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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에서 나온 윤동주 시인의 시
비공개 조회수 16,503 작성일2017.10.09
말그대로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편에서 나온 윤동주 시인의 시를 알고싶습니다.어떤것들이 나왔는지 제발 알려주세요 ㅠㅠㅠ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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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제 블로그에 올린 윤동주 시 여러편 붙여봅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길 - 윤동주

잃어 버렸읍니다.
무얼 어디에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요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황혼이 바다가 되어 - 윤동주

하로도 검푸른 물결에
흐느적 잠기고......잠기고......

저--웬 검은 고기떼가
물든 바다를 날아 횡단할고.

낙엽이 된 해초
해초마다 슬프기도 하오.

서창에 걸린 해말간 풍경화.
옷고름 너어는 고아의 서름.

이제 첫 항해하는 마음을 먹고
방바닥에 나딩구오......딩구오......

황혼이 바다가 되어
오늘도 수많은 배가
나와 함께 이 물결에 잠겼을 게오.


* 한란계 - 윤동주

싸늘한 대리석 기둥에 목아지를 비틀어맨 한란계,
문득 들여다볼 수 있는 운명한 다섯 자
여섯 치의 허리 가는 수은주,
마음은 유리관 보다 맑소이다.

혈관이 단조로워 신경질인 여론동물,
가끔 분수 같은 냉침을 억지로 삼키기에
정력을 낭비합니다.

영하로 손구락질할 수돌네 방처럼 치운 겨울보다
해바라기 만발한 8월 교정이 이상 곱소이다.
피 끓을 그날이---

어제는 막 소낙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좋은 날세올시다.
동저고릿바람에 언덕으로, 숲으로 하시구려--
이렇게 가만가만 혼자 귓속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아마도 진실한 세기의 계절을 따라---
하늘만 보이는 울타리 안을 뛰쳐,
역사같은 포지션을 지켜야 봅니다.


* 무서운 시간 - 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 돌아와 보는 밤 -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
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빗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옵니다.


* 또 다른 고향 -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었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초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간 -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 새로운 길 -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가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흰 그림자 - 윤동주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로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든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든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 보내면
거리 모통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든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으젓한 양처럼
하로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 가슴 1 - 윤동주

소리 없는 북,
답답하면 주먹으로
뚜다려 보오.

그래 봐도
후----
가아는 한숨보다 못하오.


* 가슴 2 - 윤동주

불 꺼진 화독을
안고 도는 겨울 밤은 깊었다.

재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 양지쪽 - 윤동주

저쪽으로 황토 실은 이 땅 봄바람이
호인의 물레 바퀴처럼 돌아 지나고

아롱진 4월 태양의 손길이
벽을 등진 설은 가슴마다 올올이 만진다.

지도째기 놀음에 뉘 땅인 줄 모르는 애 둘이
한 뼘 손가락이 짧음을 한 함이어

아서라! 가뜩이나 엷은 평화가

깨어질까 근심스럽다.


* 산림 - 윤동주

시계가 자근자근 가슴을 따려
불안한 마음을 산림이 부른다.

천 년 오래인 연륜에 짜들은 유암한 산림이,
고달픈 한몸을 포옹할 인연을 가졌나보다.

산림의 검은 파동 우으로부터
어둠은 어린 가슴을 짓밟고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 바람이
솨--공포를 떨게 한다.

멀리 첫여름의 개고리 재질댐에
흘러간 마을의 과거는 아질타.

나무 틈으로 반짝이는 별만이
새 날이 희망으로 나를 이끈다.


* 달밤 - 윤동주

흐르는 달의 흰 물결을 밀쳐
여윈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북망산을 향한 발걸음은 무거웁고
고독을 반려한 마음은 슬프기도 하다.

누가 있어만 싶은 묘지엔 아무도 없고,
정적만이 군데군데 흰 물결에 폭 젖었다.


