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afe.naver.com/seoulartcinema/580


[살인의 추억] 메뚜기소년의 정체를 파악하면 범인을 알 수 있다.


(1). 마지막 엔딩씬에는 우리 모두를 속인 봉준호의 또 다른 진짜 의미가 숨어 있다.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에서 인상 깊은 엔딩 장면을 보여줬다. 박두만(송강호)이 관객을 마주 보고 끝나는 엔딩씬은 끝까지 잡히지 않은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속에 숨어있다는 듯한 섬찟한 느낌을 준다. 관객 대부분은 엔딩 장면을 이렇게 느끼고 해석했다.


그런데 그는 엔딩 장면에 또 다른 의미를 숨겨 놓았다. 문제는 그 의미를 해석하게 되면 영화가 완전히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는 감독의 중요한 진짜 본뜻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을 해석해보면 놀랍게도 관객희롱이 살짝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뛰어난 반전이 담겨있어, 마치 재기발랄한 정치적 우화였던 자신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철저히 외면했던 대중들을 놀리는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2). 오프닝에 중요한 비밀이 있다.


봉준호는 엔딩씬의 숨은 진짜 의미를 친절하게도 영화 시작하는 오프닝에 다 밝혀놓았다. 문제는 그것을 관객이 파악했느냐 못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중간중간에 힌트를 여러 번 흘렸다. 그럼 이제 그 본뜻의 해석을 위해 오프닝부터 분석해보자.


1)메뚜기소년의 모양새.


오프닝에만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메뚜기 잡는 소년인데 이 소년의 정체만 파악하면 해석은 다 된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핵심 포인트다. 메뚜기 소년은 박두만이 첫 희생자를 발견한 논두렁에서 박두만의 말과 행동을 흉내내는 우스꽝스런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박두만의 옷과 흡사한 옷을 입고 등장한다. 둘 다 같은 문양의 70년대풍의 구닥다리 체크무늬옷을 입고 있다. 단지 색깔만 살짝 다를 뿐이다. 그리고 꼬마와 박두만이 한 화면에 보이는 씬에서는 박두만의 상체와 꼬마의 전신이 나오는데 꼬마 바지색깔이 박두만 잠바의 색깔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둘이 함께 보이는 그 씬에서의 둘의 옷은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씬이다.



일부러 똑같은 옷을 소품으로 준비해서 입히는 철저함, 그리고 똑같은 헤어스타일(스포츠머리 스타일)을 한 꼬마가 말과 행동까지 따라하는 것. 한마디로 봉준호는 메뚜기소년을 박두만과 동일인물이라는 암시를 관객에 계속 던져 주는 것이다. 한 술 더 떠 작위적 소품(거울)까지 동원해 확실한 증거물을 던져 준다


2)거울 등장의 의미.


박두만은 어두운 논두렁 안을 살피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거울조각을 주워 든다. 눈 앞에 어두운 곳이 있으면 바로 주머니를 뒤져 라이타를 켜는 것이 상식일터인데, 난데없이 논두렁에 있는지 확실치도 않은 깨진 거울조각을 찾아서 두리번 거리다가 결국 찾아낸다.


이런 작위적 설정까지 감수하며 등장시킨 거울이기에 거울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봐야한다. 거울은 자신을 비추는 물건이다. 거울을 바라보면 그 거울 속엔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 박두만이 거울을 찾아내 손에 들고 자신을 한 번 비춰보는 행동이 영화 속에 살짝 등장하고 난 이후에 메뚜기 소년이 그의 행동거지를 따라한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된다.


그리고나서 박두만은 메뚜기소년과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따라하는 그 소년을 어이없이 바라보는 씬이 몇 초간 이어지는데, 그가 그 소년을 바라보다 일순간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치켜뜨는데 바로 그 순간 씬은 끝난다. 영화를 다시 보면 그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



봉준호의 재치있는 편집이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동일한 옷, 동일한 헤어스타일, 거울 등장 이후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동일한 행동거지까지 고려해 본다면 박두만이 그 소년을 바라보다 깨달은 그 무엇의 답은 자명해진다.


한마디로 봉준호는 관객에게 메뚜기 소년은 바로 박두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것이고 박두만이 그걸 눈치 챘다는 표정을 통해 봉준호는 관객에게 힌트를 던져주려는 것이다.


어찌 눈 앞에 메뚜기 소년이 박두만이란 말인가라고 질문하시겠지만 영화의 은유 상징의 의미로 해석하자. 영화 또한 타 예술처럼 다양한 초현실적 은유상징을 동원할 수 있는 예술적 장르이니까.


3)메뚜기 소년의 정체


그럼 그 메뚜기 소년은 도대체 어떤 아이인가? 모두 아시다시피 그 소년은 초반 오프닝에만 등장하고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맨 첫 씬을 상기해보자. 영화는 메뚜기 소년이 논 한 가운데에 숨어 앉아 눈 앞에 메뚜기를 잡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경운기를 타고 범죄현장을 찾아 오는 박두만일행의 소리를 듣고 슬며시 일어나서 그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박두만과 농부가 다가 올 때 그 소년은 메뚜기들을 잡아 넣은 유리병을 뒤로 슬그머니 감춘다.



왜 메뚜기 잡은 걸 숨기는 걸까? 논에서 메뚜기 잡았다고 혼날까봐? 그건 너무 상식적인 해석이다. 정겹고 그리운 시골정서를 담기 위해 감독이 일부러 그 씬을 넣었다면 그 감독은 좀 재능이 떨어지는 감독이다, 또한 봉준호는 그리 서정적인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렇다면 우린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 메뚜기의 상징적 의미를 해석해야한다. 잡혀 곧 죽을 메뚜기, 그리고 병 속에 담긴 곧 죽을 혹은 죽은 메뚜기들... 그리고 그것을 박두만 일행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슬쩍 뒤로 감추려한다. 더욱 메뚜기가 상징하는 바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다음 장면들에서 봉준호는 금방 그 의문점을 풀어준다.


