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당시 실제 인물·사건과 비교해보니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곧잘 관객의 흥미를 잡아 끈다. 그 실화가 첨예한 사안일수록 관심은 증폭된다. 현실감은 영화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에 영화는 종종 실제 사건과 허구를 뒤섞곤 하는데 이때 어떤 관객은 영화 전부를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사극이 나올 때마다 역사 왜곡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만든 창작자의 관점이다. 실화와 허구를 뒤섞은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관객이 감독의 관점에 동의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IMF 구제금융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당시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IMF를 적극적으로 불러들인 장본인으로 고위 경제관료를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실제 벌어진 일은 영화와 많이 달랐다. 특히 IMF에 대한 관료들 입장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고위 경제관료를 악당으로 설정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부 경제관료는 그동안 모피아(재무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혹은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불리며 자주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할리우드가 꽤 자주 월스트리트를 악당으로 묘사해온 것처럼 한국 영화에도 고위 관료와 정치인은 항상 부패하다는 스테레오타입이 존재하고, 영화는 이를 클리셰처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실제로 어떠했는지 비교해 볼 필요는 있다. 특히 요즘처럼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영화 속 이야기를 팩트로 믿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아는 것이 영화 속 마지막 주장처럼 깨어 있는 시민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어디까지 실화일지 궁금할 당신을 위해 다섯 가지 팩트체크를 준비했다.
이상적인 공무원상이지만 아쉽게도 당시 한국은행에는 팀장급 이상의 여성은 없었다. 한은 역사상 여성 팀장이 처음 탄생한 것은 2008년으로 외환위기 11년 후다. 서영경 당시 경제연구원 국제경영연구실장이 주인공으로 그는 2013년 부총재보로 발탁돼 한은 최초 여성 임원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016년 퇴임한 그는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SGI 원장을 맡고 있다.
영화에서 한시현은 뱅상 카셀이 연기한 IMF 총재와 구제금융 조건을 놓고 충돌한다. 하지만 당시 IMF와의 협상 과정에 한국은행 팀장은 배석하지 못했다. 한국은행에선 오직 이경식 총재만 협상 과정에 참석했다. 아마도 한시현은 당시 이런 인물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바람에서 창조된 인물 아닐까 싶다.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은 강만수였다. 모피아의 전형인 데다 훗날 이명박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면서 직권남용,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징역 5년2개월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인 인물이기도 하다. 아마도 악인으로 설정하기에 가장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행과 재경원은 갈등 관계가 아니었다. 당시는 한국은행 독립성이 지금처럼 지켜지지 않았고 재경원과 갈등을 빚을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금융사의 자율권을 강화하고 감독 체계를 단일화하는 법안 처리를 놓고 정치권의 여야 갈등이 훨씬 심했다.
영화에선 IMF 구제금융을 받느냐 마느냐를 놓고 한국은행과 재경국이 대립한다. 재경국은 적극적이고 한국은행은 반대한다. 하지만 당시 IMF와의 협상을 머뭇거린 쪽은 오히려 재경원이었다. 강경식 경제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은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대안을 검토하느라 IMF행을 미뤘다는 이유로 나중에 청문회에서 책임을 추궁당하기까지 했다. 이후 새로 부임한 임창열 경제부총리도 IMF로 가는 것에 미온적이어서 그는 일본 재무성에 돈을 빌리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반면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였다. 영화 속에서 한국은행 총장 역할을 맡은 권해효가 IMF행을 반대하는 한시현의 우군 역할을 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 총재는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IMF 구제금융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집무실에 스탠리 피셔 IMF 수석부총재,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부 차관보, 테드 트루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국제금융국장 등을 초대해 반드시 IMF로 갈 것이라고 설득하기까지 했다.
실제로도 외환위기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경제수석 교체가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11월 19일 전격적으로 김인호 경제수석과 강경식 경제부총리 사표를 수리하고 관세청장 김영섭을 경제수석으로, 통상산업부 장관 임창열을 경제부총리로 발탁했다. 이때가 아들 문제로 고심하던 김영삼 대통령이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시점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두 사람을 경질한 사유는 대선을 앞두고 나빠진 여론 속에서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이후 강경식과 김인호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무능한 관료로 몰려 김대중정부에서 구속까지 된다.
외환위기라는 큰 파도를 만난 와중에 갑작스러운 경제수장 교체로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는 일시적으로 마비 상태가 됐다.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아무런 자료를 남기지 않고 떠나는 바람에 후임 경제수장은 업무를 파악하느라 우왕좌왕했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또 영화에선 새로 부임한 경제수석(김홍파가 연기)이 뱅상 카셀과 함께 IMF와의 합의서에 서명하지만 실제로는 임창열 부총리와 이경식 총재가 당시 IMF 총재인 미셸 캉드쉬 옆에 나란히 앉아 서명했다. 임 부총리는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IMF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가 디폴트가 임박했다는 한국은행 총재의 말을 듣고 태도를 바꿨다.
실제로도 11월 7일 오후 4시 경제수석이 주재하고 재경원과 한은이 참가하는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이날 한국은행이 작성한 '외화유동성 사정과 대응방안' 보고서가 처음 논의됐는데 이 보고서에는 실제 가용 가능한 외환보유액이 알려진 것보다 적어 국가부도(디폴트)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충격적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전에도 한보 부도와 기아차 처리 이후 나빠진 국가신용등급과 동남아에서 진행되는 외환위기 파장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을 언급하는 보고서가 한국은행과 재경원에서 올라오긴 했지만, 심각하게 논의된 것은 이날이 거의 처음이다. 그만큼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를 잘 몰랐고, 외환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이날 참석자들은 외환위기 대응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국가부도 위기라는 것을 공개할 경우 더 큰 국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법정에 섰다는 나쁜 공통점이 있다. 인수·합병 전문가로 활약하며 정관계 로비를 벌이던 진승현 씨는 2000년 진승현게이트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끝에 2002년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연극배우 윤석화의 남편이기도 한 김석기 씨는 업무상 배임과 골드뱅크 주가 조작 혐의로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가 2016년 말 자수해 구속됐고, 권성문 씨는 6억원 횡령 혐의로 지난 9월 기소된 상태다.
[양유창 기자 sanit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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