는 붕어, 개구리, 가재들의 마음을 너무 심하게 후벼 파는 건 아닌지.

남혁상 사회부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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