박두만이 논두렁에서 여자시체를 발견할 때 카메라는 여자 허벅지 위에 올라 앉은 메뚜기를 먼저 비춘다. 앞서 연달아 등장하던 메뚜기의 이미지를 죽은 여자의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연출씬인 것이다. 결국 메뚜기 잡아 죽인 소년과 여자를 잡아 죽인 범인을 동일시하는 결정적 씬이다.



그래서 메뚜기 소년을 촬영하는 숏들은 불안한 범죄자의 심리를 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 꼬마는 논에서 박두만 일행의 경운기 소리를 듣고 일어날 적에 그 쪽만 아닌 반대쪽도 살피며 두리번거리는 액션을 취하고, 그 쪽을 바라 볼 때도 우측에 꼬마의 일어선 어두운 뒷모습을 크게 배치하고 좌측 멀리 다가오는 박두만 일행을 작게 비추는 원근법을 통해 어둡고 불안한 꼬마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3). 박두만의 사회정치학적 상징성.


정리해 보면 박두만은 메뚜기 소년이다. 메뚜기 소년은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상징한다. 결국 박두만은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상징한다는 놀라운 결론에 이른다.


독자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뭐 이런 황당한 얘기가 다 있냐구. 잠깐! 우린 여기서 사물의 표면이 아닌 그 속에 담긴 본질적 의미, 즉 그 사물이 상징하는 사회정치적 의미를 분석해 들어가 봐야만 한다.


박두만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치안을 담당하는 공권력(형사)이다. 치안공권력의 사회적 역할과 상징성이 박두만의 사회적 위치(직업:형사)로 박두만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제 박두만=대한민국 치안 공권력이 어떻게 범인으로 전화되어 가는지,"강간의 왕국"으로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암울한 그 시대를, 봉준호가 끔찍한 "살인에 대한 추억"을 통해 어떻게 우리 앞에 끄집어내는지, 아래 서술하는 다양한 상징들(추상적, 구체적,직접적 상징들)을 통해 살펴보자.


1)비과학적 폭력적 수사과정의 의미.


영화의 큰 줄거리만 따라가도 왜 박두만들(형사들)이 범인으로 상징되는지 알기 쉽게 나온다. 그들은 초동수사에서 증거확보 미흡(발자국을 경운기로 뭉개기 등)으로 제일 중요한 목격자(백광호=박노식)를 오히려 범인으로 몰아세워서 폭력 고문 수사한다.


결국 백광호는 그 후유증으로 형사들을 무서워 하며 도망가다가 기차에 치여 죽는다. 백광호 죽는 바로 다음 씬에 그의 피가 튀어서 잔뜩 묻은 박두만의 손을 클로즈 업한다. 박두만의 손에 묻은 백광호의 피! 흔히 등장하는 표현인 "내 손에 결국 피를 묻히고 말았다"는 귀에 익숙한 말처럼 손에 묻은 피는 그가 살인을 저지르거나 그에 관여했다는 의미로 항상 해석되어왔다.


그래서 두만의 손에 피를 묻힌 이 장면을 몇 초간 클로즈업으로 잡은 이유는, 박두만(폭력적 치안공권력)이 백광호를 죽였다는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어떤 대상을 클로즈업으로 몇 초간 잡는 다는 것은 그 대상에 어떤 상징적 의미를 담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담긴 영화 문법이란 것은 다 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백광호는 번개불에 비춰진 범인의 얼굴을 무려 세 번이나 확실히 봤다고 한다. 만약 수사 초기에 백광호를 용의자가 아닌 목격자로 보고 그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쥬를 만들었다면 화성 촌구석에서 범인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였거나 혹은 그 이상의 연쇄범죄를 초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유일하고 중요한 목격자 백광호를 외면하고 결국 그들이 죽임으로써 사건 초기에 범인을 잡을 기회를 놓치게 되고 그동안 진짜 범인이 활개치고 다니며 계속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박두만들(경찰공권력)이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여러 희생자들을 만든 것이기에 범인은 무능한 고문폭력형사 박두만(들)인, 치안공권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박두만을 범인으로 지칭함은 사회정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당시 화성살인사건을 초래하고 방관한 사회구조적인 실질적 범인으로 폭력적 치안공권력을 상징하는 박두만을 일컫는 것(봉준호의 생각)으로 실제 박두만이 살인 저지르고 다녔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영화는 상징과 비유의 예술 이므로 감독이 상징하는 바를 해석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이 정도 논리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까봐 봉준호가 이후 영화 속에서 노골적인 힌트와 상징들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촘촘히 곳곳에 깔아 놓으며 박두만이 상징하고 있는 폭력적 치안공권력의 숨은 사회적 의미 혹은 그 정체를 하나하나 보여 준다.


2)노골적 비유상징을 통한 박두만에 대한 사회정치학적 의미의 확대.


봉준호는 이후 더 많은 노골적 상징들을 통해 진범의 정체(개별 인간이 아닌 사회학적인)를 더욱 확대 심화시킨다.


a) 영화 속 뉴스에 등장한 부천서 강간사건.


항상 군화 신고 용의자들을 발로 짓밟던 형사 조용구(김뢰하)가 각목에 박힌 못에 다리가 찔리는 씬을 보면 그 결정적 계기는 백광호(박노식)네 음식점에서 흘러나온 부천서 성고문 사건 뉴스방송이다.



