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정락인 사건전문기자]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긴 세월이다. 이젠 범인을 잡아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현재 범인의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혈기 왕성한 중년이다. 연쇄살인범의 특성상 절대 살인을 멈출 수가 없다. 지금도 어디선가 먹잇감을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 1986년 9월 15일 오전 6시 20분쯤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의 풀밭에서 70대 여성이 하의가 벗겨진 채 발견된다. 신원확인 결과 이 아무개 씨(여·71)였다.

이 씨는 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팔기 위해 수원 시내로 갔다가 딸네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아침을 먹고 가라는 딸의 말을 뒤로하고 일찍 집으로 가다가 실종됐고, 5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다. 딸의 집에서 10분, 자신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안녕리 길옆 풀밭에서였다. 이것이 이후 약 5년 간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신호탄이라는 것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덩달아 화성주민들의 길고 긴 공포가 시작됐다.

화성 주민들의 길고 긴 공포 시작

두 번째 희생자는 35일 만에 나왔다. 10월 20일 오후 2시쯤 결혼 상담 차 인근 마을에 다녀오던 박 아무개 씨(여·25)가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에서 발견됐다

1차사건 현장에서 불과 4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박 씨도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목이 졸리고 드라이버 같은 흉기에 4곳이나 찔린 상태였다. 박 씨의 음부 안에서는 여러 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왔다. 범인은 박 씨를 성폭행한 다음 목 졸라 살해했고, 출처 미상의 복숭아 조각을 성기 안에 넣는 엽기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다.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올 때만 해도 경찰은 단순 살해사건으로 봤다. 그런데 수법이 똑같은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오자 바짝 긴장했다. 그래도 계속된 연쇄살인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범인은 이를 보기 좋게 비웃었다.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 지 정확히 58일 만에 세 번째 여성이 살해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주부 권 아무개 씨(여·24)였다. 그는 12월 12일 밤 11시쯤 귀가하다가 피살당했고, 하의가 벗겨지고 양손이 묶인 채였다. 화성지역에서 성인여성이 잇따라 살해되거나 실종됐지만, 경찰 수사는 진전이 없었다.

그 사이 범인의 살인행각은 가속도가 붙었다. 이틀 뒤에 네 번째 여성이 희생된다. 이 아무개 씨(여·23)는 맞선을 본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다 살해됐다. 이 씨의 시신은 14일 오후 11시쯤 화성시 정남면 관향리 논두렁에서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된다.

누구일까. 누가 이런 끔찍한 살인행각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1986년 9월 15일부터 12월 14일까지 불과 3개월 동안 같은 지역에서 4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70대가 1명, 나머지 3명은 20대였다. 피살자 모두 여성이라는 것과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가 바뀌었지만 살인은 계속 이어졌다. 1987년 1월 10일 오후 8시 50분쯤 화성시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한 여고생의 시신이 발견된다. 친구를 만나고 귀가하던 홍 아무개 양(18)이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고 양손은 뒤로 묶인 채였다. 5차 희생자인 홍 양도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됐다.

범인은 홍 양을 살해한 후 고추밭을 가로 질러 잠적했다. 경찰은 처음으로 범인의 신발자국(245mm)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서 족적은 비에 묻혀버렸다. 이로써 범인을 추정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의 두려움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일어나던 연쇄살인은 한동안 잠잠했다. 1월에 5차 희생자가 나온 이후 4월이 지날 때까지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범인의 살인행각이 멈춘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쯤 또 다시 화성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1987년 5월 2일 오후 11시쯤 남편을 마중 나갔던 주부 박 아무개 씨(30)가 2차 사건이 발생한 태안읍 진안동 야산에서 발견된다. 박 씨는 착용했던 브래지어 끈과 블라우스로 목이 졸려 있었다. 이번에도 피해자는 여성이었고, 성폭행을 당한 후였다. 1~5차 사건과 수법이 똑 같았다. 누가 봐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여졌다.

