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교만과 욕심을 고칠 묘약…어디서 구하랴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생각나무'의 생각으로 세상읽기]

사무실을 옮기다 잊고 있던 짐 하나가 나왔다. 보따리를 풀었더니 약들이 쏟아진다. 먹는 약, 바르는 약, 붙이는 약, 죄다 있다. 일 년 전 것이 있는가 하면 십 년 전 것이 있다. 양이 놀랍고 종이 신기했다. 대부분 겉봉을 뜯지도 않은 것들이다.

희한하게도 내가 산 약은 없었다. 하나같이 선물 받은 것만 모아놓았다. 그들은 약을 건네며 '건강하세요'라는 덕담을 빠뜨리지 않았다.

왜 이리 많은 약을 받은 것일까. 내가 병치레 잦은 약골로 보였나 싶어서 민망했고, 먹으라고 준 선물을 입에 대지도 않은 것이 미안했다. 약통의 먼지를 털어내며 그들의 마음씨를 돌이켜보았다.

무슨무슨 '골드'라고 되어 있다. 건강보조식품이다. 시골 사는 한 여성이 연말선물로 주었다. 잘 되었다 싶어 성분과 함량을 살펴보았다. 자라의 특정부위를 순간적으로 얼렸다 잘게 부수어 분말로 만들었다고 한다. 가격은 이십팔만 원.

이 정면 효능에 절로 믿음이 생긴다. 그런데 이런…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헛물켜다 만 꼴이다.

유독 나에게 약을 권한 적이 없는 선배의 얼굴이 겹친다. 그의 말이라면 콩 심은 데 팥 난다고 해도 믿었다. 그는 약 대신 말로 때웠다.

조선 후기 한의학자로 '사상의학'을 창안한 이제마의 말이다.

"사람의 엉덩이에는 게으름이 들어 있고, 어깨에는 교만함이, 허리에는 음란함이, 심장에는 욕심이 들어 있다."

게으름과 교만함과 음란함과 욕심이라니, 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이 아닌가. 몸이 아예 병덩어리다. 몸은 마음에 의지하고 마음은 몸에 깃드니 어느 세상에서 묘약을 구하겠는가. 아무래도 백약이 무효일 성싶다.

그 많은 약을 선물한 친구들아, 섭섭하겠지만 도리 없다. 무슨 수가 있겠는가. 아무 수가 없다. 나는 약 안 먹고 버티련다. 삶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그것이 직방이다.

출처 ㅣ 꽃 피는 삶에 홀리다(생각의 나무)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