실제 있었던 1986년(화성강간살인사건과 시작년도가 같다) 사건으로 부천경찰서 잡힌 여대생에게 운동권 선배의 위치를 캐물으며 경찰이 성고문, 강간하던 사건이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입에 담기 부끄러울 정도로 수치스런 사건으로 경찰이 여대생을 강간한 사건! 박두만들이 용의자들을 고문하던 경찰서 지하 고문실처럼 부천경찰서 지하 고문실에서...


이 지점에서 잠시 영화의 플롯(인과관계가 있는 계획된 줄거리)을 단순화시켜보면, 이 영화는 경찰이 강간범을 추적하는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경찰이 강간범으로 텔레비젼에 등장한다.


박두만들이 백광호가 목격자라는 사실을 그의 녹음 테이프를 다시 듣고서 결정적 힌트를 얻고 진범을 찾기 위해 수사의 방향전환을 꾀하는 그 씬 바로 뒤에 이 뉴스씬이 연이어 등장한다는 점이 봉준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또하나의 영화문법적 힌트가 되는 것이다. 즉 봉준호는 이 순간 우리에게 하나로 연결되는 두 가지의 힌트를 던져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강간의 왕국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닌 주제의식이 담긴 의미심장한 뜻이 되어, 강간범을 잡아야 할 경찰이 강간범이 되는, 범인을 잡으려는 그들이 범인으로 전화되는 것에 대한 힌트이자 비웃음이다. 강간의 왕국에 대한 박두만(송강호)의 언급은 애드립이 아닌 감독의 계획된 대사였음은 봉준호의 인터뷰기사를 통해서 밝혀진 바 있다. 애드립이 아닌 것을 애드립처럼, 애드립을 애드립이 아닌 것처럼 하는 것이 바로 송강호라는 배우의 뛰어난 점이다.


이제 봉준호가 조용구를 어떻게 응징하는지 보자. 우선 백광호네 음식점에서 그 뉴스(경찰이 여대생을 강간고문 했다는)를 보던 여대생들이 형사 새끼들 거시기를 잘라버려야 한다며 무식한 새끼들이라고 얘기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화 속 뉴스가 영화 등장인물의 대사를 유도하고 결국 그것에 화를 내며 싸움을 건 조용구(김뢰하)는 녹슨 못에 찔려 다리가 잘리고 만다. 영화 속 뉴스가 영화의 중요한 사건으로 전화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여대생을 강간한 형사의 거시기는 군사정권의 폭력으로 상징되고 있다. 군화발로 민간정부를 짓밟고 권력을 찬탈한다는 비유를 통해 군사정권은 보통 군화발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거시기는 속된 말로 남자의 가운데 다리로 불리며 한 개의 다리로 비유되기도 한다. 거시기=가운데 다리=군사정권을 상징하는 군화발... 여기서 우리는 조용구 형사의 군화 신은 다리가 잘린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여대생이 형사 거시기를 다 잘라버려야 한다고 하자 형사 조용구의 군화 신은 다리가 잘리는 이 절묘한 비유!


참고로 조용구의 다리 자르는 수술 동의서에 박두만이 서명할 때 날짜가 10월 20일이다.



그 날은 화성연쇄강간살인사건 최초 발생일과 동일하다(여형사 권기옥(고서희)이 노래 방송 날짜와 사건일자를 비교 지적하며 10월 20일 이라고 똑똑한 목소리로 언급한다).



그래서 조용구의 다리는 화성사건 1주년 되는 날 잘리는 것이다. 마치 화성연쇄강간사건의 모든 원인은 조용구, 박두만들이라며 1주년을 기념하여 그 죄값을 치루라는듯이...


당시 군부정권은 반정부사상을 가진 진보세력들을 속된 말로 "빨갱이"라고 불렀다. 부천서에서 강간당한 여대생은 그들 말에 의하면 데모하는 빨갱이 여대생이며, 빨갛게 물든 여자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 화성연쇄강간사건에서는 모두 알다시피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연쇄강간살해 당한다


여기서 부천서 운동권 여대생 강간 사건과 같은 해에 시작된 화성연쇄부녀자 강간살인사건을 동일시하고자 하는 봉준호의 의도를 정확히 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봉준호에게 화성강간살인사건의 진범은 박두만(들)이며, 그들은 다름 아닌 당시 고문과 폭력을 밥 먹듯 행사하던 전두환 군사정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봉준호가 “살인의 추억”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핵심일 것이다.


이것을 확인해 주는 증거들은 영화 속에 많이 널려 있다. 예를 들어보면, 영화 안에서 어떤 용의자들을 범인일거라고 단정하는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그때 등장한 상징들을 해석해보면 된다.


b) 박두만이 점쟁이 만나는 씬.


박두만이 점쟁이를 만났을 때 점쟁이가 방금 얼굴 하나가 싹 스쳐 갔다면서 설레발을 치자 그녀에게 보여 준 용의자 리스트 수첩에 있는 용의자 사진.


거기에는 3명의 증명사진이 붙어있고 좌측과 아래의 두 증명사진은 화면 앵글 바깥쪽에 치우쳐져서 살짝 사진이 잘려나간 채 비추어 지지만 화면 가운데 두만이의 손가락 앞에 한 명의 증명사진은 정확히 보여 준다.



그 사람은 영화 초반부(아래사진 참조)에 박두만이 심문하면서 육사 간다고 하지 않았냐며 말을 건넸던 사람이다. 결국 그는 영화 속 장면에 주요 용의자로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자장면집 영수증 요구 씬).



결국 “육사” 언급을 통해 용의자를 군대와 연관 지으며 군사정권을 자꾸 상기시킨다. 여러분은 전두환이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이란 것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c. 박두만의 “빽대가리” 언급 씬.