4개월 후인 1988년 9월 7일 오후 9시 30분쯤 7차 희생자가 나왔다. 화성시 팔달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안 아무개 씨(여·54)가 상의가 벗겨지고 양말과 손수건으로 재갈이 물린 채 발견된다. 직장에 다니던 안 씨는 퇴근 후 버스에서 내려 귀가하다가 변을 당했다.


11일 후인 1988년 9월 16일 화성 인근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수사당국은 처음에는 8번째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으로 봤다. 이날 오전 2시쯤 진안동 자신의 집 안방에서 잠을 자던 여중생 박 아무개 양(13)이 성폭행 당한 후 피살당한 것이다.

현장 감식결과 남성의 음모가 남아 있었다. 경찰은 인근 경운기수리센터 종업원인 윤 아무개 씨(22)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현장에 남아 있던 음모와 윤 씨의 음모를 비교해보니 일치했다. 하지만 이전의 범행과는 수법이 완전히 달라 동일범의 소행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다.

엄밀하게 따지면 언론에서 말하는 8차 사건은 ‘화성 연쇄살인’에서 제외해야 한다. 동일범 기준으로 따지는 ‘화성연쇄살인’과는 별개의 사건이다.

당시 수사본부에서도 이전의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고, 담당 경찰관들도 이 사건은 제외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언론은 ‘10’이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사건 하나를 더 끼워 넣는 모양새다.


1988년 9월 7일 7차 범행이후 범인은 약 2년 2개월 동안 살인행각을 멈췄다. 잠시였다. 화성연쇄살인 공포가 잦아들 때인 1990년 11월 15일에 8차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날 오후 6시 30분쯤 태안읍 병점5리 야산 소나무 밑에서 여중 1학년이던 김 아무개 양(13)이 발견된다. 최연소 피해자다.

김 양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귀가하다가 성폭행 당한 후 목 졸려 살해됐다. 시신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범인은 김 양의 필통에서 면도칼을 꺼내 가슴부위를 격자부위로 무려 38번이나 그었다.

전대미문 미제사건으로 남아

마지막 9차 사건의 희생자는 약 5개월 후인 1991년 4월 3일 오후 9시쯤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발견된다. 딸의 집에 다녀오던 마을 주민 권 아무개 씨(60)가 성폭행 당한 후 피살됐다. 권 씨의 목에는 신고 있던 스타킹이 감겨져 있고, 음부가 크게 훼손당했다. 이 사건을 끝으로 4년 7개월 간 화성 일대에서 발생했던 ‘연쇄살인극’도 막을 내렸다.

9차 사건이 일어난 지 15년이 되는 2006년 4월 3일에 공소시효는 끝이 났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영화의 제목처럼 ‘살인의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사법사상 전대미문의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수많은 경찰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사건에 동원된 경찰력은 연인원 200여만 명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다. 수사 대상자는 2만 1280명, 지문 대조 4만 116명, 모발 감정 180명이었다. 숫자는 많지만 탐문수사에 의존했고, 체계적인 과학수사는 없었다.

그나마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 유전자(DNA) 분석기법을 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마지막 9차 사건이 벌어진 지 4개월 후인 91년 8월 국내 수사기관에 DNA 분석기법이 도입돼 과학수사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경찰은 사건 이후 화성경찰서 태안지구대에 수사본부를 꾸렸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후에는 철수했다. 그 후 형사과 강력2팀을 전담반으로 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등록된 성폭행 용의자와 화성 범행현장에서 추출한 DNA를 대조하는 작업을 벌였으나 지금까지 동일한 유전자는 확보하지 못했다. 30년이 지나면서 사건 현장도 각종 공사와 개발 등으로 인해 점점 자취가 사라지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그게 누구인지 찾아야 한다. 비록 처벌할 수는 없더라도, 또 다른 범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누군지 꼭 밝혀야 한다. 우리가 다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유다.

범행의 특징

피해자 모두 여성, 성폭행 하거나 성기 훼손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것과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양손을 뒤로 묶은 뒤 성폭행 하거나 성기를 훼손하고 목 졸라 살해했다는 점이다. 범인은 절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살해도구로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옷, 스타킹, 브래지어 등을 이용했다.