* 삶과 죽음 - 윤동주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아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 거리에서 - 윤동주

달밤의 거리
광풍이 휘날리는
북국의 거리
도시의 진주
전등 밑을 헤엄치는
조그만 인어 나,
달과 전등에 비쳐
한 몸에 둘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회색빛 밤 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선풍이 일고 있네
외로우면서도
한 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푸른 공상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 트루게네프의 언덕 - 윤동주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
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세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
느냐 !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
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
로 만지작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세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

* 트루게네프의 산문시 '거지'를 풍자한 시



* 소년 -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같은 슬픈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少年)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딘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 달같이 - 윤동주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 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 나간다.


* 비애 - 윤동주

호젓한 세기의 달을 따라
알 듯 모를 듯한 데로 거닐고저!

아닌 밤중에 튀기듯이
잠자리를 뛰쳐
끝없는 광야를 홀로 거니는
사람의 심사는 외로우려니

아-- 이 젊은이는
피라미드처럼 슬프구나


*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 십자가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읍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읍니다.


* 또 태초의 아침 - 윤동주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 온다.

무슨 계시일까.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겠다.


*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
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교외(東京郊外)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차거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


* 윤동주 시 발굴 - 조선일보

'별헤는 밤'과 '서시'의 민족시인 윤동주(1917∼1945)의 작품 중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시-동시 육필원고 8편이 새로 공개됐다. 이와 함께 '죽는날까
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되는 유명한 '서시'를 비롯,
그가 생전에 남긴 육필 원고 1백50점, 소장 도서와 메모, 신문 스크랩 등이 처
음으로 일괄공개돼 일제 암흑기 비운의 요절시인 윤동주의 모든 것을 알 수 있
게 됐다.

미공개 시들은 윤동주의 조카 윤인석(윤동주 동생 일주씨 장남·성균관대 건축
학과 교수)씨가 윤동주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컬러 사진으로 담아 학계에 자료
집으로 내놓기로 결심함에 따라 21일 공개됐다.

새로 공개된 작품은 시 '가슴 2'와 '울적' '야행' '비삥뒤' '어머니' '가로수',
동시 '개', 동요 '창구멍' 등 8편이다. 1934∼1939년(18∼23세), 간도 은진-광
명학교와 평양숭실중학교 연희전문 등을 다니며 시인의 꿈을 키우던 문학 습작
기를 반영한 작품들이다.이들 작품은 윤동주의 제1습작시집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와 제2습작시집 <창>에 각각 실렸으나 그가 1941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낼 때 빠졌으며, 광복후 윤동주 시집을 내는 과정에서도 후
손들이 공개하지 않아 실리지 못했다.'새로 공개된 작품들은 윤동주 자신이 마
음에 들지않아 ×표를 한 것들이지만,이중 '비삥뒤'나 '어머니'같은 좋은 작품
에 그가 왜 ×표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검토한 오오무라(와세다대·한국
문학)교수는 말했다.

윤인석씨는 '50년 넘게 집안에서 보관해 왔으나 분실 훼손의 염려가 항상 있어
더 늦기 전에 모든 자료를 컬러 사진 판으로 세상에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
다. 이 자료집은 <사진판 윤동주 육필 시고 전집>이란 제목으로 광복절인 8월
15일에 맞춰 민음사에서 발간된다.


* 발굴시 '가슴' 해설 - 조선일보

'가슴·2'는 윤동주시인이 1936년 3월25일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학생 시절 쓴
시다. 이 시 표기법에서 '스르램'은 오늘날 '쓰르라미'이고, '숲에 쌔워'는 시
인이 원래 '숲에 숨어'라고 쓴 것을 고친 것이다.2연에서 '우슴'은 '웃음','힌
달'은 '흰달'의 옛 표기법이다.

