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용의자 이춘재, 청주 처제 살인으로 현재 부산 지역 교도소 수감
사형선고 받았으나 대법원서 파기환송..범행 잔혹성·수법 등 닮은꼴

[공공뉴스=이상호 기자] 희대의 장기 미제 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30여년 만에 드러나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찰이 특정한 유력 용의자는 지난 1994년 처제 강간·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춘재(57)다.  

경찰의 1차 조사에서 이춘재는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 혐의를 부인했지만 화성과 청주에서 각각 발생한 두 사건의 범죄 수법과 잔혹성, 시신유기 수법 등이 대체로 비슷한 상황.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은 스타킹 등으로 양손이 묶여 숨진 채 발견됐고, 이춘재가 살해한 처제의 시신 역시 스타킹으로 묶여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공공뉴스>는 당시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을 입수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부산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가 지목됐다. 이춘재는 현재 충주에서 처제를 강간 살인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사진은 이춘재 대법원 판결문 일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부산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가 지목됐다. 이춘재는 현재 충주에서 처제를 강간 살인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사진은 이춘재 대법원 판결문 일부.

◆처제 성폭행 후 잔혹 살해..무기징역 선고 받고 복역 중

판결문에 따르면, 이춘재는 93년 12월18일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아내가 가출을 하자 이에 앙심을 품었다. 이후 청주 흥덕구 복대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 놀러온 처제에게 수면제가 든 약물을 먹여 성폭행 한 뒤 범행이 드러날 것을 우려, 망치를 이용해 처제의 머리를 4차례 가격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또한 사체를 오토바이로 옮겨, 인근 창고에 유기하기도 했다.

이씨는 체포된 뒤 “집을 나간 아내에 대한 복수심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가정불화를 겪고 아내가 가출했는데, 이를 처제가 비난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자신을 믿고 따른 처제를 성폭행한뒤 살해하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유기하는 등 죄질이 불량할뿐 아니라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 점과 뉘우침이 없는 점 등을 들어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 역시 1심과 같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고인의 범죄가 반인륜적 행위임에는 틀림없으나 성폭행 이후의 살해까지 계획적으로 이뤄졌는지가 불분명하므로 충분한 심리로 의문점을 해소해야 한다”면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의 파기 환송 이유는 피해자인 처제의 부검결과 위에서 검출된 약물이 치사량이 아닌 점에 미뤄 계획적인 강간은 인정하되 의도된 살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당시 “피해자를 강간할 마음을 먹고 원심 판시와 같이 계획적이고도 치밀하게 저지른 것으로 인정할 수 있겠지만, 그 후에 있은 살인 범행에 대하여는 기록을 자세히 살펴 보아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것까지 사전에 계획하고 있었다고 볼 만한 직접적인 자료는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처제를 강간,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하여 사체를 유기한 것은 반인륜적 범죄임에 틀림없고, 그 범행방법 또한 잔인한 면이 없지 아니하다”면서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극형을 선택, 처단할 것인가 여부는 그 양형조건에 관하여 충분한 심리를 한 다음 신중히 이를 선택하여야 할 것”고 덧붙였다.

현재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부산의 한 교도소에서 수감 중에 있다.

경찰은 화성연쇄살인범을 특정한 것과 관련해 “용의자가 누구인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언론보도가 이어진 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부산에 수감 중인 이춘재가 맞다”고 밝혔다.

버스 기사의 목격으로 만들어졌던 이춘재 몽타주 <사진=뉴시스>

◆여성 10명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경찰 “연관성 추적”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6년 동안 화성시 태안읍 반경 2㎞ 안에서 10명의 여성이 살해된 국내 대표적인 미제 사건 중 하나다.

피해자들은 10~70대 사이 여성이었으며 대부분 목이 졸려 살해됐고, 신체가 크게 훼손된 특징이 있었다. 경찰은 당시 연인원 205만여 명을 동원해 2만1280명을 수사했다. 지문대조를 한 용의자는 4만116명, 모발감정을 한 용의자는 180명이었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수사를 받다 다른 범죄가 드러나 붙잡힌 사람만 1495명에 이렀다. 사건은 91년 4월3일 마지막 피해자가 발생한 15년 뒤인 2006년 4월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사건 발생 시기,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목격자의 증언도 있었다. 당시 용의자를 태운 버스기사 기억을 토대로 키 170㎝ 이하에 마른 체격, 갸름한 얼굴의 20대 중반 남성임이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8차 사건의 경우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경찰이 특정한 용의자의 음모가 일치했지만, 다른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DNA 분석기술 발달로, 십수년이 지난 후에도 재감정의뢰한 증거물에서 DNA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후 지난 7월 중순경 화성사건 증거물 일부를 국과수에 분석 의뢰한 결과 피해자의 속옷에서 채취한 DNA가 이춘재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이춘재의 DNA는 현재 9차 사건을 포함해 두 차례 사건의 여성 피해자 증거물에 남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경기남부경찰서는 관련 브리핑을 통해 “미제사건 수사팀, 광역수사대, 진술검토팀, 외부자문으로 57명으로 수사본부를 꾸렸다”면서 “앞으로 DNA 감정을 통해 대상자(이춘재)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연관성을 추적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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