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 만들기 ‘홈브루잉’ 해보니-개성 있는 ‘나만의 맥주’…나누는 기쁨은 ‘덤’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낮에는 코딩, 밤에는 양조.’

수제맥주 종주국인 미국 실리콘밸리 내 젊은 창업가들의 요즘 생활 패턴이란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수제맥주를 집에서 직접 양조해 마시는 ‘홈브루잉’이 인기다. 국내에서도 양조 전용 키트를 판매하는 등 집밥에 이어 ‘집술’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홈브루잉의 원조는 우리나라가 아닐까. 집집마다 ‘가양주’를 담가 먹던 음주가무의 민족 아니던가. 마침 이태원에서 500㎖ 한 잔에 6000~7000원 하는 수제맥주 가격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터. 집에서 한 통 만들어 실컷 마시고 선물도 하면 금상첨화! 수제맥주 홈브루잉에 도전해본 이유다.

수제맥주 양조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전용 키트를 사서 만들거나 맥아(malt), 홉(hop), 효모(yeast), 설탕 등을 직접 구입해 전문 양조시설을 빌려 제대로 만들거나다. 전자는 필요한 재료와 레시피가 모두 제공돼 간편하니 초심자에게 좋다. 단, ‘맥덕(맥주 덕후)’이라면 이 정도로는 성에 안 찰 수 있다.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후자를 권한다. 어설픈 맥덕인 기자는 둘 다 해봤다.



▶공방서 전문 양조

▷수제맥주 A to Z 배우려면 추천

세상은 넓고 맥덕은 많다. 수제맥주는 만들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가련한 맥덕을 위해 전문 맥덕들이 모여 만든 수제맥주 공방이 알고 보면 많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비어랩협동조합’도 그중 하나다. 5만원 안팎이면 누구나 공방을 이용할 수 있고, 양조법 교육도 들을 수 있다. 지난 1월 23일 오후 4시 비어랩협동조합에서 다른 수강생 3명과 함께 수제맥주 양조를 진행했다. 주종은 ‘아메리칸 페일 에일(APA)’.

양조 과정은 총 7단계. 곡물 분쇄→당화(1시간)→여과·잔당 회수(15분)→끓이기(1시간)→식히기→발효(1~2주)→병입·탄산화(1주 이상) 순이다.

먼저 맥아를 제분기에 넣고 1.8㎜ 두께로 분쇄한다. 맥아가 너무 크면 당화(단맛 추출)가 어렵고, 너무 잘면 여과가 안 되니 적당한 크기로 분쇄해야 한단다. 이렇게 분쇄한 맥아를 대형 당화조에 넣고 생수를 붓는다. 생수 양은 맥아량의 3배, 온도는 67℃가 적당하다. 알코올과 당분, 풍미가 잘 어우러져 나오는 최적의 온도라고. 단, 곡물을 넣으면 온도가 내려가니 물을 74℃로 데운 뒤 붓자. 이후 물 온도가 67℃로 유지되는지 확인하며 맥아가 눌어붙지 않도록 꾸준히 10~20분에 한 번씩 저어준다. 이렇게 1시간이 지나면 초반 당화 작업이 끝난다. 여기까지는 식혜 만들 때 엿기름 내는 것과 똑같다. 아니나 다를까, 맛을 보니 식혜처럼 살짝 달큰하다. 이대로 식혜를 만들어 먹고 싶은 마음을 겨우 가눴다.

다음은 여과·잔당 회수. 당화조 밑에 달린 필터를 열면 층층이 쌓인 맥아가 천연 거름망이 돼 맥아를 우려낸 누런 물만 흘러나온다. 단, 처음에는 미세한 맥아 가루가 섞여 나올 수 있다. 그럼 다시 당화조에 부어 또 여과시킨다. 이렇게 2~4번 반복하니 꽤 맑은 맥즙이 걸러져 나왔다. 당분이 쪽 빠져 푸석해진 남은 맥아는 소 사료로 쓰인다고. 소들아 미안해.

다음은 끓이기. 20ℓ 맥즙을 1시간 끓이면 보통 4ℓ는 공기 중으로 증발돼 사라진다. 때문에 수제맥주 20ℓ를 만들려면 맥즙 24ℓ를 끓여야 한다. 맥주의 쌉쌀한 맛과 풍미를 책임지는 홉도 이때 넣는다. 이날 교육을 담당한 임승환 비어랩협동조합원은 “수제맥주는 그야말로 과학이다. 적정 온도와 위생을 지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 홉도 전자저울로 재서 그램 단위까지 레시피를 정확히 지켜 넣어야 맛이 잘못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여기까지 3시간여가 흘렀다. 방법만 익히고 나면 집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참아야 한다. 당분을 잔뜩 머금은 맥즙을 1시간 끓이면 증발한 당분이 온 집안에 퍼지기 때문. 그토록 위생관리를 철저히 한 공방도 기화된 당분이 눌어붙어 바닥이 끈적거렸다.