이 시는 외형적으로 볼 때 쓰르라미 소리 울리는 가을 숲과 밤하늘에 흰달이
걸린 풍경을 그린 짧은 작품이지만,깊이 들여다 보면 소년 윤동주가 앓고 있던
시대에 대한 절망과 처절한 자아 탐구가 명료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을 검토한
정현기 연세대교수는 '늦가을 숲에서 우는 쓰르라미는 외부에 대한 공포를 표
현한 것이고, 흰달 이미지도 연희 전문 입학 이후 쓴 시들에 나타나는 창백한
자아와 연결된다'고 평가했다. 식민지 시대 어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독립 투
쟁에 나서지 않았지만,끊임없이 스스로를 닦달했던 윤동주 시세계의 특징이 이
미 습작 시절부터 형성됐음을 밝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정교수는 평했다.


* 삶과문학-저항시인이아닌 순수한 휴머니스트(마광수) - 뉴스피플

정지용의 서문이 붙은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처음
간행된 것은 1948년이다.그러나 해방이 가져다준 감격의 소용돌이속에서 오
랫동안 잊혀져 왔던 윤동주를 문학적으로 재평가하고,그에게 정당한 위치를
찾아주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였다.

윤동주의 생애는 지극히 짧은 것이었다.그는 1917년 12월30일 북간도 용정
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맏아들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고 애국정신이 강했으며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편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간도로 이주하여 개척사업과
교육사업에 공헌한 지도적 인사였고,아버지 또한 학교 교원으로 일했다고 돼
있어 지사적 기개가 넘친 집안임을 짐작케 한다.그리고 조부와 부친이 똑같
이 그곳 교회에서 장로직을 맡은 것으로 보아 윤동주의 성장배경에는 가정적
으로 기독교적 분위기가 상당히 강했던 것 같다.

아동잡지 `어린이'의 애독자였던 그의 어릴 적 이름은 해환이었다.1931년
명동소학교를 마치고 중국인 관립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35년 평양 숭실중학
교에 전입했다.그러나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문제로 문을 닫고 일본 사람손
에 접수되자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교에 전입하였다.

그즈음부터 동시를 많이 써서 `카톨릭 소년'지에 `빗자루'(36년) `병아리'
(36년) 등을 `동주'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8년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
학하여 1941년 11월에 졸업한다.

이때 스스로 추려 뽑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자비출판하려 했
으나 일본경찰의 단속을 걱정한 스승 이양하의 만류로 단념하고 후일 1942년
초 `평소동주'란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으며 동년 4월 일본 동경의 입교대
학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가을에 경도의 동지사대학 영문과로 전학하였다.

1943년 여름방학에 귀국하려던 그는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고문섞인 취조를 받았다.결국 그는 1945년 2월16일 28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만다.

그는 한.일합방이후에 태어나서 민족광복을 맞이하기 직전에 죽었다.그가
시를 썼던 시대(1936년~1943년)는 모든 사람들이 시를 외면했던 때였다.중.
일전쟁과 대동아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그가 즐겨 바라보던 하늘에서는 공습
경보가 울리고 있었고 거리에는 군가가 흘러넘쳤다.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의 이미지,그리고 `병원'이나 `위로'
같은작품에서 보이는 소외의식에 넘친 절망적인 몸부림은,이러한 시대상황속
에서 창백하고 무기력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자신을 한탄하는 윤동주
의 처절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 자연을 소재로 한 상징적 어구들이 자주 보이는 것도 그 당시
문학인들에게 만연했던 현실도피,자연귀의의 사조와 아주 무관하진 않다. 그
러므로 윤동주는 저항시인이아니라 순수한 휴머니스트로 보아야 한다는게 나
의 생각이다.

그의 시 어느 곳에도 저항의 기백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가 옥사한 것은
어찌 보면 군사독재시절 이한렬군이나 박종철군의 죽음과 견주어질 만한것으
로서 시대를 잘못 태어난 양심적 지식인의 억울한 비명횡사라고 보는 편이맞
을 것이다.

그는 깊은 애정과 폭넓은 이해로 인간을 긍정하면서도 실제로는 회의와 혐
오로 자신을 부정한,어찌 보면 결백증에 가까운 휴머니스트였다.그는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보고 낭만적인 폭음 또한 멀리했던,당시로 보면 `시인답지 않
은 시인'이었다.

