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순창 고추장마을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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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30   |  발행일 2019-08-30 제36면   |  수정 2019-08-30
단맛 도는 매운 공기가 흐르는 듯…입맛 돌게 하는 거리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순창 고추장마을
발효소스토굴. 장을 숙성시키는 숙성실이자 장의 종류와 역사, 담그는 방법 등을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순창 고추장마을
발효소스토굴 내 세계소스관. 50여 개국 약 600개의 소스가 전시되어 있으며 소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알 수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순창 고추장마을
발효소스토굴 내 숙성실. 고추장마을 여러 업체의 장들이 숙성되고 있다.

“우와, 저 산 뭐지?” 직선으로 뻗어 오르던 길이 갑자기 치솟더니 산이 되었다. 뭉툭한 봉우리를 가진 삼각형의 산, 산은 마치 망원경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눈 앞 가까이에 있었다. 아미산(峨眉山)이라 했다. 미인의 눈썹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동지지’에 보다 흡족한 설명이 있는데 ‘꼭대기에는 항아리 모양의 큰 바위가 있다’라는 기록이다. 물론 항아리 모양의 큰 바위는 보이지 않지만 이 마을과는 썩 잘 어울리지 않나, 순창 고추장 마을. 줄지어 선 기와지붕들보다 먼저 저 산에 과하게 마음을 뺏기고 나니 이 이름난 마을에 조금 미안해진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순창 고추장마을
순창고추장마을. 순창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고추장 제조 장인들이 모여 순창고추장의 명성과 전통적 제조 비법을 이어가고 있다.


◆북향으로 조성된 아미산 아래 고추장마을

젊고 잘생긴 소나무들이 띄엄띄엄 가로수로 서 있다. 격자무늬의 도로는 이곳이 현대에 만들어진 전통마을임을 알려준다. 대부분 집들은 한식기와를 얹은 한옥의 형태다. 도로변으로 토석담장과 가게의 유리문이 이어진다. 유리문에는 장인의 이름과 각종 생산품목이 열거되어 있다. 가게 앞에 대문 안 마당에 담벼락에 항아리들이 가득하다. 구슬을 감춘 주먹처럼 앙증맞은 것에서부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풍만한 것까지, 저마다 폭폭 숨 쉬며 느리지만 완벽을 향해 전진하는 놀라운 것들을 품고 있다. 콩이 메주가 되는 것은 이해할 것도 없지만 콩이 간장이 되고 고추장이 되는 것은 약간 쑥스럽지만 연금술 같지 않나. 그러한 지속적이지만 돌연한 놀라움과 함께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자적인 저 윤기 나는 배(腹)들은 연약하고도 소중한 인상을 주었다.

순창 고추장마을은 순창군에서 1994년부터 1997년까지 3년간에 걸쳐 계획적으로 조성한 마을이라고 한다. 전통 장류 산업을 활성화하고 순창고추장의 명성과 전통적 제조 비법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순창군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고추장 제조 장인을 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선택된 땅은 아미산 아래 백산리. 고추장마을은 북향으로 조성됐다. 겨울이면 눈 쌓인 산이 하얗다 해서 백산리라 명명된 이 땅의 지형과 기후가 고추장의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순창고추장은 다른 지역과 달리 늦여름에 메주를 띄워 겨울에 담근다. 겨울에 고추장을 담그면 서서히 숙성되어 단맛이 깊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순창 고추장마을에는 명인 인증을 받은 장인과 전통 제조법을 전수한 자손들이 모여 산다. 전체 40여 가구에 인구는 100여명 정도다. 집집마다 고추장 제조 기능인이 저마다의 고추장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재래식 된장과 간장, 감, 깻잎, 오이, 마늘, 고추, 도라지, 더덕, 매실 등으로 만든 장아찌도 있다. 가격은 집집마다 모두 동일하며 마을에서 제조되는 장류와 절임류의 품질관리는 마을 입구에 자리한 순창식품과학연구소에서 맡는다. 거리에 단맛 도는 매운 공기가 흐르지는 않지만, 이름만 보아도 생각만 해도 고추장은 확실히 입맛을 돌게 한다.

