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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2일 비극이 시작됐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공장에 들어갔지만 공권력은 77일 만에 이들을 짓밟았다. 3년이 지난 지금, 쫓겨난 노동자들은 상복을 입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서있다. 22명이 사망했다. <오마이뉴스> 쌍용차 옥쇄파업 3년을 맞이해 사회적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편집자말]
배우 김여진씨(자료사진).
 배우 김여진씨(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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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여진씨는 본래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나근나근 하지만 거기에 실려 있는 언어는 '돌직구'처럼 항상 묵직했다. 김제동, 이효리가 '참여호소형'이라면 김여진씨는 현장에 직접 '선수'로 뛰는 스타일이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을 찾아가 밥을 펐고, 부산 영도에서 조선소의 담을 넘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날라리 세력'들을 이끌고 제주도를 찾기도 했다.

'배우가 본업인 연기는 안 하고 다른 일에만 매달린다'는 비난도 그를 비켜간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박하사탕>부터 지난해 <아이들>까지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와 각종 TV 드라마, 연극까지 뻗은 그의 작품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렇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는 '완성형 소셜테이너'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지금 그 사람은 조용하다. 가끔 트위터를 통해 몇 마디 말을 던지지만 예전만 못하다. MBC와 KBS 등 언론 파업에, 대한문에 차려진 쌍용차 분향소에, 1600일을 넘긴 재능교육 투쟁에, 다시 시작된 홍대 청소노동자들 싸움에 왠지 있어야 할 것 같은 그가 없다. 지난 2월 출산한 그는 지금 생애 첫 '엄마'로서 삶을 살고 있다.

지난 9일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여진씨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오는 11일 열리는 쌍용자동차 후원 바자회 <눈에 띄네>와 추모콘서트 <악! 樂> 때문이었다. 그도 여기에 소장품을 내놓는다(관련기사 : 공지영·백기완·김미화의 '애장품'을 드립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육아에 '올인'하고 있는 그와는 전화조차 쉽지 않았다. 어렵게 시간을 맞춰 통화한 인터뷰에서 그는 역시 "쌍용차는 비겁하다, 정치권이 나서야 된다"며 거침없는 직구를 던졌다.

"죽음의 소식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김여진씨는 이날 전화인터뷰에서 "쌍용차에서 죽음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참담해진다,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라며 "정부와 회사는 왜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해고노동자들을 내버려 둔 채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쌍용차에는 "뻔히 보이는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비겁하다"며 "정신 차리고 제대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우리나라에서 해고는 너무 쉽다"며 "일어날지도 모르는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된다면 국민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통해 정리해고와 같은 시스템에도 변화가 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아기만 아니면 나가서 누구든지 붙잡고 따져 묻고 싶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수화기 너머에서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김여진씨의 목소리는 애써 차분했지만 다급함을 감추지는 못했다. 준비한 몇 가지 질문을 못 한 채 전화를 끊어야 하는 순간 그는 "쌍용차 문제는 정말 우리의 문제"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그는 "이 사람들의 죽음이 멈춰야지 우리도 안심할 수 있다"며 "무슨 일이든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김여진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아이가 예정일보다 일찍 나온 걸로 아는데 건강한가요?
"잘 지내는데 워낙 갓난아이여서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가 없네요.(웃음)"

- 남편(김진민 MBC PD)은 100일 째 파업 중이고 김여진씨도 사실상 일을 못하고 있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네. 졸지에 '백수 부부' 돼서 간당간당해요.(웃음) 그래도 아이가 막 태어난 시기에 아빠와 같이 있는 건 복이라고 생각해요. 평소 같으면 아이랑 남편이 이렇게 같이 있기 힘드니까요."

- 금요일(11일) 쌍용차 바자회에 물건을 내놓는다고 들었어요. 직접 오실 예정인가요?
"나가지는 못해요. 선글라스 두 개하고 일본에서 산 블라우스 하나 기증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셔서 다 팔렸으면 좋겠어요."