박두만은 경찰서에서 반장 책상머리에 모두 모였을 때 용의자를 '빽대가리'일 거라고 언급하는 씬이 있다. 성기에 털이 없는 사람이란 뜻인데 보통은 속된 말로 “빽자X”로 통한다. 그것을 “빽대가리”란 말로 더 개념을 확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빽대가리는 머리털 없는 “대머리”라는 의미도 같이 가지고 있다.


이제 종합해 보자. 봉준호는 위의 a,b,c로 우리에게 범인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육사가 관련되고 대머리(빽대가리)이고, 빨간 옷의 여자를 강간살해하는 레드콤플렉스를 가진 놈이란 것을 알 수 있다(참고로 레드콤플렉스는 반공주의자가 가진 좌파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사회학적 용어로도 동시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그리고는 이때 반장 사무실씬의 화면 상단 좌측 벽에 걸린 액자 안의 목만 보이고 얼굴은 카메라 앵글 밖에 잘려져 보이던 사진의 주인공을, 카메라 시점을 위로 살짝 올리는 줌인을 통해서 점점 드러내 보여준다.


1.육사를 나오고, 2.대머리(빽대가리)에, 3.뼈 속 까지 레드콤플렉스에 절어 있는 반공주의자 전두환의 얼굴이 드러난다. 범인은 빽대가리일 거라는 씬에서 빽대가리 전두환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전두환 사진은 영화를 통털어 이때 딱 한 번 이 장면에만 등장한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비유인가?



d) 주인공들의 이름.


송강호는 박두만, 김상경은 서태윤이다. 성을 떼고 이름만 빠르게 불러 보자. 두만이, 태윤이... 어떤가? 전직 대통령이자 서로 친구이며 육사 동기생이며 서로 합심하기도 하고 정적으로서 대립각을 세우며 아웅다웅 서로 싸우기도 하던 두만이와 태우가 떠오르지 않는가? 군인 출신 동기이자 친구인 두 대통령 두환이와 태우, 그리고 영화 속 동료이며 앙숙인 두 형사 두만이와 태윤...(전두환과 노태우는 육사 동기다! 같은 기수의 육사 친구 둘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을 주고 받은 세계 기네스북에 오를 사람들이다)


이 대목에서 노태우가 대선 당시 “보통사람”으로 가장하며 국민들에게 선전했던 유하고(부드럽고) 이성적인듯한 이미지가 영화 속 서태윤의 이미지와 살짝 부합되지 않는가? 물론 영화 후반 이성 잃고 폭주하는 서태윤처럼 노태우도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군사정권의 폭압적 본질을 곧 드러낸 사실은 다 잘 아는 사실일 것이다(이를 증거하는 상징씬의 분석을 뒤에 추가해 놓았다).


참고로 조용구의 다리를 자르는 의사의 이름은 "박종주"라고 관객 보고 눈여겨 봐달라는듯이 화면 한 가운데 의사책상 위에 커다란 명패로 써져 있다. 우린 이 대목에서 5공화국 전두환 시절 경찰고문실에서 죽은, 5공 정권의 숨통을 끊은 6월항쟁의 직접적 계기가 된 "박종철"의 이름이 연상 안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영화 안에서 박종주라는 이름의 의사가 현실에서 박종철을 고문폭력으로 죽인 경찰과 똑같은 부류의 고문폭력형사 조용구의 워커발을 가차없이 잘라버린다.



e) 영부인 이순자와 두만이 그리고 박카스 뚜껑의 의미.


밑에 스샷처럼 전두환의 부인인 이순자를 두만과 한 앵글에 담아서 보여준다. 이때 두만이가 손가락에 동그란 박카스 뚜껑은 왜 끼고 있는가? 봉준호가 소품담당에게 준비시켜서 두만에게 시킨 행동일텐데... 박카스 뚜껑을 위에서 찍어서 동그란 테로 보이게 하고 거기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행동... 손가락에 낀 동그란 테 ... 사진 속의 인물과 두만은 결혼한 사이라는 결혼반지의 상징의 의미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더우기 이순자 사진 옆에 남편 두환과 이름이 같은 두만이 얼굴을 맞대고, 둘 사이에 위치시킨 동그란테를 낀 손가락으로 둘을 연결시키려하지 않는가. 즉 두만이를 두환과 동일시하는 노골적 상징씬이다.



f) "전두환 대통령 각하"라고 씌여진 플랭카드와 두만이


그러기에 영화 속 "전두환 대통령 북중미" 환영 퍼레이드 씬에서 두만이의 머리 위에 걸린 플랭카드 문구 중에 "전두환 대통령 각하"라는 글귀까지만 나오도록 카메라 앵글을 잡고서 그 한 쪽에는 플랭카드 아래를 걸어가며 하늘을 쳐다보는 두만이를 배치해 이 둘을 한 숏(화면)에 집어넣은 1~2초의 짧은 찰나의 미장센 연출이 두만=(전)두환 이라는 노골적 상징씬의 절정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리고 이때 쏟아지는 비를 피한다는 핑계로 과일가게로 들어간 두만이에게, 태극기를 손에 쥐고서 전두환 대통령 환영인파로 동원됐던 여고생들이 두만이를 마치 그녀들이 기다리고 있던 전두환 대통령을 만난 마냥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액션을 취하는 데에서는 봉감독의 장난끼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의 맥거핀(관객의 눈을 속이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유인장치)


그러나 혹자는 봉준호가 관객들이 박현규(박해일)를 범인으로 생각하게끔 연출하며 분위기를 몰고 간다며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해일이 범인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결정적 증거는 유재하의 노래 “우울한 편지”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나는 밤에 항상 방송국에 틀어 달라고 신청했다는 이유로...


