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선비들 왈 "인생 뭐 있어? 거침없이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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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疎狂見矣謹嚴休 (소광견의근엄휴) 세상이 미쳤는데 근엄할 게 무엔가

只合藏名死酒褸 (지합장명사주루) 이름은 감추고 술이나 마시다 죽지

兒生便哭君知不 (아생편곡군지부) 아이가 태어날 때 왜 우는지 아는가

一落人間萬種愁 (일락인간만종수) 세상 근심 끝이 없어 그러는 거라네

'세상이 미쳤다'고 조롱하는 이 시를 지은 사람은 조선 말엽 대표적인 위항 시인인 정수동이다. 정지윤이란 본명보다 별호인 수동으로 더 많이 알려진 그는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헌종과 철종시대 사람이다.

<조선사 쾌인쾌사>
ⓒ 추수밭

김삿갓이 조부 김익순을 비난하는 시를 지었음을 비관하여 천하를 방랑하며 세상을 조롱한 것처럼, 출신의 벽에 가로막힌 정수동도 권문세가들의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사회를 익살과 촌철살인으로 풍자하고 조롱하다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정수동은 일본어 역관 출신의 가계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역관으로만 출세할 수 있었다. 출신이 이렇지만 추사 김정희가 사랑하여 옆에 붙들어두고 싶어 할 만큼의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며 당대의 명신인 김홍근, 김좌근, 남병철, 조두순 등과  교분을 맺고 있었다.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이들 명신들이 어떻게든 정수동을 도우려고 먼저 손을 내밀곤 했다고 한다. 그러니 출세하기로 작정하면 어떤 길이야 없겠냐만 정수동은 끝내 벼슬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미친 세상'에서 벼슬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그가 재상집 앞을 지나는데 종으로 보이는 한 아낙네가 울고불고 난리였다. "아이가 동전 하나를 삼켰다"는 것인데, 아낙네의 난리가 얼마나 요란했던지 안에서 폼 깨나 쟤고 앉았던 대감까지 나오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 만큼 한바탕 난리였다.

"그냥 배만 살살 쓰다듬어주면 저절로 나을 것이니 안심하세. 누구는 남의 돈 7만 냥을 삼키고도 끄떡없는데 겨우 자기 동전 한닢을 삼켰을 뿐이거늘 어찌 탈이 나겠는가?"

정수동이 나서서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대감은 얼굴이 붉어지고 어쩔 줄 몰라 했다나. 그리하여 결국 몇 달 전에 받은 뇌물을 되돌려 주었다나. 이 재상이 권세를 이용하여 매관매직한 것을 아낙네의 난리를 지켜보던 정수동이 통렬하게 조롱 비판한 것이다.

이수광의 <조선사 쾌인쾌사>(추수밭 펴냄)를 통해 정수동의 일화 몇 가지를 읽다보니 상민이나 다름없는 정수동이 양반들의 뺨을 후려친 통쾌한 일화가 생각난다. 

정수동이 어쩌다 양반들과 술을 마시게 되었다. 고상한 시회를 핑계 삼은 분탕한 술자리였다. 썩은 자들과 술을 마시는 것도 못마땅한데, 이 양반들 보소. 평소 자신들을 조롱하는 정수동을 작정하고 골탕 먹일 양이었던지라 정수동만 쏙 빼고 자기들끼리만 잔을 돌린다.

이에 정수동은 중간에 돌아가는 술잔을 계속 가로채 마신다. 이를 참다못한 옆자리 양반이 정수동의 뺨을 후려친다. 그러자 정수동은 재깍 몸을 돌려 다른 쪽 양반 뺨을 냅다 후려친다. 뺨을 맞은 양반이 붉으락푸르락해져 호통을 쳤음은 당연하다. 그 양반님께 정수동 왈.

"저는 뺨을 돌리는 줄 알았습니다."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양반들을 정수동은 이렇게 호탕하게 조롱하고 만다. 이렇듯 정수동의 조롱 대상은 주로 권문세가 양반들이다. 양반들에게 촌철살인한 정수동은 정작 빨래터의 아낙네들에게 골탕을 먹는 등 힘없고 이름 없는 백성들과의 일화에선 자못 해학적이고 인간적이라 절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겠다 싶은 그런 사람으로 보인다.

주막집 외상술을 대고 먹는 그였지만 주모가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돈만 생기면 외상부터 갚았다거나 가계를 돌보지 않았음에도 부부의 정이 남달랐다는 이야기까지 전하고보면 그는 썩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민간전승설화에서는 이런 정수동을 평양의 김선달이나 경주의 정만서처럼 기발한 술책으로 남을 골탕 먹이는 건달쯤으로 다루기도 한다. 때문에 서울을 중심으로 수원·의정부 등의 중부지방에 정수동의 기괴한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나.〈일사유사(逸士遺事)>는 정수동을 설화적 인물로 기록한 대표적인 문헌설화집이다.

