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콧대 높은 남자' 시라노, 그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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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8.20. 오전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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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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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만에 ''화려한 귀환''.."올 뉴 시라노"
- 넘버 새로 편곡하고, 극은 더 촘촘해져
- LED로 화려한 영상효과 구현..몰입감 ↑

뮤지컬 ‘시라노’의 한 장면. 시라노(조형균)와 가스콘부대(앙상블)가 전쟁터에서 넘버 ‘가스콘 용병대(The gascons)’를 부르고 있다(사진= CJ E&M)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가뜩이나 ‘콧대 높던 남자’가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2년 만에 한층 업그레이드 된 재미와 감동을 장착하고 다시 나타난 뮤지컬 ‘시라노’ 얘기다. 30곡 가까운 넘버(삽입곡)를 새롭게 구성하고, 더 촘촘하게 내용을 가다듬은 ‘시라노’는 희극과 비극이 잘 버무려진 ‘희비극(喜悲劇)’ 정석에 바짝 다가선 모습이다. 2년 전 시라노는 잊어도 된다. 영웅물의 옷을 살짝 벗고 로맨스를 입더니 완전 다른 작품이 됐다. 매 공연 커튼콜 때마다 터져나오는 기립박수는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 ‘2019 시라노’에게 관객들이 보내는 아낌없는 찬사다.

◇“2년 전 시라노는 잊어라”

뮤지컬 ‘시라노’는 1897년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집필한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가 원작이다. 같은 해 12월 파리의 ‘포르트 생마리탱 극장’에서 첫 연극을 올린 뒤 300일 연속 공연되면서 명작 반열에 올랐다. 이후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로 번역되며 영국의 ‘햄릿’, 스페인의 ‘돈키호테’에 비견되는 프랑스의 국민문학으로 대접받았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오페라, 연극의 모티브가 됐던 ‘시라노’는 2009년 ‘지킬 앤 하이드’를 만든 작가 레슬리 브리커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에 의해 뮤지컬로 탄생했고, 2017년 국내에서 라이선스 뮤지컬로 초연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언어와 칼을 다루는 데 따를 자가 없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검객인 시라노는 아름다운 여인 록산을 어린 시절부터 짝사랑 해왔다. 1대 100으로 싸워도 승리를 거두는 탁월한 검술, 읊는 대로 시가 되는 문장력, 불의에 위풍당당하게 맞서는 기개 등을 지닌 그에게 단 하나 없는 것은 외모다. 먼 발치에서 봐도 눈에 확 띄는 거대하고 못생긴 코 때문에 시라노는 록산 앞에 나서지 못하고 남몰래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시라노는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는 ‘꽃미남’ 크리스티앙과 록산이 서로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말솜씨가 부족한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연애편지를 써주는 ‘사랑의 조력자’를 자처한다. 시라노는 전쟁터에서도 목숨을 걸고 매일 록산에게 편지를 띄운다. 편지를 통해 크리스티앙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던 록산은 시라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서야 편지를 쓴 진짜 주인공이 시라노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는 내용이다.

뮤지컬 ‘시라노’의 한 장면. 늦은 밤 시라노(최재웅)가 크리스티앙(송원근)을 대신해 록산(박지연)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사진= CJ E&M)


◇화려해진 무대, 싹 바뀐 캐스팅

이야기는 그대로, 하지만 ‘2019 시라노’는 많은 부분에서 큰 변화를 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무대’다. 초연 때 덩그러니 세트만 놓여있어 휑했던 무대가 각종 영상효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발광다이오드(LED)로 구현한 황폐한 전쟁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붉은 노을 등이 현실감을 더해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회전무대를 활용해 다양한 공간감을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다. 회전무대는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의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 가스콘 부대의 전투신 등 중요한 장면마다 요긴하게 활용된다.

배우들의 면면도 싹 바뀌었다. 프로듀서이자 ‘시라노’ 역을 맡은 류정한과 초연 당시 스윙(공연 상황에 따라 여러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전천후 배우)으로 출연했던 강동우를 제외한 모든 배우의 캐스팅을 새롭게 했다. 이번 재연에는 ‘시라노’ 역에 류정한, 최재웅, 이규형, 조형균이, ‘록산’ 역에는 박지연, 나하나가, ‘크리스티앙’ 역에 송원근, 김용한이, 드가슈 역에 조현식이 각각 출연한다.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새로운 얼굴들이 펼치는 앙상블은 ‘2019 시라노’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캐릭터에 미묘한 변화를 준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록산’은 보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현대 여성으로 그려졌다. “검술을 배우고, 여성문학지를 쓰고 있다”는 록산의 대사는 달라진 캐릭터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원작에는 없는 대사로, 이번에 새로 삽입됐다. 초연 때 비극적 운명의 영웅 느낌이 강했던 ‘시라노’는 이번엔 한층 위트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표현됐다.

◇아름다운 넘버와 대사..‘역시, 시라노’

시라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세기를 넘나드는 감동을 주는 것은 아름다운 넘버와 감미로운 대사들 덕분이다. 이번에도 역시 시라노는 시라노다. 새롭게 편곡한 29곡의 넘버들은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 특히 1막의 대미를 장식하는 ‘나 홀로 (Alone)’와 ‘벨쥐락의 여름(Summer time in bergerac)’, ‘거인을 데려와(Bring me giants)’, ‘가스콘 용병대(The gascons)’, ‘마침내 사랑이(Love is here at last)’ 등은 압권이다.

여기에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살린 고전적인 대사가 극에 품격을 더한다. 늦은 밤 시라노가 뒤돌아서서 크리스티앙 대신 록산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계속 말이 헛나오는 크리스티앙에게 록산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시라노가 대신 나서 “별똥별이 암흑을 뚫고 빛날 자리를 찾아가듯, 내 서툰 말들도 어둠을 더듬어 당신을 찾아가고 있소”라고 대답한다. 록산이 다가오려 할 때에는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짐작만 하는 건. 난 오로지 어둠이고, 당신은 오로지 빛이에요. 난 지금 너무 떨려요”라고 얘기한다.

한 남자의 순애보를 통해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때론 유쾌하게, 때론 감동적으로 잘 그려낸 ‘수작’이다. 2년 전과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됐다고 할 만큼 완성도가 높아졌다. 초연 때 지적받았던 극 전개의 개연성 부족, 지루한 1막 등의 문제는 말끔히 사라졌다.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영상효과, 웃음코드까지 보는 내내 눈과 귀가 즐겁다. 국내에서 유난히 낮은 ‘시라노’의 인지도를 얼마나 극복할 지가 흥행의 관건이지만,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 없다. 10월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티켓 가격은 6만~14만원.

뮤지컬 ‘시라노’의 한 장면. 달빛 아래서 시라노(류정한)가 넘버 ‘나 홀로(Alone)’를 부르고 있다(사진= CJ E&M)

윤종성 (js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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