그런데 영화 속에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는 한 번도 끝까지 나오지는 않는데, 우울한편지의 마지막 가사가 어이없는 반전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아래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의 마지막 소절 가사이다.


“그대는 아는 가요

내겐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

우울한 편지는 이젠...“


풀어 써 보면 “ 우울한 편지는 이젠 내게 아무 관계 없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 가요?”


영화에 끝내 나오지 않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의 마지막 소절은, 이제 우울한 편지는 내게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범인이라고 단정하기 시작한 유일한 단서인 우울한 편지는 내(박현규)게 아무 관계없다고 관객에게 직접 말하고 있다. 기가 막히지 않는가? 한마디로 박현규(박해일)에 대한 유일한 증거인 우울한 편지는 아무 의미 없는 속임수, 맥거핀(트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영화는 박현규를 범인처럼 몰고 가지만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대목인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노래가 맥거핀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마지막 소절이 흘러나오기 직전에 박두만이 "탁!"하고 스위치를 눌러 카세트를 꺼버린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이 장면을 다시 보면 봉준호가 관객과 은밀한 대화(주고 받기)를 하고자하는 치밀한 설정의 잔재미를 느낄 수 있어 웃음이 절로나는 재미있는 장면이다. 봉준호가 참 얄밉지 않은가? 볼수록 재치 있는 감독이란 생각이 든다.


3)그 외 비유적 사건들


a. 교체되는 구희봉(변희봉)반장과 신동철(송재호)반장, 두 반장의 상징성.


영화에는 두 반장이 등장한다. 초반부의 구희봉 반장(변희봉), 그 이후의 신동철 반장(송재호)이다. 이 두 반장은 대비되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두반장의 상징성과 정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씬이 있는데, 바로 구반장의 마지막씬과 연이어 등장하는 신반장의 등장씬에 상징이 숨어있다.


구반장의 영화 속 마지막씬은 폭력적 억지 현장검증으로 검사에게 혼쭐이 나고서 자장면집에서 나무젓가락을 쪼개다가 잘못 쪼개지자 화내며 욕하는 씬이다. 여기서 등장인물의 행동에 주의해야한다. 그는 하나를 둘로 쪼개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 쪼개지고 만다. 이는 두 가지 상징을 담고 있다.


1.구반장은 바로 좌천되고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구반장시대의 종말의 의미.

2. 같은 뿌리가 잘못 쪼개져 둘로 갈라선다는 대립된 두 세력의 등장의 의미.


바로 연이어 등장하는 씬이 좌천되는 구반장을 대신해 새로 부임하는 신반장이 신문을 펼치는 행동이다. 그는 펼치고 있다. 새로운 것의 시작을 알리는 펼치는 행동이다. 그런데 그가 펼친 신문의 귀퉁이에 6공화국 대통령 노태우의 사진이 있는 것을 보았는가? 왜 새로 온 신반장이 펼치는 신문에 꼼꼼함의 도사 봉테일 봉준호감독은 노태우의 사진을 넣었을까?


이는 두 반장의 특징과 영화 속 역할을 되새겨보면 된다. 구반장은 "두만"을 두둔하며 "태윤"을 무시한다(백광호 현장 검증 씬 등등). 그리고 새로온 신반장은 "두만"을 무시하며 "태윤"을 두둔한다(두만의 말을 시끄럽다고 무시하며 끊고 태윤을 두둔하는 그외 수많은 씬들). 위에 나온 두 형사 이름 "두만"과 "태윤"에 처음에 필자가 분석했던대로 구정권 5공화국 대통령 "두환"과 신정권 6공화국 대통령 "태우"를 대입해 넣으면 간단하다.


이렇게 구반장(변희봉)이 물러가고, 신반장(송재호)은 등장하자마자 두만(두환)의 말을 무시하고 태윤(태우)의 방식으로 수사방향을 잡게 된다. 그래서 이 씬에서 펼치는 신문에 노태우의 사진이 있고, 마침 기차가 지나가고 철길 차단막이 올라가며 신반장의 앞길을 열어주며 새로운 변화와 시작을 암시하는 것이다. 때문에 두 반장의 성씨가 옛구의 구(舊)와 새로울 신의 신(新)을 넣은 구반장, 신반장인 것이다.


당시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정권이 넘어갈 때(화성강간사건과 같은 시기라는 이 절묘한 일치성) 국민들은 군사정권이 끝났다고, 더이상의 독재는 없다고, 이제 민주주의는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호들갑 떨던 뉴스와 언론, 신문 쪼가리들, 그리고 태윤(태우)이가 우리에게 굳게 믿게 했던 그 문서쪼가리들을 우리들은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배신 당할 것임을, 태윤은 실패하고 말 것임을, 봉준호는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b. 두만이의 자동차 고장 사건.


두만이의 자동차는 영화 내내 딱 세 번 고장난다.


첫 번째 고장은 다음에 또 고장날 수 있다는 암시의 역할이 있지만 하필 고장난 시점이 첫 사건 발견하는 날이란 것이 의미하는 상징이 있다.그건 두 번째 고장의 의미를 해석하면 알게 된다..


두 번째 고장 때는 박두만을 제외하고 모두 내려 자동차를 미는 씬이다. 마침 그 장면은 박두만 수사진들이 미국의 유전자검사결과를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 된 상황에서 멈춰버린 자동차를 함께 미는 씬인데, 5공화국 군사정권 말기 6월 항쟁등으로 정권의 실제적 물리적통제력(경찰, 전경)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마지막 물리력인 군대로 국민을 제압할까 말까하고 군사정권 내부가 심하게 분열된 채 미국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던 때로,


폐차 직전의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박두만과 뒤에서 차를 밀고 있는 서태윤, 조용구, 반장들이 몰락 직전의 5공 군사정권을 운전하던 전두환과 그것을 뒤에서 바치며 밀던 노태우, 폭력적 공권력과 군대(조용구), 그리고 정부고위관료들(반장)로 비춰지는 건 필자만의 억측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이 얼마나 센스있는 봉준호의 비유인가?



