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기자의 '책마을 편지'] 우리 곁에 온 聖者 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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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아베 피에르(88)라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최고의 휴머니스트로 존경받는 성자이지요.

그분은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를 만들고 평생 집없는 사람들을 돌봐온 노숙자의 아버지입니다.

50년전부터 자기 집을 개조해 가난한 이들에게 보금자리로 내놓았지요.

이것이 44개국 3백50여개 단체에 이르는 엠마우스 운동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분이 어느날 한 자살미수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돕고 싶어도 돈이 없는데 기왕 죽기로 한 거 일을 좀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권했지요.

얼떨결에 승낙한 그가 최초의 엠마우스 멤버였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지요.

"그 때 신부님이 돈이나 집을 줬더라면 다시 자살했을 겁니다. 제게 필요했던 것은 사는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더 어려운 이웃을 돕도록 만드는 힘은 "...하시오"가 아니라 "함께 합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분이 남부러울 것 없는 상류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점입니다.

열아홉살 때 유산을 모두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지요.

2차대전중 나치에 쫓기는 유태인들을 스위스로 넘겨 보내며 신발까지 벗어주고눈길을 걸어오면서도 기뻐한 분이지요.

우리가 전쟁의 상처에 시달리던 1954년 겨울,파리에서 얼어죽어가는 노숙자들을 살리자고 라디오 방송국으로 달려가 호소했던 일은 "겨울 54"라는 영화와 샹송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난해 파리에서 출간된 그분의 책이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바다출판사,6천원)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됐군요.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두가지 상반된 면"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주더라도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는 이기심이고,또하나는 남들과 더불어 살 때 행복을 느끼는 너그러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쁜 길로 접어들 수도,좋은 길을 되찾을 수도 있지요.

그분은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나 평등없는 자유주의의 극단을 이어주는 게박애정신이라고 말합니다.

"나라"의 테두리를 넘어 지구촌 전체로 나눔의 형제애를 펼치자는 그분의 철학을 짧은 독후감으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휴머니즘의 저울추로 우리네 삶의 질량을 다시 재어보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든 그것을 쓰는 방식에 따라 몫이 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샘물"과 "고인물"의 차이랄까요.

고인물은 나눠주는만큼 줄어들지만 샘물은 아무리 퍼내도 계속 솟아나지 않습니까.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지위가 높고 부유할수록 도덕과 책임이 뒤따른다)의 참뜻을 피에르 신부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은 정말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즐겁게 나누면 더욱 커지는 사랑,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더 밝아지는 빛,스스로비움으로써 가득 차는 항아리처럼 우리 곁의 성자는 오늘도 묻습니다.

"당신의 샘물은 어디 있습니까"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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