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지난 화성연쇄살인 사건…경찰의 집요한 추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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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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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피해자 넋 달래고 재발방지 위해 수사”
명예회복해 뼈아픈 오욕 씻기 위한 몸부림


18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수감 중인 ㄱ(50대)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수배전단. 연합뉴스
1980년대 중반 이후 온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이아무개(56)씨로 특정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이씨가 진범으로 확인되더라도 공소시효가 끝나 단죄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경찰의 집요하고 끈질긴 수사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경찰은 우선 적극적인 재수사의 이유로 진실 규명을 꼽고 있다.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은 “2016년 1월 지방청에 미제사건 수사팀이 편성된 뒤 지방청 중심의 수사체제에 따라 미제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재검토하고 분석하는 수사를 진행해왔다. 법적으로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공소권 없음으로 송치해야 하지만, 경찰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모든 수사기법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나원오 경기남부청 형사과장도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범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유사범죄를 막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라며 의지를 내비쳤다.

진실 규명이라는 대외적인 이유 외에도 경찰의 적극 수사 배경에는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해 ‘30여년 만의 명예회복’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하게 반영돼 있다. 실제 당시 경찰의 수사는 주먹구구식 그 자체였다. 궁지에 몰린 경찰은 조금만 의심이 가도 용의자로 체포해 조사를 벌이곤 했다. 관련 용의자만 3천명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피해자도 속출했다. 1990년 3월, 3차례 경찰조사를 받았던 ㅊ(당시 38살)씨가 달리는 열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고, 10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됐던 ㅈ(당시 32살)씨 역시 1991년 4월 아파트 4층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7차 사건 용의자 ㅂ씨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아버지 무덤 근처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특히 4차(1986년 12월14일)와 5차(1987년 1월10일)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경찰에서 고문 등 강압수사를 받았던 김아무개씨는 1993년 자살 시도 뒤 1997년 후유증으로 스스로 생을 내려놓기도 했다.

비극은 경찰도 피해 가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관 4명은 일선에서 물러난 뒤 얼마 되지 않아 과도한 스트레스로 숨졌다. 일선 경찰들에게 커다란 자괴감을 안겨준 대목이었다. 경기남부청의 한 경찰관은 “당시 사건 해결을 위해 동원된 경찰만 연인원 205만여명에 달했다고 알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 과학수사의 한계로 인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선배 경찰관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모든 수사기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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