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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노래방 도우미의 출구 없는 삶

미스 퍼플 (Ms. Purple)

[Oscilloscope Laboratories]

[Oscilloscope Laboratories]

LA 코리아타운. 23세의 한인 여성 케이시(티파니 추). 그녀의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있고 병세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15세 때 집을 나간 남동생 캐리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낮에는 아버지를 돌보고 저녁때는 생계 유지를 위해 코리아타운 노래방에 나가 도우미 일을 한다. 노래방 손님들의 희롱 섞인 무례함이 그녀의 삶을 한층 더 고달프게 하지만 도우미 일은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경제수단이다. 케이시의 하루 하루의 삶은 점점 더 침울한 색상으로 채색되어 간다.

자신을 위해서는 그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전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이다. 한때는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꿈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반 의식 불명의 아버지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의 '마지막'을 위한 절차를 밟으라고 조언한다. 어릴 적 상심에 빠져있던 아버지가 했던 말, "나에게는 너밖에 없다"는 그 말 한마디에 케이시의 삶은 지체되어 있다.

케이시가 집을 비우는 동안 아버지 병간호를 해주던 간호사로부터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통보를 받는다. 케이시는 하는 수 없이 오랫동안 소원했던 동생 캐리에게 연락, 도움을 청한다. 특별한 직업도 없이 게임방을 전전하며 살아오던 캐리의 등장으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미스 퍼플'은 올해 선댄스 영화제의 최고상 심사위원대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숨은 인재들이 메인스트림을 두드리는 경합장 선댄스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저스틴 전의 단골무대이다. 배우로 출연했던 2015년 작 '서울 서칭(Seoul Searching)', LA 폭동을 배경으로 한 감독 데뷔작 '국(GOOK)'으로 존재감을 보이더니 세 번째 참가 작품 '미스 퍼플'은 최고상 후보에 까지 오르는 진일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영화는 두 남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플래시백에 의존하는 스토리텔링의 단조로운 구성으로 전개된다. 한 번도 여유롭지 못했던 이민가정,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그리고 아버지의 무능력한 모습들이 묘사되어 지나가며 수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부모를 따라 기회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을 왔지만 케이시와 캐리는 단 한 번도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들 남매의 모순적 삶, 불행한 아이러니의 연속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되었음이 점차 부각된다. 아버지의 무능이 불만이었던 어머니는 '유능한' 다른 남자를 찾아 어린 남매와 가정을 버렸다. 아버지의 무능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고 케이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떠맡아야 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거짓 웃음과 의미 없는 대화로 남자들에게 순간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도우미로서의 삶, 그리고 가난과 소외감으로 가득한 실제의 침울한 삶이 대칭된다. 토니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노래방의 남자들'은 대체로 속물적 유형으로 묘사된다. 케이시에게 돈을 주며 그녀와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는 토니에게 케이시는 모멸감을 감수하며 '대리 애인'이 되어준다.

감독은 그 어떤 구체적 결말도, 메시지도 없이 커다란 공허함만을 남긴 채 영화를 끝낸다. 모두가 가고 없는 홀로의 공간에서 케이시는 언젠가 아버지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캘리포니아의 팜트리는 심어진 거야. 팜트리는 여기서는 자라지 않아. 그냥 우리처럼 여기에 뿌리 박고 살고 있는 거야."


김정·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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