기독교 가정에 기독교 학교로만 일관한 그의 환경이 그를 청교도적 죄의식
으로 이끌어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남에 대한 애정이 곧 자기자신에대한 자
괴감과 부정의식으로 변모하는 그의 인생관이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 있다.
`투르게네프의 언덕' `간' `쉽게씌어진 시' 같은 작품이 그 보기라 할 수 있
다.

그러나 윤동주를 투쟁적 이미지의 저항시인으로 보지 않고 회의적 휴머니
스트로 본다고 해서 그의 시의 가치가 깎여지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도 그
는 스스로에 진짜로 `솔직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시의 가치가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함께 생각될 수는 없다.시는 시인의 자
기통찰과 자기연민,그리고 본능적 욕구의 대리배설로 이루어질 때 한결 진솔
한 감동을 준다.그런 점에서 볼 때 윤동주의 저항은 끊임없는 자기 내면 또
는 본능적 자의식과의 투쟁이었다.이러한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저항'이되
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스스로의 시인기질에 따른 시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자각하고 있었던 그는
시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참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욕구와 비애를 시창작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했으며 철저한 자기분석을 통해
서 자아의 변증법적 발전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가 목표했던 저항의 대상은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압박이나 조국의 현실
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이었다.`자화상' `참회록' `또 다른 고향' 등의 작
품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내적 투쟁의 기록을 역력히 읽을 수가 있다.

특히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학적이며 자기부정적인 이미지의 대표적 보기
를 들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앞서 말했듯 `부끄러움'이란 시어가 나오는 작
품이 10편이나 되는데,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시인들이 표피적 정서나
표피적 이데올로기(또는 사상)만을 좇는 경향과 비교해 보면 가히 파격적이
리만큼 독특한 문학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무언가를 `부르짖거나' `가르치거나' `과장적으로 흐느끼는'
대신 스스로를 `발가벗기고' 있는 것이다.물론 윤동주의 `발가벗기'는 다분
히 실존적 현학의 냄새나 종교적 형이상성의 냄새를 풍기는 발가벗기이다.그
래서 좀더 자신의 심층아래로 내려가 본능적 욕구를 발가벗기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은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그는 `퓨리터니즘'이라는 옷을 태어날 때부터 두텁게 입을 수밖
에 없었고 또 그 당시 지식인들의 정신적 정황이 본능보다는 관념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윤동주는 `발가벗기'정도만 가지고서도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문학은 이광수류의 계몽적 시혜주의에서 한발자욱
도 못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윤동주 시의 또 다른 장점은 그가 어느 계파나
유행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독자적 시세계를 구축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1930년대라면 대부분의 시들이 정지용류의 감각적 서정주의나 카프식의 정치
적 이데올로기시,둘중 하나일 때였다.

또 자연을 노래한다고 해도 전원주의적 회고주의가 고작이었고 윤동주처럼
자연을 내적 갈등의 상징으로 응용한 시인은 없었다.남들이 모더니즘이니 초
현실주의니 하고 외국의 유행사조에 민감해 있을 때 그는 다만 일기를 써나
가는 형식이나 경향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심경을 담담히 고백해 나갔던
것이다.

나는 문학은 문학일 뿐 그것이 문학이상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
지 않는다.여기서 말하는 `엄청난 힘'이란 문학이 혁명가나 사제의 역할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문학은 문학 나름대로의 `힘'을 어찌됐든 가지고
있다.

그 힘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요,정신중에서도 이성에 속하
는 것이 아니라 감성이나 감각 또는 본능에 속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문학은
정치나 이데올로기처럼 단기간에 효력을 나타낼 수는 없다.문학의 효력은 서
서히 나타나 인간의 의식자체를 변모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이란 이성과 감성,본능과 도덕이 합쳐서 이룩되는,보
다 통체적인직각의 양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윤동주는 옥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절대로 `총각귀신'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상하게도 `투사'보다는 `유약하지만 솔직한 사람'을 한시
대의 상징적 희생물로 만드는 일이 많다.윤동주는 바로 그러한 역사의 희생
물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일제말 암흑기,우리 문학의 공백
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연히 채워주었다. <마광수교수(연세대 국어국문학)>


* 자화상(다시읽는 한국시) - 조선일보(이어령)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노래한 작품은 옛날부터 있어왔다. 냇물에
비친 자기모습에 반해서 열렬히 사랑을 했다는 나르시스(수선화)의 희랍
신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신라의 향가에도 구리거울에 비친 제모습을 죽
은 자기 짝인줄로만 알고 부리로 쪼며 그리워하다 죽었다는 [앵무가]가
있었다고 전한다.