물론 세 번째 고장 때는 차가 아예 멈춘다. 이처럼 자동차는 정부권력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5공 군사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하며 폭주하던 자동차를 고장나게 하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상징적 사건이였다. 그리고 세 번째 고장 날 때 두만이가 아닌 태윤이가 자동차(정부 권력)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봉준호가 86년 같은 해에 발생한 화성강간사건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동일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화성사건의 첫 사건현장을 찾아가는 날 두만이의 자동차(정부권력)가 고장나는 것(영화 속의 첫 번째 고장)이다.


(4). 영화 종반부 반전에 담긴 놀라운 봉준호의 관객 희롱.


결국 화성연쇄강간살인사건의 실질적 범인은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면, 두만이가 즉 범인(두환)이라는 상징적 비유가 성립된다. 그럼 두만(두환)이를 범인이라고 보고 마지막 씬들을 해석해 보자. 놀라운 반전이 있다.


< 그러나 잠깐!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 리뷰는 두만이가 영화 속 실제 범인이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감독이 자신만의 사회, 역사에 대한 시대적 사유와 철학을 은밀히 숨겨 놓은 상징적 의미가 담긴 범인이란 뜻이다.


실제 살인자는 따로 있지만 상징적으로는 쫓는 자가 살인자가 되는 이런 이중적 초현실적 사유와 상징의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작품 속에 담는 것이 바로 예술가의 특권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기에 이렇게 얼기설기 복잡한 상징 속에 숨겨진 작가의 철학을 분석하는 것이 예술작품 평론가의 존재 이유 아니겠는가.


그래서 예술작품은 절대 표피층만 분석하면 안되는 것이다. 필자는 모든 감독은 한 사람의 철학자라고 보고 영화 속에 담긴 그의 철학(그의 사유방식)을 분석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물론 분석 결과 그 철학이 한심한 유아적 수준의 철학인지, 심오한 수준의 철학인지는 감독들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나오지만... >


1) 영화 마지막 여자애가 두만이와 대화 나누는 장면.


두만이가 형사직을 그만두고 십 몇 년 만에 첫 사건 현장을 다시 찾아와 지나가던 여자애를 통해 얼마 전 어떤 아저씨가 똑같이 보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범인과 못 마주친 안타까운 감정으로인해 관객이 두만이에게 강하게 감정 이입되는 장면으로 인상 깊은 씬이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형사직을 그만 둔 두만이가 오랜만에 사건 현장에 들린 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봉준호에게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것이라 볼 수 있다. 봉준호는 형사 "두만"이가 현장을 다시 들른 것이 아닌 범인 "두환"이가 당시 사건을 추억하며 오랜만에 범죄현장을 방문한 것으로 보이게 끔 의도적인 연출을 한다. 봉준호는 이러한 반전(현장에 들린 형사 두만이가 범인 두환이로 전화하는)에 대해 대사로 힌트를 던져 주는데 그건 여자애가 전해주는 범인의 대사다.


“옛날에 여기서 자기가 했던 일이 생각나서 진짜 오랜만에 한 번 와봤다.”


이 대사는 영화의 제목이 왜 "살인의 추억"인지(범인이 자신의 살인행각을 추억한다는 뜻)를 알려주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인데, 영화 중반부에 던져 준 힌트와 중복 된다. 영화 중반부에 두만은 사건 현장인 무덤가에서 점쟁이가 준 부적을 사용하다가 누군가 다가 오자 옆에 있는 부하 조용구(김뢰하) 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알지. 범인은 사건 현장에 꼭 다시 온다.”라고 말한 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제목 "살인의 추억"을 상징하는 위 대사의 두 번의 반복을 통해 지금 여자아이가 대화하는 상대는 형사 두만이가 아닌 자신의 범죄현장을 추억하며 들린 범인 두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를 확증시켜주는 것은 아래에 분석한 그의 연출방법 때문이다.


아래 스샷은 현장을 다시 찾아왔다가 두만이가 여자아이에게 들키는 장면.



a) 여자아이와 두만이의 대화 전반부.


여자애 : “그 안에 뭐 있어요?”

두 만 : “응?”

여자애 : “거기에 뭐 있냐구요?”

두 만 : “으흠(헛기침 소리)......아니...”

여자애 : “근데 왜 봐요?”

두 만 : “그냥 좀 봤다.”


위의 대사에서 등장인물 "두만"의 위치에 "범인"이라고 쓰고 읽어보기 바란다.

즉 전반부 대사는 여자아이와 현장에 들린 범인과의 대화내용으로 쓰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래서 전반부 대화는 아래처럼 촬영된다. 한 앵글에 담아서 대화인물들의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과 실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자아이가 범인과 나누는 대화내용이 아닌 후반부대화부터는 촬영이 아래처럼 분리된다.




후반부 대화는 두만과 여자아이를 각자 따로 한 숏에 담아서 두 사람의 대화를 철저히 분리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게다가 후반부 대화의 여자아이 장면은 뒷 배경이 구름은 커녕 파란 하늘도 아닌 마치 세트장 같은 허연 배경으로 계속 촬영을 하여 고의적으로 여자아이 후반부 대사를 시간적 공간적 느낌을 없애고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느낌까지 들도록 만들고 있다. 결국 보는 이로 하여금 후반부 여자아이의 대화상대는 두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게끔, 그리고 그런 시점으로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있게끔 연출 촬영 된 것이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두만이의 배경은 사건현장의 논이다. 더욱 의미심장한건 사건 당시의 수확기의 가을 논이라는 시간까지 동일하게 화면에 담아 넣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범죄현장의 시간과 공간을 고스란히 담는 화면이 된다.