- 요즘 트위터도 잘 안 하시던데, 총선기간에도 그랬고요.
"아이 때문에 그 몇 마디 쓸 시간도 내기 어렵네요. 총선기간에도 트위터에 별말 안 했어요. 쌍용차 문제 해결해 달라, 공약해 달라 그랬어요.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 최근에 스물두 번째 죽음이 알려지면서 다시 쌍용차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야기 되는 거 같아요. 소식 들었을 때 어땠나요?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될 때마다 점점 더 참담한 기분이 들어요. 진짜 화가 나는 게, 정부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그냥 우리 주변의 사람들까지 목숨을 목숨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또 죽었어'(덤덤하게)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건가? 죽음이 계속되는데 아무도 대책을 세우지 않잖아요. 한 회사에서 병으로 22명이 죽었다고 하면 그게 얼마나 큰일이에요. 근데 병도 아니고 자살, 돌연사로 죽고 있는데 모두가 너무 모른 척하고 있어요. 그런 소식 들을 때마다 정말 가슴이 미어져요."

"죽음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게 문제"

연대바자회 '눈에 띄네' 포스터
 연대바자회 '눈에 띄네' 포스터
ⓒ 쌍용차 희생자 100인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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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쌍용차에서 신입 공채를 진행해서도 논란이 됐는데, 알고 있나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무슨 제조라인은 안 뽑는다 그런 소리를 하는데, 지금 징계해고 받은 분들은 부당했다고 판결받은 분들도 있잖아요. 법원에서 잘못됐다고까지 판결했는데 그분들부터 다시 채용해야죠. 사람이 죽어나가면 회사에서 조사한다든가, 불러서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를 들어 볼 수도 있는 건데, 이건 나 몰라 정도가 아니에요. 그냥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 회피하는 거죠.

쌍용차 하나만 책임 있는 건 아니지만, 정말 비겁합니다. 기업이 정말 어떤 누군가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해야죠.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진짜 나라 망신 아닌가요? 아기만 아니면 나가서 누구든지 붙잡고 따져 묻고 싶어요. 도대체 왜 가만히 있냐고요.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죽음이 계속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그 이유를 모르는 게 문제인 거 같아요. 노동자들이 해고된 후 어떤 삶을 사는지 우리는 전혀 모르잖아요. 희망퇴직하신 분들은 그런 구조조정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분들이었을 텐데, 쌍용차 희생자 대부분이 희망퇴직자인 걸 보면 그랬던 분들조차 아주 큰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거죠. 이 문제는 우리 사회 모두, 나를 포함한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지금 한진에 재능에 콜트콜텍에 쌍용차까지 사람을 안 자르는 회사가 없어요. 비정규직 없는 회사 없어요. 전 국민적 문제죠. 그렇다면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가 어떻게 지냈고, 그 가족이 어떻게 지냈고, 왜 죽음을 선택했는가 알아봐야죠. 지금 그걸 아는 사람이 있나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것도 있고."

- 어떤 방법으로 쌍용차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평소 생각한 게 있다면?
"정치하는 분들이 나서야 되죠. 지금 정혜신 박사님이랑 쌍용차 노동자 가족들이 운영하는 '와락'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잖아요. 비록 작은 힘이라도 나서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고 있는데, 정치권도 야당이 힘없다고 할 게 아니라 특별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더 죽게 둘 수 없다'고 나서야죠."

- 한진중공업도 그렇고 쌍용차도 그렇고, 단지 해고되지 않거나 복직된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거 같진 않아요. 뭐가 바뀌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해고가 너무 쉬워요. 정말 말도 안 되게 쉽게 합니다. '경영상의 불가피한 이유'라면서 해고를 하는데,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경영상의 이유를 가지고도 해고를 하잖아요. 그게 가능하다면 국민 전체의 삶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요.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대책은 아무것도 없고. 다수 국민의 삶을 그렇게 몰면 안 되는 거죠. 무엇보다 해고를 쉽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중요해요."