어쨌거나 <조선사 쾌인쾌사>를 통해 만나는 정수동은 출신의 벽 때문에 미친 세상을 살아야 했기에 일생이 비통하지만 유쾌하다. 양반 세도가들의 부패가 극에 달한 조선 말엽 그 시대에 양반들을 주로 조롱하고 뺨까지 후려칠 수 있었던 그의 촌철살인은 오늘날의 부패를 후려치는 것 같아 통쾌하고 한줄기 소나기처럼 후련하다고 할까?

"인생 뭐 있어? 거침없이 하이킥"-가슴 속 시련을 극복하는 재치와 해학

조선시대 우리 선조의 풍자와 해학이 낭자한 이 책을 내는 것은 경제 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드리기 위해서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잠시 숨 돌릴 여유가 필요하다. 이 책은 독자들의 가슴 속 시련을 한 방에 날려 보내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으로 엮은 것으로 바로 그런 여유가 되어줄 것이다.

지나치게 경박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근엄한 것도 옳지 않다. 역사에서 웃음을 잃지 않은 선인들, 심지어 임금 앞에서도 장인어른을 골탕 먹인 오성 이항복의 지혜와 촌철살인의 해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이 책은 유쾌, 상쾌, 통쾌한 책이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이야기를 가려 뽑았다.-저자의 말 중에서

이수광의 <조선사 쾌인쾌사>(추수밭 펴냄)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조선사에서 가장 통쾌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이수광은

1954년생 이수광은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는 특히 추리소설과 역사서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글쓰기와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대중 역사서를 창조해왔다고.

1983년에 단편 <바람이여 넋이여>가 중앙일보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저 문 밖에 어둠이><우국의 눈><사자의 얼굴>로 여러가지 제목의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조선을 뒤흔든 21가지 비극 애사><조선 여인 잔혹사><나는 조선의 국모다><세상을 뒤바꾼 책사들의 이야기> 외 다수가 있는데, 이중 몇 권은 베스트셀러로 불린다.

저자의 책들은 역사서를 쓰는 또 다른 작가들의 참고서가 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저자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용재총화><해동악부><성수패설><금계필담><병자일본일기><임하필기><잡기고담><청파극담><명엽지해><교수잡사><어수신화(어수록><속어면순><기문><고금소총><어면순><태평한화골계전>과 같은 문인들의 문집과 야담집을 낱낱이 훑어 그중 35편을 뽑아 책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책들에서 뽑은 35편의 이야기에 저자 특유의 입담을 더해 버무렸다. 여기에 이야기에 걸 맞는 <대퀘도>나 <이 잡는 노승> <무산쾌우첩> <길 떠나는 선비> 등과 같은 50여 점의 풍속화를 곁들였기 때문에 풍속화를 보는 덤까지 가질 수 있는 그런 책이다.

'포복졸도 할 만큼 재밌네! 옛사람들은 음담패설도 격조있게?' 이런 느낌으로 읽은 이 책의  주요 내용들은 조선을 웃기고 울린 유쾌한 사람들(快人), 촌철살인의 해학과 풍자로 통쾌한 웃음을 주는 일화들(快事), 단 몇 줄로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유쾌한 시들(快詩), 민중들의 거리낄 것 없는 풍속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야담(快談). 4장으로 구성됐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모습이 있는 것처럼 책에도 저마다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타고난 끼와 재치로 여러 사람을 웃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그런 사람처럼 거칠고 험한 세상을 웃게 만드는 그런 매력을 지닌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너나없이 힘든 세상, 복잡한 일상일랑 잠시 미뤄두고 신분과 지위, 궁핍한 생활의 한계가 있는데도 한세상을 호쾌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본다면 가슴속 시련을 조금이라도 위안받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의 내용을 좀 더 쇄하면.

▲송도 기생 설중매 왈, "왕씨도 섬기고 이씨도 섬기는 대감이야말로 노류장화가 아니더냐" ▲ 자신을 ?아낸 서당 훈장에게 김삿갓이 "선생은 내 불알이다" ▲영의정 남편의 수염을 몽땅 뽑고 당당히 사약을 받은 조선 최고의 여장부 송씨 ▲스님들을 악귀로 그린 취옹 화사 김명국이 스님에게 "악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악귀다" ▲조선 시대 악동클럽 배낭족의 좌충우돌 여행기 ▲이초로가 자신의 시(詩)에 미친 이선의 졸작을 호평한 사연 ▲선비 뺨치는 시골 여인네들의 오언절구, '접동새는 좃짝좃짝 하고 운다?' ▲어느 신부 초보 신랑을 한탄하며 "뒷산만 오르느라 헛되이 땀만 흘렸구나!" ▲여종에 헛물켜다 '짐승'이 된 조선 선비들의 멋쩍은 추락 그 주인공들 ▲금기를 깬 부부의 항변 "때려죽여도 하룻밤에 여섯 번은 불가하다. ▲조선 최고의 허풍쟁이 해인사 스님 VS 석왕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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