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전에서 자랑스러운 인물 좀 알려주세요
저희 반 숙제인데요.
꼬옥~대전으로 답변 부탁드립니당^^
빠른답변 부탁드립니다.
아참!박세리씨 빼고요...
그럼 안녕히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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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전의 자랑스러운 인물)
1.조선작 (1940.02.03~)
1940년 2월 3일 충남 대전 출생. 대전사범학교 졸업.
1971년 『세대』에 단편소설 「지사총(志士塚)」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요작품으로 「「시사회』(1971), 영자의 전성시대」(1973), 「밀도살」(1973), 「여자 줍기」(1974), 「경자의 코」(1974), 「외야수」(1974), 「미술대회」(1974), 「아버지 찾기」(1975), 「초토」(1978), 「굴레」(1987) 등의 소설과 『영자의 전성시대』(1975), 『외야에서』(1975),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1980), 『미완의 사랑』(1982), 『완전한 사랑』(1983), 『우수의 사슬』(1984) 등 6편의 창작집을 간행하였다.
그는 현실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 특히 소외된 저변층의 생활을 소설적 소재로 취급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제의 심각성과 그 무게에도 불구하고 언어 표현의 새로움과 구성상의 재치로 소설의 재미를 살려 놓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는 창녀 등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현실의 문제성을 실감있게 서술하고 있으며, 「고압선」과 같은 작품에서는 소시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우회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그려내고 있는 하층민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데, 왜곡된 산업화의 과정에서 빚어진 현실의 부조리를 작가는 편견없이 치밀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 특히 「영자의 전성시대」는 이른바 ‘호스티스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일련의 작품들의 원형이 된다.
산업사회로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한국 사회의 새로운 문제로 부각된 여성의 상품화 현상을 ‘창녀’ 혹은 ‘호스티스’라는 사회적 존재에 초점을 맞춰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1970년대 고도성장의 이면에 숨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작이 이처럼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재빠르게 포착하여 문제시하는 예리한 안목을 보여주고 있음은 그의 작가적 역량이라 하겠다.
2.김덕수 (1952~)
1952년 대전에서 출생하여 1970년 서울국악예술고를 졸업하였다. 1957년 5세 때 남사당 무동으로 데뷔한 후 남사당의 일원이 되었다. 남용윤, 송순갑 등에게 장구, 쇠가락을 사사하였다.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창단하고 단장이 되어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창단 공연을 가짐으로써 사물놀이의 대중화에 힘썼다.
1982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세계 타악인대회에 참가하였고, 1984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월드 드럼페스티벌에 참가하였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 성화 봉송 축하 공연을 하였다. 사물놀이패와 함께 여러 차례 일본, 미국 등 해외순회공연을 하며 사물놀이를 세계에 알려 국위선양을 하였다.
1994년 부여에 사물놀이 교육원을 개설하여 사물놀이 보급과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1995년 사물놀이패 한울림을 창단하여 예술 감독이 되었다. 1997년부터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 국악과 겸임 교수, 목원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겸임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전임 객원 교수로 있다.
대표곡은 《어우름》(1997), 《길》(1997), 《소리》(1997), 《덩더쿵》(1997) 등이 있고, 음반은 《난장-뉴호라이즌》(1995), 《김덕수 사물놀이 결정판》CD(1996), 《풍물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미스터 장고》(1997) 등이 있다. 저서에 《사물놀이 교착본 1, 2, 3》이 있다.
3.한대화 (1960년 7월 8일 ~ )
대전광역시 출신으로 전 프로야구 선수이며, 현재 한화 이글스의 감독인 한대화는 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현 야구월드컵)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국가대표선수로 출전, 역전 3점 홈런을 터뜨리며 한국을 첫 세계정상에 올려놓았다.
83년 OB(현 두산) 입단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한 한대화는 86년 해태(현 기아)로 옮기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86년부터 93년까지 중심타선에서 활약한 그는 이 기간에 해태를 6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다. 통산 712타점을 올리면서 얻은 별명이 '해결사'.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8차례나 수상하면서 현재까지 역대 골든글러브상 최다수상자가 되었다.
대전고→동국대를 졸업한 한대화는 97년부터 동국대 감독을 맡고 있다.
2002년 2월부터 5월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인터넷을 통해 실시한 '프로야구 20년 통산 포지션별 최고스타' 투표에서 최고득표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4.후인정 (1974년 4월 19일 ~ )
남자 배구 선수로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소속이다. 경기대학교 재학 시절에 후로 똑같이 시작되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걸프전 당시에 사용했던 미사일 이름에서 비롯된 "스커드 미사일", 경기에 뛸 때마다 반팔인 경기복을 접어 민소매로 만들어 입는 것 때문에 "민소매(나시) 인정", 현역 배구 선수중 최연장자이자 현대에서만 10년이 넘는 선수생활을 해서 "후옹" 등 모두 3개의 별명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결혼 후 슬하에 1남이 있고, 후인정의 아버지는 배구 선수로 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감독까지 지낸 적이 있는 후국기이다.
후인정은 원래 중화민국 국적의 화교 출신이다. 아버지 후국기는 대한민국의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해 중화민국 대표팀에 머물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아들인 후인정을 1995년에 귀화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인정은 수원 후씨의 시조이다.
경기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현대자동차서비스 배구단 (현재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 입단했으나, 1996~1997 슈퍼리그부터 9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같은 포지션에서 뛰던 김세진에게 밀려 2인자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소속팀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프로 출범 원년인 2005년,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MVP로 후인정이 선정되었고, 2005~2006 시즌과 2006~2007 시즌에는 2년 연속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우승의 한을 풀었다. 그는 현재 현역 배구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으며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2009년 12월 2일 NH농협 2009~2010 V-리그 신협상무와의 경기에서 팀의 통산 2,000번째 블로킹을 성공시키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011.05.14.
방지성,김연아 등..
오늘날의 자랑스러운 인물인 것 같네요...
많은 도움 되길 바랄게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2011.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