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역사 속의 태극기’ 기념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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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8.21. 오전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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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의 경제전쟁 와중에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았다. 올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국민의 각오는 여느 해와 다르다. 대일 경제적자를 개선해서 경제속국을 탈피하자는 염원이 더욱 간절하다. 경제 독립의 의지는 태극기로 표현됐다. 올해 광복절에는 ‘태극기 이벤트’가 유난히 많았다. 서울 강남구는 ‘태극기 거리’를 조성됐다. 종로구는 ‘태극기 나무’를 꾸몄다. 시민도 적극 호응했다. 프로야구장은 태극기 물결로 넘쳤다.

우정사업본부는 8월 14일 제74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역사 속의 태극기’ 기념우표 총 16종 112만장을 발행했다.


필자의 생각으로 최고의 태극기 행사는 우정사업본부가 8월 14일 발행한 ‘역사 속의 태극기’ 기념우표다. ‘역사 속의 태극기’ 기념우표는 우정사업본부와 문화재청이 협의를 통해 등록문화재 태극기 20개 중 16개를 선정했다. 16종의 태극기 속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압축돼 있다. 태극기 역사는 한민족의 정체성이었고 자존의 상징임을 보여준다.

1882년 최초의 태극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조선 국기는 없었다. 조선의 지배권 유지를 원했던 청나라가 국기 제작을 권했다. 중국 관리 마건충은 “독립국이면 국기가 있어야 한다”며 “삼각형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네 개의 발이 달린 용을 그려넣은 청나라 국기를 변형하라는 압박이었다. 그러던 중 고종은 미국으로부터 조인식에 게양할 국기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다. 김홍집에게 국기 제작을 명했다. 김홍집은 역관 이응준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어기인 태극 팔괘도를 응용한 첫 국기가 만들어졌다. 흰색 바탕에 청홍의 태극 문양을 그리고 네 모서리에는 건곤감리 4괘가 그려져 있다. 당시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미국 측 협상대표였던 로버트 W 슈펠트 제독은 〈조미조약체결사〉에서 ‘조선 국기는 이 조인식을 위해 함상에서 급히 제작됐다’고 적고 있다. 이 태극기는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에서 게양됐다. 슈펠트 제독이 조인식이 끝난 뒤 미국으로 가져갔다. 이 깃발은 같은 해 7월 해군 서적 〈해상국가들의 깃발들〉에 ‘COREA Ensign’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됐다. 1883년 3월 6일 정식으로 국기가 제정, 공포됐다. 하지만 국기 제작에 관한 방법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지 않았다. 태극문양과 사괘 위치는 그리는 사람마다 각기 달랐다. 1944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정한 국기 양식을 마련했지만 국내까지는 전파되지 않았다. 1949년 오늘날 태극기의 모양이 확정되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태극기가 만들어졌다.

기념우표로 제작된 ‘역사 속의 태극기’는 현존하는 것만을 골랐다. 가장 오래된 국기는 일명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3·1운동 당시 승려들이 의병활동을 하면서 사용한 ‘진관사 소장 태극기’,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완전한 독립국가의 염원을 담아 만든 ‘한국 광복군 태극기’, 김구 선생이 1941년 미국으로 가는 신부에게 건넨 ‘김구 서명문 태극기’, 한국전쟁 때 서울 수복 전투 중에 미군이 시민에게 받은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 등이다.

‘데니 태극기’는 고종이 1890년 외교 고문인 미국인 오언 데니에게 선물한 깃발이다. 1981년 데니의 외손자인 윌리엄 롤스턴 1세가 태극기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정부가 환수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이 깃발은 고종의 궁궐 내 행차 때 사용된 것이다. ‘진관사 소장 태극기’는 2009년 5월 서울시 은평구 소재 진관사 칠성각 해체 보수과정에서 발견됐다. 승려들이 3·1운동에 참여하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태극기의 특징은 일장기 위에 태극문양을 덧칠하고 4괘를 그려넣은 것이다.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그릴 제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일본을 물리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일장기에 태극기를 그린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한국광복군 태극기’에는 광복군을 비롯한 동지들의 의리와 자유 열망, 독립 의지가 서명되었다. 광복의 환희와 미래에 대한 기대, 그리고 민족 자립에 대한 결연함을 태극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태극기 목판’도 기념우표에 담았다. 태극기 목판은 3·1운동 때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데 사용된 널판이다.

김경은 기획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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