윤동주의 [자화상] 역시 그와같은 경상모티브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우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나르시스신화나 [앵무
가]의 경우 처럼 완전히 남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 [자
화상]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으면서도 우물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나]가
아니라 [한 사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영상을 하
나의 실체로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 같다. 윤동주는 마치 그[사나이]가
우물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
습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윤동주의 [자화상]은 나르시스의 얼굴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우리 앞에 나타나있다. 바슐라르는 [물과 몽상]에서 나르시스의 신화를
낳은 그 물의 물질적 이미지를 [밝은 물, 봄의 물과 흐르는 물, 나르시
시즘의 객관적 조건, 사랑하는 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거
울속에 익사한 사람까지 많았다]라는 세르나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사람의 얼굴을 반영하는 물과 거울을 같은 이미지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
이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자화상]의 물질적 이미지는 바슐라르
가 제시한 그것들과는 정반대이다. [밝은 물]은 [어두운 물]로, [봄의
물]은 [가을의 물]로, 그리고 [흐르는 물]이라고 한 것은 [고여있는 물]
로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르시시즘의 객관적 조건]은 오히려
[주관적 행동]으로 현시되고, [사랑의 물]은 [미움의 물]로 설정된다.

그러한 차이는 윤동주의 [자화상]이 나르시스와 같은 [시냇물]이 아
니라(혹은 거울이 아니라) [우물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말을 바꾸
면 윤동주의 [자화상] 읽기에서 가장 중심적인 코드를 이루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우물]이라는 이야기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
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
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9월).

소설같으면 발단부라고 할 수 있는 [자화상]의 첫행은 [산모퉁이를
돌아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로 시작된다.
자신의 모습을 비쳐주는 우물물의 물질적 이미지는 얼음이 막 풀린 봄의
냇물가에 피어나는 수선화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우물물속에 갇힌 영상은 오히려 짝잃은 앵무새의 새장속에 넣어 준 구리
거울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기의 우물물은 임의로 움직일 수 있
는 그런 거울과도 다른다. 왜냐하면 윤동주가 설정한 우물물은 보통 우
물물로 환원할 수 없는 고정된 장소의 의미를 지니고있기 때문이다.

그 우물은 들판과 산의 경계영역인 [산모퉁이]를 [돌아서] 가야만하
는 곳에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상적 삶의 장소인 마을이나
도시에 있는 우물이 아니라 논가 [외딴] 곳의 고립영역에 있는 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찾아가서] [들여다]보려는 의지와 행동이 없으면
그우물도, 우물속의 [나]의 모습과도 만나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물물은 흐르는 시냇물과는 대조적이다. 그것은 한곳에 고여있으며,
무거움과 어두움을 간직한 물이다. 단절과 비연속적인 이 물을 더욱 차
별화하고 강화하고 있는 것이 산모퉁이라는 경계영역이며, 논가의 외딴
곳이라는 고립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우물은 경계와 소외(고립)의 공간만이 아니라 지하에 있으
면서도 천상계에 속해있는 역설의 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거울
은 좌우가 뒤바뀐 경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비해서 우물은 상하가
뒤바뀐 가상공간을 보여주고 있기 떠문이다.

[자화상]의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
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다. 달 구름 바람 그리고 가을은 모두 하늘
에 속해 있는 것으로 수직 상방향에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우물은 수직
하방향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 깊은 바닥에 비쳐있는 영상은 수직 상방
향에 있는하늘인 것이다.

