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1986년 10월 변사체 발견 장소 태안읍 농수로 확인
풀 무성·폐차 방치·공사 눈앞 … 다른 발생지 이미 도시화
"연쇄살인 일어난 곳인지 몰랐다" 사건 기억 주민도 적어
▲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6년 동안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여차례 발생해 범인을 잡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끝났다. 사진은 2차 범행 피해자가 발견된 화성시 병점동 한 농수로.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희대의 연쇄살인. 나라 전체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15일 30년이 된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군 태안읍, 정남면, 팔탄면, 동탄면 일대 5㎞ 이내에서 6년 동안 여성 10명이 살해당했다. 2003년에는 당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이 나올 정도로 관심이 컸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끔찍했던 사건 현장은 도심화가 한창이다. 이 사건은 도시화 속도만큼 빠르게 잊히고 있다.

본보는 1986년 10월 발생한 2차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았다.

4일 오전 8시40분.

화성 연쇄살인 2차 사건 피해자 박모(당시 25세)씨가 살해 돼 농수로에 변사체로 발견된 화성 태안읍 사건 현장.

현장 주변은 대규모 건축물을 짓는 공사 차량이 쉬지 않고 오가고 있었다.

피해자 박씨는 1986년 10월20일 밤 10시쯤 맞선을 보고 돌아가다 목이 졸리고 흉기에 4곳이나 찔린 상태로 이곳 농수로에서 알몸 시체로 발견됐다.

박씨 몸속에는 여러 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왔다. 그야말로 엽기적인 살인이었다.

30년이 지난 이곳 콘크리트 관 주변은 풀과 넝쿨만이 무성하게 자란 상태로 음산했다.

농수로 주변에는 불에 탄 버스를 비롯해 폐차를 앞둔 버스 십여 대가 방치돼 있었다.

주변 공사현장 관계자는 "2년째 공사를 하고 있는데 여기가 화성 연쇄살인 범행 장소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끔찍한 장소이지만 이제 곧 개발로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장소는 행정타운 예정지여서 개발을 앞두고 있다.

다른 사건 현장도 도심에 뭍힌 상태였다.

80년대 논과 밭이던 현장 주변에는 도로가 생기고 아파트와 상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6·8·9차 사건이 발생한 동탄신도시 인근 진안동과 병점동도 1990년대 후반 택지개발을 통해 지금은 모두 아파트와 상가 밀집지역으로 변했다.

과거 이 사건을 기억하는 주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태안읍 주민 이모(42)씨는 "화성 연쇄살인이 외곽 지역에서만 일어난 줄 알았다"면서 "이곳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게 믿기질 않는다"고 했다.

동탄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주부 최모(36)씨는 "어릴 때 화성 연쇄살인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수십 년이 지난 사건을 왜 또 끄집어내는지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른 주민들의 반응도 대체로 비슷했다.

동탄신도시 거주민 대부분은 신도시 개발 뒤 다른 지역에서 온 젊은이들이 많다. 이 때문에 화성지역을 살인사건과 연결짓는 것을 꽤 꺼리는 분위기였다.

1991년 4월에 발생한 마지막(10차)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현재 동탄신도시의 중심인 반송동이다.

과거에는 인적이 드문 야산이었지만 지금은 초고층 아파트 단지와 상가로 가득하다.

/김태호 기자 thkim@incheonilbo.com

[30년째 숱한 의혹 … 그 뒷이야기]
여름철은 피했다? … "내가 살인마" 사형수 소동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30년 째 숱한 의혹을 낳고 있다. 이 중에는 믿기 어려운 내용부터 사실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도 더러 있다. 이 사건을 둘러싼 뒷이야기를 당시 수사 자료와 하승균 전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 팀장과의 전화 인터뷰 등을 통해 되짚었다.

▲여름철만 피한 살인

정말 궁금하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1~5월, 9~12월이다. 범인은 6~8월 사이엔 단 한 건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살인마는 여름과 관계있는 사람일까.
또 다른 의문도 있다.
범인은 1988년 9월7일 7차 사건 이후 2년 가까이 냉각기(연쇄살인범이 범행을 잠시 멈추는 기간)에 들어간다.
경찰 수사망이 자신을 향해 좁혀지자 잠시 몸을 숨긴 것일까.
그러다 살인마는 1991년 4월3일 마지막 범행을 저지른 뒤 종적을 감췄다.

8차 사건은 화성 연쇄살인인가

1988년 9월16일 태안읍 진안리의 한 주택 방안에서 살해당한 김모(14)양 사건은 범인을 잡은 케이스다.
하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모방범 소행으로 판단했다.
다른 연쇄살인 사건과 범행 장소가 가까웠으나, 수법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경찰 안에서도 이 사건을 화성 연쇄살인에 포함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아직도 많다.
하승균 전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 팀장은 "8차 사건의 범행 수법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전혀 다르다"며 "그런 만큼 이 사건은 화성 사건에서 제외해야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내가 화성 연쇄 살인마다"

2003년 대전교도소.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사형수(당시 49세)가 다른 수감자에게 '내가 화성에서 사람을 여러 명 죽였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그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터진 시기에 화성에 살았다.
경찰은 희망을 품었다.
그렇지만 그의 혈액형은 O형.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서 채취한 용의자 혈액형은 B형. 일치하지 않았다.
또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달리 그에겐 성범죄 전과도 없었다.

▲"범인을 알고 있다" 역술인 소동

1987년 5월2일 6차 사건이 터진 뒤 수사본부에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전라도에 사는 역술인이라 밝힌 50대 제보자는 "기(氣)로 음양의 조화를 알 수 있다"며 "한 언덕 너머 함석집에 한쪽 손이 불구인 30대 남성이 살고 있다. 그가 범인이다"라고 말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은 확인 작업에 나섰다. 역술인 말대로 함석집엔 몸이 불편한 남성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경찰은 곧 실망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기 힘들 정도로 정신과 몸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수법, 또 다른 살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충격이 잊힐 무렵, 20대 여성의 알몸 시신이 발견됐다.
1996년 11월3일. 오산시 지곶동에서 화성과 흡사한 살인 사건이 터진 것.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가 이 여성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화성 연쇄살인 피해자처럼 성폭행 당한 뒤 엽기적인 방법으로 훼손된 흔적이 역력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이 화성 연쇄살인 11차 사건이 아니냐는 의혹이 컸다.
당시 경찰은 이를 모방 범죄로 봤다.
하승균 전 화성 연쇄살인 수사본부 팀장은 "이 사건은 화성 사건과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황신섭 기자 hss@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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