끝으로 식히기. 쉬울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냥 두면 물론 알아서 식는다. 하지만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 먼지나 세균이 들어가 오염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칠러(chiller·냉각수가 흐르는 장치)를 이용해 단시간에 식히는 게 좋다. 맥즙이 식으면 깨끗이 소독된 발효조로 옮겨 효모를 넣는다. 이때 에어락 설치는 필수. 발효조 내부에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외부공기 유입은 차단해준다. 이 상태로 12~25℃에서 1~2주 발효시키면 된다. 2주 뒤 병입할 때는 설탕을 맥주 1ℓ에 5~7g 정도 넣는다. 효모가 설탕에서 당을 먹고 이산화탄소를 뿜어내 톡 쏘는 탄산 맛을 키워준다. 효모야 고마워.

홈브루잉으로 직접 만든 APA(왼쪽)와 IPA. 더 일찍 만들어 오래 숙성한 IPA가 더 진한 색상과 맛, 풍미를 보였다. (사진 : 노승욱 기자)


▶키트로 간이 양조

▷몰트원액캔 하나면 만사 OK

맥주맛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면 수제맥주 키트를 이용한 간이 양조도 해볼 만하다. 키트에 포함된 몰트원액캔 하나면 곡물 분쇄, 당화, 여과·잔당 회수, 홉 투입 등 여러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편리하다. 10만~40만원을 들여 초기 장비를 장만하고 이후부터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1만~3만원대에 재료만 구입해서 만들면 된다. 주종은 ‘인디안 페일 에일(IPA)’을 선택했다.

양조 방법은 간단하다. 응고된 몰트원액을 녹이기 위해 팔팔 끓인 생수 2ℓ를 소독한 발효조에 함께 붓는다. 나무 주걱으로 잘 풀어준 뒤 생수 8ℓ를 추가로 부어준다. 이후 효모를 넣고 뚜껑을 닫은 뒤 에어락을 꽂고 발효조를 가동시키면 ‘끝’이다. 참 쉽죠잉? 1주 뒤 설탕과 함께 병입, 탄산화되기를 기다렸다.

▶직접 담근 수제맥주 마셔보니

▷숙성할수록 깊은 맛…가성비도 뛰어나

키트로 간이 양조한 수제맥주는 유리병에, 공방에서 전문 양조한 수제맥주는 플라스틱병에 넣었다. 병입 후 탄산화에 들어간 지 불과 이틀 만에 사고가 났다. 수제맥주를 담은 유리병 하나가 ‘퍽’ 소리와 함께 깨져버린 것. 탄산 생성을 감안해 조금 적게 담았다 싶었는데도 양 조절에 실패한 듯하다. 산산이 깨져 바닥에 흥건히 흐르는 맥주를 보며 탄산의 무서움을 느꼈다.

병입 일주일 후 마셔보니 아직은 밍밍한 맛이다. 그래도 홉의 향긋한 풍미는 느껴진다. 탄산만 좀 있으면 이대로도 라거 맥주보다는 맛있을 듯하다.

일찍 만든 IPA는 3주, 늦게 만든 APA는 1주를 더 숙성시킨 뒤 다시 맛봤다. 오 마이 갓! 한 달간 숙성된 IPA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을 냈다. 맛과 풍미 모두 수제맥주 전문점에서 사 마신 것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와인 전문가인 김지형 르꼬르동블루 총괄매니저는 “이탈리아 프리잔테 와인처럼 잔잔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깊고 다양한 풍미가 느껴져 다시 생각나는 술”이라며 극찬했다.

APA도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살아 있기는 했지만 IPA에 비하면 탄산과 맛, 향 모두 살짝 아쉬웠다. 전문가가 교육하며 함께 만든 APA보다 레시피대로 집에서 혼자 간단히 만든 IPA가 더 맛있는 이유는 세 가지일 테다. 숙성 기간이 중요해서거나, IPA가 더 입맛에 맞아서거나, 아니면 ‘미맹’이어서거나.

초심자라면 간이 양조도 꽤 괜찮은 선택이다. 장비값을 제외하면 키트, 생수, 전기료를 다 더해도 시중에서 사 먹는 것보다는 10배, 전문 양조보다도 3~4배 이상 가성비가 뛰어나다. 무엇보다 선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직접 담근 IPA 10병 중 1병은 깨지고 5병은 선물했다. 지인들도 생각보다 맛있고 정성이 담긴 수제맥주 선물에 감동했다. 제조원가만 따지면 한 병에 3000원도 안 되지만, 나눠 마시는 기쁨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 사진 : 윤관식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7호 (2018.02.28~2018.03.06일자) 기사입니다]

▶뉴스 이상의 무궁무진한 프리미엄 읽을거리
▶아나운서가 직접 읽어주는 오늘의 주요 뉴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