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배우, 금발의 핀업스타, 배우 명가의 일원,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드류 베리모어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수식들이다. 그중에서도 그는 자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로코퀸’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왔다. 특유의 사랑스러운 이목구비와 달콤한 웃음으로 <웨딩 싱어>(1998), <첫 키스만 50번째>(2004),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2007) 등 주옥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며 발랄한 인상을 새겨온 까닭이다.

영화 <이티>(1982), <웨딩 싱어>(1998) 속 드류 베리모어

이렇듯 스크린 속에서 늘 밝은 모습으로 자리해온 드류 베리모어지만, 그의 실제 삶은 영화 속 캐릭터처럼 밝거나 행복하지 못했다. 15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배우 명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지 11개월 되던 해 영화에 첫 등장하고, 1982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 <이티(E.T.)>에 출연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그는 부모님의 갈등, 너무 이른 나이의 연예계 활동을 겪으며 불우한 십 대 시절을 보냈다(실제로 그는 자서전 <리틀 걸 로스트>(1990)를 통해 술과 마약에 찌들어 재활원을 오갔던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털어놨다). 이렇듯 드러나지 않은 상처와 삶의 질곡을 거치며 재기에 성공한 그를 오늘날 로코퀸이라는 이미지로 국한하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그동안 그가 부단히 영역을 넓히며 다양한 색깔의 연기에 도전해온 이력을 안다면 더욱 그렇다.

아래는 그의 깊이 있는 연기가 빛난 영화 세 편을 골랐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로맨스의 여주인공 드류 베리모어 말고, 잘 드러나지 않은 그의 얼굴에 주목해보자.

 

<라이딩 위드 보이즈>(2002)의 ‘베브’

1965년 웰링턴시 코네티컷 주의 작은 마을. 어릴 적부터 작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소설가의 꿈을 키워가던 ‘베브’(드류 베리모어)는 어느 날 파티에서 짝사랑하던 남학생에게 퇴짜를 맞고, 자신을 위로해주는 ‘레이’(스티브 잔)와 순간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예기치도 못한 임신을 하게 된 베브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레이와 결혼하지만, 아들 ‘제이슨’(아담 가르시아)의 양육과 남편의 무능력 등 주변 환경 때문에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을 맞는다. 15살의 단 하루 때문에 20년 동안 삶으로부터 ‘버림’받았던 비벌리 도노프리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빅>(1989), <그들만의 리그>(1992) 등 작품을 통해 작지만 따뜻한 휴먼드라마를 빚어내는 데 일가견을 보인 페니 마셜 감독이 연출을 맡아 유쾌하고도 사려 깊은 이야기를 완성했다. 드류 베리모어는 한 번의 실수로 빚어진 악몽 같은 삶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 싱글맘 ‘베브’로 분해 복합적인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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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가든스>(2009)의 ‘리틀 이디’

메이슬리스 형제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그레이 가든스>가 발표된 지 35년 만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 <그레이 가든스>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친척으로, 햄튼의 스러져가는 저택에서 은둔하듯 살았던 ‘빅 이디’(제시카 랭)와 ‘리틀 이디’(드류 베리모어)의 삶을 조명한다. 한때 사교계의 꽃이라고 알려진 모녀였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쓰레기가 넘치는 황폐한 저택에서 다수의 고양이와 너구리에 둘러싸여 생활한 이들의 삶을 단순히 쇠락한 명망가 여성들의 비극으로만 볼 수는 없다. 영화는 과거 부비에 빌 모녀가 누렸던 화려하고 부유한 삶과 무일푼이 된 현재를 교차하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영감의 원천이 된 두 이디스의 삶을 객관적으로 되짚어본다. HBO에서 제작한 TV 영화로, 2009년 골든 글러브 텔레비전 영화 부문, 에미상 6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드류 베리모어는 스카프, 천 조각을 머리에 터번처럼 두르고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추는, 개성 강하고 괴짜스러운 인물 ‘리틀 이디’를 생동감 있게 연기하며 이듬해 미국배우조합상,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미스 유 올레디>(2017)의 ‘제스’

누구보다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밀리’(토니 콜렛)와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며 아이를 갖는 것이 단 하나의 바람인 ‘제스’(드류 베리모어). 너무 다른 일상을 살고 있지만, 둘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존재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해오던 둘은, 밀리가 갑작스러운 유방암 선고를 받으며 관계에 미묘한 변화를 맞는다. 준비할 틈도 없이 불쑥 다가온 불행의 상황에서 늘 당연하게 여겼던 평화로운 일상과 곁에 있는 이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영화. 드류 베리모어는 변화된 일상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방황하는 밀리를 온 마음을 다해 보살피는 절친 ‘제스’로 분해 사랑하는 이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믿음직하게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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