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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서석대를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어서 저녁노을이 물들 때 햇빛이 반사되면 수정처럼 강한 빛을 발하면서 반짝거리기 때문에 ‘서석의 수정병풍’이라 했답니다.
ⓒ 서종규
무등산 서석대에 올라 그 곳에 가 보았습니다. 혹시나 하고 찾아보았습니다. 순백으로 탐스럽게 피어 있던 구절초는 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빨간 나뭇잎이 대신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올랐던 서석대를 다시 20여 일만에 올랐던 것이지요.

서석대에 왜 오르느냐고 묻는다면 반문할 것입니다. 밥은 왜 먹느냐고? 뚱딴지 같은 말인가요? 무등산에 오르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물결치는 억새에 놀란 나뭇잎들이 발갛게 달뜨기 시작하는 계절에 서석대가 손짓하는데, 어떻게 버티겠어요?

▲ 보세요. 서석의 햇살이 나뭇잎에 스며들고 있지요?
ⓒ 서종규
서석대(1100m)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어서 저녁 노을이 물들 때 햇빛이 반사되면 수정처럼 강한 빛을 발하면서 반짝거리기 때문에 '서석의 수정병풍'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바위 틈새는 주상절리를 형성하고 있어서 신비롭기까지한데 바위 틈새에는 나무들이 자라 벌써 잎들이 물들어 있습니다.

▲ 서석대에 서면 저기가 무등산 아래 제 2수원지가 있는 계곡으로 단풍의 물결이 밀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서종규
서석대 아래도 나뭇잎들이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상서로운 햇살이 스며들어 나뭇잎들이 하나하나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나 봅니다. 물들어 가는 잎새들이 아래로 아래로 뻗어가고 있었습니다. 햇살을 가득 진 빨간 나뭇짐들이 성큼성큼 아래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서석대 바로 아래에 물들어 있는 단풍입니다.
ⓒ 서종규
서석대 위에 멈추어 섰습니다. 못내 아쉬워 앉아서 바라보았습니다. 저 아래 광주 시내까지 뻗은 붉은 기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무등산 천왕봉의 높이가 1187m입니다. 그런데 자꾸 서석대만 이야기하니 조금 이상하지요? 그런데 서석대까지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좋은 단풍의 물결을 산 정상의 9부 능선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아쉬움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상인 천왕봉까지는 채 500m도 되지 않지만 천왕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승용차의 번호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첨단 위성의 시대에 무등산 정상은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 승용차의 번호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첨단 위성의 시대에 무등산 정상은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 서종규
천왕봉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며 단풍이 기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만 가득 서석대에 내려놓았습니다. 입석대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쉬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입석대 아래 장불재는 아직도 억새의 천국이었습니다. 활짝 핀 억새의 물결은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무등산을 올라오는 길에서 만난 어떤 학생의 손에 억새꽃 다발이 쥐어져 있어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학교에서 소풍을 온 모양이었습니다. 억새가 너무 좋아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갔던 것 같습니다. 가을이면 이 무등산 장불재는 학생들의 소풍장소가 되는 것이지요. 무등의 가을을 느끼게 하려는 선생님들의 배려이겠지요.

이번은 혼자 하는 산행이었습니다. 13일(목) 오후 2시에 무등산 증심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봉황대-중머리재-중봉-서석대-입석대-장불재-규봉암을 돌아 원효사 계곡인 무등산장으로 가는 14km 정도의 길로, 무등산 종주라고 말하기도 하는 산행입니다.

▲ 무등산 장불재에서 뒤로 돌아 규봉암 가는 길은 지공너덜겅이 펼쳐 있는데 그 사이사이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습니다.
ⓒ 서종규
무등산 장불재를 타고 돌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규봉암 가는 길입니다. 서석대에서 천왕봉에 올라가는 길을 잃어버린 아쉬운 마음을 안고, 무등산의 8부 능선인 900m 정도의 길을 타고 무등산을 빙 돌아가는 길입니다.

오후 5시에 장불재의 억새 터널을 빠져 나왔습니다. 이윽고 접어드는 길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정한 단풍의 길이었습니다. 단순하지만 신기한 발견이 있습니다. 단풍은 항상 북쪽이 더 아름답게 든다는 것입니다. 물론 북쪽이 더 빨리 드는 것은 당연하고요. 북쪽을 돌면서 바라본 화순 쪽의 들판은 아직도 황금의 구름이 일고 있는데 이미 추수가 끝이 난 곳도 있었습니다.

무등산의 동쪽을 돌아 북쪽으로 나아가는 규봉암 가는 길의 단풍은 붉게 타는 화려함보다는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였습니다. 지공너덜의 바위틈에 떨어져 있는 단풍이 사그라지지 않고 모자이크처럼 붙어 있었고, 길가에 쌓이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정겨웠습니다. 석양에 비치는 나뭇잎들은 더욱 산뜻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덜겅은 지구의 화산 활동이 활발했을 무렵 땅 속의 바위들이 솟아오르면서 용암이 되어 흐르다가 식어버리자 산비탈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와 쌓여 형성되었을 돌무더기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멀리서 보면 돌이 흘러 내려오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 지공너덜은 산의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3km 남짓이나 돌바다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가 이곳에 와서 석굴을 만들고 많은 제자에게 불법을 가르치면서 좌선수도 하다가 그의 법력으로 수없이 많은 돌을 이곳에 깔아 놓았는데, 누가 어느 돌을 밟아도 덜컥거리지 않는다네요. 그리하여 이곳을 지공너덜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많은 돌은 본시 상봉 근처에 있는 돌무더기였는데 김덕령 장군이 하루아침에 깨뜨렸다가 내던져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전설도 있답니다(무등산 도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참고함).

▲ 규봉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뒤에 우뚝 솟은 바위가 있습니다.
ⓒ 서종규

▲ 규봉 바위 틈에 자라난 나무잎들에도 붉은 햇살이 스며드는가 봅니다.
ⓒ 서종규
규봉암은 확실한 창건 연대가 문헌에 나타나 있는 것은 없고 다만 신라시대의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그 뒤에 순응대사가 이어서 중창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절의 입구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돌기둥을 규봉이라 했답니다. 이 규봉암은 지금 불사에 한창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대형 포크레인이 어떻게 900m 고지인 이곳까지 올라 왔는지 신기했습니다.

규봉암의 뒤편에 솟아 있는 높은 바위들은 그대로 화가의 손으로 그린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바위 사이에 위태롭게 자라난 나무들의 잎들이 물들어 형언하기 어려운 절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석양의 쏟아지는 햇살로 직광을 받아 사진으로는 찍을 수 없는 몽환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 무등산의 치솟은 바위가 가장 웅장한 곳 중의 하나인 규봉입니다.
ⓒ 서종규
아차, 분위기에 휩쓸려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밤 여섯 시를 넘긴 산길은 금방 어둠이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준비해 두었던 전등을 켜 들었지만, 아뿔싸 건전지의 수명이 다 되어 켜지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 정도의 하산 길을 혼자 더듬더듬 기어 내려왔습니다. 얼굴을 내밀던 반달마저 나무 그림자에 가렸습니다. 스치는 억새소리도 가슴을 움츠리게 하였습니다.

▲ 무등산은 햇살을 가득 진 빨간 나뭇짐들이 성큼성큼 아래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서종규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있는 사진은 10월 13일(목) 오후 등반하면서 찍은 것이나, 다섯 번째 사진은 9월 19일 등반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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