두 대화상대를 분리시키며 여자아이에겐 비실재성을 두만이에겐 실재성을 부여하는 화면이다. 우리는 여기서 영화이기에 구사가능한 영화문법의 특징도 함께 알게 된다.


a. 배경미장센의 차이가 주는 의미 : 장소, 배경의 이미지가 주는 시간적, 공간적 이미지 이용, 즉 여자애의 배경과 두만의 배경을 매우 극적인 대비로 표현한 봉감독의 의도 파악.


b. 숏(사각의 스크린, 즉 관객의 제한된 시각 범위)의 활용 : 대화 내용에 따라 대화상대자를 각자 다른 숏에 담아 서로를 숏으로 분리시킬 때 영화 전체의 의미 분석에 따라 대화 한 쪽은 동시간 때의 같은 대화상대자가 아니거나, 실재하지 않는 환상의 대화상대자(메뚜기 소년은 박두만이라는 감독의 상징을 담아낼 초현실적 은유의 인물이었던 것과 같은)가 될 수 있다는 영화만이 가지는 숏이라는 특징과 한계의 뛰어난 활용.


바로 이 후반부 대화씬이 뛰어난 연출자 봉준호 감독이 관객을 상대로 섬세한 영화 문법을 구사해서 본심을 숨겨 암시한 부분인 것이다. 왜냐하면, 후반부 대화씬은 한 쇼트(화면)에 한 인물만 나오며, 그 인물은 대화할 때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즉 그들은 서로(소녀와 두만)를 마주보며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을 응시하며 스크린 밖의 관객과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영화 속 인물이 정면, 즉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은 관객과 대화하는 것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영화 연출 수업 초반에 배우는 기본 ABC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두 인물의 대화씬을 숏으로 분리해 연출할 때는, 각각의 인물이 정면을 살짝 빗겨 상대가 있는 지점을 바라보며 대화하도록 촬영하는 것이 대화씬의 기본인데, 만약 그렇지않고 정면을 바라보고 대화한다면 그것은 관객과 대화하는 것이라는 감독의 의도가 깔린 연출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줄거리 흐름대로 보면 소녀와 두만의 평범한 전후반부 두 개의 대화씬이, 영화문법적으로 세밀하게 뜯어보면, 전반부는 두만이 현장을 들키는 대화씬이고, 후반부는 목격자(소녀)와 범인(두만)이 각각 관객과 대화하는 씬이 되는 중의적 의미가 담긴, 은밀히 본심을 전달하는 봉준호의 기막힌 연출씬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속 봉감독의 의도를 분석하다보면 필자처럼 자연스럽게 영화 문법을 배우게 된다. 이제 위의 결론을 통해서 여자아이의 후반부 범인 인상착의를 얘기하는 부분을 보자.


여자아이가 두만이 아니라 관객에게 범인의 인상착의를 알려준다고 생각하며 아래 대사를 음미해 보자(그리고 촬영앵글도 여자아이가 관객에게 말을 걸듯이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방향이다).


“그냥 뻔한 얼굴인데”

“그냥 평범해요”


그리고 뒤이어 인상 깊던 그 유명한 영화의 마지막 씬이 등장한다. 클로즈 업으로 두만(두환)의 옆 얼굴이 비춰지고, 그리고나서 두만(두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관객들을, 우리를 빤히 쳐다 본다.


마치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살인 범죄를 우리에게 들킨 것처럼...



소름끼치지 않는가?


여자아이의 인상착의대로 전혀 특별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그냥 '뻔'한 얼굴로 정말 '평범'하게 생긴 배우 송강호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형사 두만이 아닌 과거 살인(살육) 행각을 벌인 과거 군사정권의 범죄자들이 뻔하고 평범한 얼굴로 우리와 섞여 살며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두만(송강호)이 관객 속의 범인을 쳐다 보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의 마지막씬의 숨겨진 봉준호의 진짜 속 뜻은 바로 범인이 관객을 빤히 쳐다 보고 있는 것이였다!


우리는 위의 상징들 분석을 통해 봉준호가 생각하는 화성사건의 진짜 범인은 고문과 폭력을 밥 먹듯이 행사하던 두만이의 경찰공권력으로 상징된 군사정권이란 것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결국 이 영화는 완전히 심판 받지 않고 우리 주위에 평범하게 뻔(뻔)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군사정권세력들에 대한 소름끼치는 그들의 민중살육에 대한 추억이자, 그들의 “살인의 추억”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뻔뻔스럽게... 아주 옛날에 여기서 자기가 했던 일이 생각이 나서 한 번 와봤다고...


b. 더 깊은 의미, 또 한번의 반전.


그런데 이 상징적 의미는 더욱 심오한(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또 한번의 반전이 있다. 소녀와 박두만의 대화장소는 영화 초반부 메뚜기 소년과 박두만의 대면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박두만과 메뚜기 소년이 동일인물임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 메뚜기 소년이 있었던 그 장소에서의 소녀와 박두만의 대화는, 소녀와 어른이 된 메뚜기 소년(두만)과의 대화를 상징함을 알 수 있다(위치도 절묘하다. 어른이 된 메뚜기 소년은, 두만과 메뚜기소년 사이에서 일어나 걸쳐 앉고, 소녀의 부름을 핑계로 뒤를 돌아보는[추억하는] 위치다).


