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권총, 한 손에는 장바구니.
105세 할머니 요리사의 복수는 오늘도 계속된다!
앙증맞은 노파와 냉혈한의 두 얼굴
마르세유의 최고령 요리사인 로즈. 105세의 이 할머니는 나이를 속여가며 온라인 만남 사이트에서 애인을 찾고, 자신의 레스토랑 ‘라 프티 프로방스’에 온 손님에게 추파를 던질 만큼 노익장을 만끽하며 산다.
누가 보면 앙증맞은 노인네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인생 역정에서 불행을 안겨준 장본인들을 찾아내 피의 복수극을 펼친 냉혈한의 또 다른 면모를 감추며 살아왔다. 그녀의 인생은 ‘살인의 시대’ 20세기 역사의 굴절 속에서 하염없이 구겨졌다. 로즈가 태어나던 해에는 장차 인류를 재앙으로 몰고 갈 세 명의 마초가 살고 있었다. 히틀러가 18세, 스탈린이 28세, 마오쩌둥이 13세였다.
이들이 펼쳐놓은 격랑의 암울한 시절, 그녀는 부모와 가족을 송두리째 잃었고, 사랑했던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새롭게 인연을 맺었던 중국의 연인과 사별해야 했다.
“누구를 진정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복수를 끝낸 시점에서야 비로소 가능해. 그때가 되어야 홀가분해지니까.”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아간 원흉들을 추적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린다. 요리 솜씨로, 미인계로, 그리고 권총으로 하나하나씩 처단하며 그녀는 킬러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살인의 시대’ 20세기에 복수극으로 저항하다
로즈는 흑해 연안의 고도(古都) 트레비존드 인근 시골 마을에서 아르메니아인 농부의 딸로 태어나, 오스만 제국이 자행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가족이 몰살당하는 참극을 겪는다. 홀로 살아남은 그녀는 장관에게 바쳐져 하렘에서 성노예로 생활한다. 언젠가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갖은 굴욕을 견디며 버티던 중 상인에게 팔려 마르세유행 화물선에 몸을 싣는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후 탈출에 성공한 로즈는 부랑자 조직에 잡혀 구걸과 넝마주이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다. 노예 같은 생활에 지쳐 도망친 그녀는 프로방스 지방에서 전쟁 통에 자식을 모두 잃은 노부부에게 입양되어 그들의 농장에서 행복한 삶을 누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양부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녀의 후견인이 된 양부모의 사촌 내외에게 하녀처럼 혹사를 당한다. 때마침 양을 거세하는 작업 때문에 농장에 머문 청년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로즈는 파리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레스토랑을 경영한다.
그녀는 모처럼 안락한 일상을 꾸려나가면서도 복수심을 버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가차 없고 잔인한 복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 잊어라. 하지만 아무것도 용서하지 마라.’ 온갖 고난을 겪으며 그녀가 다짐하던 좌우명이었다. 로즈는 복수를 감행한다.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학살자를 미인계로 유인해 바다 한가운데서 수장시키고, 독버섯을 넣은 요리로 자신을 학대한 양부모 사촌 내외를 죽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응징하라.’는 성경 구절을 충실히 따라가며, 전문 킬러 못지않게 증거를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뒤처리도 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바로 그 순간에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그녀를 다시 짓밟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파리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하고, 친위대 대장 하인리히 히믈러가 소문을 듣고 그녀의 식당에 찾아온다. 그가 앞으로 닥칠 대학살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로즈는 최고의 요리를 대접한다. 그녀의 미모와 요리 솜씨에 반한 히믈러는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로즈는 정중히 거절하고, 그는 언제든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러나 유대인 남편과 아이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자, 다급해진 로즈는 히믈러를 찾아가 가족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히믈러는 애인이 되어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주면 기꺼이 돕겠다고 말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던 로즈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몸과 마음을 다해 히믈러의 비위를 맞추지만 가족을 구하는 데는 실패한다. 설상가상, 히믈러의 권유로 히틀러를 위해 저녁식사를 차린 자리에서 술을 받아 마시고 쓰러진 날 밤에 누군가에게 겁탈을 당하고 원하지 않는 아이까지 낳는다. 히틀러에게 당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나치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파리로 돌아온 로즈는 남편을 고발한 자를 찾아내 복수를 하고 미국으로 도피한다. 식당을 차리고 안정을 찾으려 애쓰던 로즈는 미국을 방문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부부의 제안으로 중국행을 결심한다. 중국 여행 중에 연하의 중국 청년과 달콤한 사랑에 빠진 로즈는 그와 결혼하고, 알바니아 대사관 요리사로 일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작은 행복도 문화대혁명의 파도에 휩쓸려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그녀는 다시 복수할 자들의 목록을 써내려간다.
“진정한 용서는 복수”
로즈는 20세기의 역사에 농락당했다. 대학살과 노예 같은 생활을 보내다 한순간 행복을 맛보지만 다시 지옥 같은 생활로 돌아가고, 겨우 행복을 다시 잡았다 싶으면 또 다른 불행이 그녀를 덮친다.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빼앗기고 방황하다 이제야말로 사랑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할 때 또 비극을 맛보았다.
그녀는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체념하거나 좌절하는 희생자로 끝나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았고, 요리로 위안을 얻었으며, 복수극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녀에게 유일한 정의는 복수였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하려면 복수를 끝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도 로즈는 마르세유 뒷골목을 어지럽히는 얼치기들을 혼내주기 위해 주머니에 권총을 품고 다닌다. 그녀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 할 말이 많고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