또 피해자의 나이(10~70대)를 가리지 않고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에 범행 지역이 화성군 태안읍을 중심으로 반지름 3㎞ 안 4개 읍·면에서 발생했다. 범인은 이 지역 지리를 잘 알고 있거나 인근에 거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범인은 주로 버스정류장과 피해자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 있다가 범행에 나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또 있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월별로 보면 1~5월, 9~12월이다. 이상하게도 범인은 6~8월 사이에는 단 한 건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상식적으로 볼 때 여름이 다른 계절에 비해 성폭행하기가 쉬운데도 범인은 여름에는 피했다.

범인은 또 88년 9월 7일 7차 범행이후 약 2년 2개월 동안 살인을 멈췄다. 이전과 이후 범인의 패턴과는 다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기간을 범인이 군대에 입대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1차 사건(오전 6시쯤)을 제외한 2~9차 사건은 모두 오후 7~11시 사이에 일어났다.

물론 사람의 눈을 피하기 좋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범인이 학교나 직장에 다니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범인은 성욕해소를 위해서만 범행에 나서지 않았다. 피해자가 갖고 있던 현금이 모두 없어진 것을 보면 돈까지 노렸다. 이는 범인이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누가 범인인가

현재 50대 중반, 혈액형 B형, 키 165~170cm


이 사건의 최대 의문이다. 지금까지 경찰이나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범인의 나이’ ‘연령’ ‘생김새’ 등은 모두 추정에 의한 것이다. 4차 사건이 일어나기 보름전인 1986년 11월30일 오후 9시쯤 김 아무개 씨(45)는 교회에 가려고 태안읍 정남리 논길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 흉기를 든 남자에게 성폭행 당했다. 김 씨는 범인이 자신의 가방을 뒤지고 있는 사이 달아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우리가 이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범행의 수법과 똑 같다는 점이다. 당시 범인은 김 씨의 양말로 양손을 결박하고, 속옷(팬티와 거들)으로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얼굴을 덮었다.

경찰은 이런 공통점을 근거로 김 씨를 성폭행한 범인이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동일범으로 판단했다. 김 씨의 진술에 의해 범인의 나이는 20대 중반이고, 키 165~170㎝에 호리호리 몸매였고, 오똑한 코에 쌍꺼풀이 없고 눈매가 날카롭다는 인상착의가 만들어졌다.

경찰은 7차 사건이후 범인에 대한 유력한 진술을 확보했다. 7차 사건이 벌어진 그 날 밤 발안에서 수원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에 한 남성이 올라탔다. 안 아무개 씨가 살해당한 곳에서 400m 떨어진 지점이다.

당시 운전기사는 “남자의 발은 운동화가 젖어 있었고 바지 역시 무릎까지 젖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스포츠형 머리에 165~170cm 가량의 키, 25~27세 사이의 남성으로 생존자 김 씨의 진술과 일치했다.

운전기사에 따르면 해당 남성은 자신에게 담뱃불을 빌리기도 했는데, 그때 양손으로 오른쪽 둘째 손가락에 작은 흉터와 새끼 손가락에 봉숭아 물 들인 흔적이 보였다. 시계를 찬 왼손 손목에 작은 문신이나 점이 있는 것을 봤다.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몽타주가 제작됐고, 경찰은 현상금 500만 원을 내걸었지만 이미 남성은 사라진 뒤였다. 4, 5, 8, 9차 사건에서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확인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이를 종합하면 현재 범인은 50대 중반의 남성이며, 혈액형은 B형이다. 또 욕을 잘한다. 키 165~170㎝에 호리호리하고 구부정한 몸매, 왼쪽 손목에 점(문신)이 있고, 눈매가 매서울 것으로 보인다. 범죄 시간대와 범죄 장소를 분석해보면, 범인은 수원시에 사는 남자로 시외버스를 통해 수원과 화성을 오가면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갔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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