마을 주변에는 순창장류박물관, 옹기체험관, 순창장류체험관, 순창장류연구소 등 고추장 관련 시설이 들어서 있다. 2004년에 대한민국 제1호 장류산업특구로 지정되었다. 마을과 연접한 오른쪽의 너른 대지에는 메주공장, 세계화 절임류 공장,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 순창군장류사업소 등이 들어서 있다. 백산리 마을은 일종의 ‘장류밸리’인 셈이다.


◆장류밸리 구석에 자리한 ‘발효소스토굴’

‘장류밸리’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토굴이 있다. 정식 이름은 ‘발효소스토굴’. 창의성도 즐거움도 없는 이름이지만 무엇을 위한 장소인가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장고’라는 창고가 있었다. 바로 장을 보관하는 곳이다. 장고는 장고마마라는 상궁이 지켰다. ‘발효소스토굴’은 현대의 ‘장고’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곳, 어둡고 고요한 정적의 공간을 상상하게 되지만 들어가 보면 좀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름을 찾게 된다.

토굴은 길이 134m, 최대 폭 46m로 옛날 다랭이 논을 파내어 1층 구조의 콘크리트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 위로 흙을 2m 높이로 쌓아 놓은 인공굴이다. 무엇보다도 시원하다. 고추장마을에서 지글지글 타오른 정수리가 단번에 식는다. 토굴은 평균 18℃를 유지하고 있어서 한여름과 한겨울 피난처로 좋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미술관처럼 꾸며놓은 ‘세계소스관’이다. 50여 개국 600개 정도 되는 각종 소스가 전시되어 있다. 소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알 수 있다. 다음은 ‘미디어아트관’으로 장의 제조과정과 숙성 과정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각양각색의 곰팡이 균이 공간을 날아다니고 아이들은 그들을 쫓아 뜀박질한다. 장독대를 만지면 그 속에서 익어가는 장들이 보인다. 미디어아트관 안쪽에는 가상현실관이 자리한다. 직접 게임 속 1인 플레이어가 되어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데, 테러집단이 순창 씨간장을 훔쳐가서 우리가 북한과 협력해 씨간장을 되찾아오는 이야기다. 엄청 진지한 게임이다. 다음은 세계의 다양한 소스를 5가지 색으로 구분해 놓은 전시관이며, 마지막에는 커다란 원형 저장고가 위치한다. 저장고에는 고추장마을의 각종 장들이 숙성되고 있다.

순창고추장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어린 시절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순창의 만일사를 찾아가던 중 어느 농가에서 맛본 고추장을 잊지 못해 진상하도록 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진상품이 된 순창고추장은 이후 그 명성과 비법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전한다. 이제 순창과 고추장은 분리되지 않는다. 발효소스토굴은 2016년 임시 개장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다. “아, 나가고 싶지 않구나.” 토굴의 유리문 너머 아직 기력이 남은 무더위가 두껍게 진을 치고 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정동진 & 환선굴 기차여행(무박 2일)= 9월6·7·20·21일(매주 금·토 출발) 정동진, 환선굴, 삼척죽서루, 이사부사자공원, 묵호수산시장. 8만4천700원부터. 경산역, 동대구역, 대구역, 왜관역, 구미역, 김천역 탑승. <주>우방관광여행사 (053)424-4000

◆ 정동진&바다열차 기차여행(무박 2일)= 9월6·7·20·21일 (매주 금·토 출발) 정동진, 바다열차, 추암촛대바위,이사부사자공원, 동굴신비관, 묵호수산시장. 9만6천원부터. 경산역, 동대구역, 대구역, 왜관역, 구미역, 김천역 탑승. <주>우방관광여행사 (053)424-4000

◆ 제주도 여행= 9월 1·2·3·4·5일 승마체험, 동백카멜리아 힐, 서귀포 해상유람선, 제주 워터 서커스쇼 등 포함 노팁, 노옵션. 1인 28만원부터. <주>우방관광여행사 (053)424-4000

▨ 여행정보

대구광주고속도로 순창IC로 나가 좌회전한다. 계속 직진해 고추장단지교차로에서 좌해전해 들어가면 순창고추장마을이다. 마을 앞 고추장단지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조금 가다 왼쪽 전통절임류세계화지원센터로 들어가면 된다. 그 뒤쪽에 발효소스토굴이 위치한다. 토굴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 요금은 성인 2천원, 소인 500원이다. 발효소스토굴 내 VR체험들은 무료다. 토굴 입장권 소지자는 고추장마을 10개 업체에서 고추장 등을 구매 시 15% 할인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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