"희망버스는 기적, 웃어야 끝까지 함께할 수 있다"

22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 추모 분향소가 설치된 가운데, 지난 3일 낮 파업을 벌이며 수익사업으로 한우를 판매 중인 국민일보노조가 준비한 한우 요리로 언론노동자들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22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 추모 분향소가 설치된 가운데, 지난 3일 낮 파업을 벌이며 수익사업으로 한우를 판매 중인 국민일보노조가 준비한 한우 요리로 언론노동자들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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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희망버스는 사회에 큰 파장을 줬잖아요. 그 출발에 함께했었죠. 쌍용차도 분명 목숨이 걸린 문제고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인데 왜 그렇게 안 될까요?
"그때는 나름의 이야기가 생긴 거 같아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던 그 크레인에서 먼저 두 사람이 죽었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다시 올라갔죠. 그리고 그 이야기가 트위터를 통해 전파되고…. 사실 희망버스는 트위터의 힘이에요.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가 희망버스를 가능하게 했죠.

사실 저를 포함한 대중들은 얄팍한 면이 있어요. 거기 크레인 위에서 누군가가 소리 높여 '아프다', '죽겠다', '살려달라' 소리쳤다면 사람들은 외면했을 것 같아요. 그럴 때 김진숙은 누구 봐도 힘든 상황에서 농담을 하고 편안하게 말을 걸었죠. 그래서 대중은 김진숙과 그냥 친구가 돼버렸죠. 우리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라고 외쳤는데 사실 그게 정말 웃음이 나서 웃는 게 아니에요. 웃어야 끝까지 함께할 수 있으니까 정말 고통을 참고 참으면서 웃는 거라 생각해요."

- 하지만 죽음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웃으면서 싸우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는 거 같아요.
"저도 그분들에게는 웃으면서 하자는 말 못하겠더라고요. 죽지 않게 하자고, 어떤 죽음을 막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이미 죽고 있는 거잖아요. 그 생각만 하면 정말 갑갑해요. 우리 사회의 직무유기에요. 우리들의 직무유기고,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 정부의 직무유기죠."

- 희망버스 당시 임신해서 그 뒤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거 같습니다. 김여진에게 희망버스는 무엇이었나요?
"처음 갈 때 한 번 밖에 못 갔어요. 바로 아이가 생겨서. 전 그야말로 김진숙 지도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같이 갔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어요. 그런 사적인 마음들이 모여서 그다음을 이어 갈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거 같아요. 비를 맞고 공장의 담을 넘고 각자가 살아가는 삶에서 서러운 이야기도 듣고 하며 뜨거운 감정 상태를 함께 겪고 나니까 사람들이 달라졌어요.

그 뒤에 몇만 명씩 참가자들이 늘어나는 걸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그 힘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 커져가는 걸 봤을 때 기적처럼 느껴졌죠. 그 힘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퍼져 나간 건지는 연구해야 할 문제겠죠." 

- 복귀는 언제쯤 하실 거 같나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힘드실 것 같은데.
"복귀는 너무 먼 이야기죠.(웃음) 아이 100일에 맞춰 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5월 23일로 돼 있는데 임신 중에 태교 겸해서 썼던 글들이에요. '나는 왜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가', 뭐 그런 이야기를 쓴 책이에요. 그래서 그때 한두 번쯤 나가게 될 일이 있을 않을까 싶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 아이가 많이 우는데 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끝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면?
"쌍용자동차에서 일어나는 일은 정말 우리 문제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해고가 너무나 쉽기 때문에 우리도 당장 일자리를 잃을 수 있어요. 당신의 가족 중 누구도 그럴 수 있어요.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그 죽음은 곧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어요.  우리의 것이 될 것. 이 문제를 해결해야 우리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태그:#김여진, #쌍용자동차, #쌍차, #희망버스, #바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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