왜 봉준호는 소녀와, 메뚜기 대신 사람을 죽이는 살인범이 되어버린 어른이 된 메뚜기 소년(박두만), 이 둘을 다시 대면시켰을까? 이것은 소녀의 마지막 대사 "그냥 평범해요"라는 대사 뒤에 클로즈업된 박두만의 옆얼굴을 서서히 돌려 우리를 마주보게 할 때 알게 된다.


봉감독은 이 대목에서 전두환 체제와 그 이후에서 자라난 우리의 내면 속의 전두환의 자화상(독재세력들과 그 사회구조를 아직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들의 못난 자화상 = 비민주적 폭력과 독재에 무감각해지도록 체제내화된 대중들의 의식, 그래서 자신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 담긴 계급정치학을 알아보지 못해 외면했던 대중들의 정치의식수준)을 찾아내 스크린으로 우리와 대면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영화 엔딩 숏 박두만의 정면 모습은, 전두환을 아직 청산하지 못한 채 철없는 소년처럼 메뚜기를 잡아 죽이듯이 부지불식간에 그 비민주적 체제에 동화되어 자라나 어른이 된 우리들의 자화상, 우리 안의 전두환의 자화상과의 대면이다. 그래서 소녀의 대사 "평범"은 우리대중들을 함께 상징함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살인의 추억"은 우리들의 내면에 키워 온 전두환 자화상을 스크린으로 마주보는 소름끼치는 "추억"이 되는 것이다.


(5). 의도된 절묘한 송강호 캐스팅으로인해 엔딩에 숨겨 놓은 봉준호의 진짜 의미가 화룡점정(畵龍點睛)처럼 완성된다.


영화 초반부에 보면 두만이가 고장난 자동차 때문에 농부의 경운기를 타고 사건 현장에 가는 장면을 보고 아이들이 똥차(고장나 멈춰서 있는 두만의 자동차를 빗대는 말=고장나기 시작한 5공 정부 상징)하며 놀리며 쫓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 중 젤 큰 아이가 바닥에 돌맹이를 집어 두만을 향해 던진다. 고장난 똥차(고장나기 시작한 폭력 5공정권) 소유자 두만(두환)에 대한 돌팔매질이다. 역시 등장인물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그 자신의 생각을 담는 상징적 행동을 그려내는 봉준호의 센스다. 그때 두만이는 애들을 향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며 점퍼 안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는 척하며 “뻑큐”(옛날 우리나라식 뻑큐)를 날린다.



이 행동의 속 뜻은 쫓아오며 비웃고 돌팔매질하는 아이들(5공 비판 국민들)과 관객에게 하는 행동인 것이다. 이 부분은 두만이가 관객(영화를 보는 국민들)을 마주 보는 씬으로 촬영 됐기에 더욱 그 의미를 확실히 해준다.


두만(두환)이가 마치 '내가 사실은 범인(봉준호가 설정한 사회정치적 관점에서의 진짜 범인=5공 군사정권세력들)인데 이제부터 범인이 아닌 것처럼 당신들을 제대로 엿 먹일 거거든 잘 지켜봐!' 하는 식으로...


그리고 관객들(국민들)은 서민연기의 대가 국민배우 송강호의 너무도 평범하며 뻔해서 자연스러운 그 연기에 푹 빠져들어 폭력적 야만적 고문 형사 두만이에게 점점 감정이입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송강호의 두만 역은 봉준호의 의도(증오해야할 대상에 감정이입되어 속아버리는, 자신이 그 체제에 동화되어 체제내화되는)된 기가 막힌 최고의 캐스팅이였다.


지금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박두만이 털털 거리는 경운기 뒤에 앉아서 보여줄게 있다고 이리 오라며 관객을 향해 손짓을 하다가 안 주머니에서 “뻑큐”를 꺼내는 모습이... 그래서 살육의 범죄자가 과거를 추억하며 우리에게 "뻑큐"를 보기 좋게 날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봉준호의 흥미진진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다룬, 요즘 영화들과는 달리 보기 드물게 희망적이어서 특히나 눈이 더 가는 주제의식인, 나약한 패배적 인텔리겐챠(뜻:민중에 대한 정치적 의무감을 가진 지식인을 뜻함, 이성재)와 희망찬 서민(노동자 배두나)을 다룬 정치적 우화에 대한 대중들의 철저한 무시에 대한 투정이 같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살인의 추억”에 대한 위의 분석으로 봉준호의 뛰어난 감각을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물론 아시다시피 그의 이런 비판적인 뛰어난 비유상징 방식은 "괴물"에서 조금 변화된 방식으로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살인의 추억"에서 너무 노골적 상징(이름 등등)까지 동원한 많은 상징들을 썼지만 알아주지 않는 관객에 대한 항의인지, <괴물>에서는 좀더 과감한 상징과 함께 우리에게 핀잔을 내던진다.


그것은 <괴물>영화 초반부 대사로 영화의 핵심주제와 맞닿아 있는, 한강다리에서 투신자살하던 사장이 "끝까지 둔해빠진 녀석들! 잘 살아 (다)들~!" 하고 내뱉은 비꼬는 식의 대사다. 이 말을 내뱉자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씬이 시간만 나면 조는 노랑머리의 박강두(송강호)의 자는 모습이라는 사실에서 밝혀지는 "미각성자에 대한 씨퀀스"(씨퀀스 = 어느 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의 한 묶음)의 시작이 영화 마지막 씬에서 검정머리로 긴 겨울밤에도 잠 안자는 똑똑해진 총 든 대결자세의 박강두(송강호)의 모습에서 각성자로 완결되는, "서민의 정치적 각성에 대한 씨퀀스"에 대한 영화 처음과 끝의 수미일관성을 파약해야, 봉준호가 관객에게 투정부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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