높은 것일수록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우물물은 동시에 밝은 것
을 어둠에 의해서 보여주는 의미론적 역설도 함께 지니고 있다. 왜냐하
면 우물속에 비친 하늘은 밤하늘이며, 그 계절 역시 가을로 되어 있다.
태양이 있는 대낮의 봄하늘과는 상반된다. 시냇물은 공자도 탄식했던 것
처럼 주야로 쉬지 않고 흘러 사라진다. 그러나 그러한 유동적인 물을 한
곳에 가두어 고이도록 한 것이 우물물이다. 그것처럼 윤동주의 우물속에
비치는 달 구름 바람 역시도 그 의미의 공통적인 요소는 다같이 물처럼
흐르는 것이지만 한공간의 프레임안에 유폐되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런 우물속에 비쳐 있는 [사나이]로서 발견되는 [나]란 대체 무엇인
가.

우리는 그 우물물의 물질적 이미지를 통해서 쉽게 그 코드를 해독할
수 있게 된다. 우물처럼 심층적 의식속에 가라앉아 있는 나, 그리고 시
간이 정지된 원초적인 어둠의 공간인 하늘을 바닥으로 디디고 있는 나…
그것은 모태속에 있는 나, 어둡고 무거운 생명의 양수속에 빠져 있던 나
의 영상에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경계적-고립적-심층적 공간인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한 사나이]…모
태의 우물물인 그 양수속에서 살고 있는 원인간으로서의 그 [나]는 누구
인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나인가.

우리가 흔히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라캉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
자면 상징계에 속해 있는 [나]인 것이다. 상징계속의 나란 바로 언어로
인식되는 나,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제도나 법규-규범, 그리고
외부에서 작용하는 온갖 기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인 것이다.

그러한 나는 [어머니의 몸]의 일부로서 모태속에 있었던 현실계의 나
와는 아주 딴판인 나인 것이다. 그러나 상징계속에 있는 우리는 언어 이
전의 그 현실계속의 나와는 만날 수가 없다. 이 현실계와 상징계사이에
존재하는 나가 바로 우물물속의 사나이로 드러나고 있는 경상속의 나인
것이다.

라캉의 이론을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것보다 시의 텍스트속의 두 [나]
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면 그 관계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나는 우물을 찾아가 의식적으로 들여다본다. 그 행위는 바로 모태속의
나와 만나서 그것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행위와 의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나는 우물속을 들여다보기를 그만두고 떠나버린다. 왜냐하면 반나르시스
행위로서 나는 그 사나이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볼때에는 미움이연민(가엾음)으로 바뀌고, 다시
떠나면 그리움으로 변한다. 이러한 미움과 사랑의 앰비밸런스(양가성-양
가성)로서의 [나](자신의 원모습)는 결국 추억의 나, 부재하는 나로서
정착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체가 아닌 [그림자]로서의 나인 것이다.
일상적인 나와 원초적인 나와의 끝없는 갈등, 그러면서도 그것과 결합하
려는 나르시스와 반나르시스의 드라마가 윤동주의 시를 탄생시키는 자화
상인 것이다. <이어령교수>.


* 서시(다시읽는 한국시) - 조선일보(이어령)

개화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성조기를 화기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
별모양을 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의 성좌도를 보아도
알수 있듯이 원래 한국의 별은 단추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제는 아이들이 먹는 별사탕에서 장군들의 계급장에 이르기까지 그 별표
모양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해졌지만 그것이 인체를 도안화한 것이라
는 사실은 아직도 생소한 것같다. 펜터그램(☆표)은 위로 솟은 머리와
수평으로 올린 두 손, 그리고 양쪽으로 벌린 두 다리의 모습을 표시한
것으로 인체와 천체를 동일시하고자한 인간의 비원을 담고 있다. 그러
고 보면 별표밑에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앙이나 [별하나 나
하나]라고 노래한 우리 민요의 정서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윤동주의 별(시)읽기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틀은 기독교적
사상이 아니면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이었지만, 실제로 그 [서시]나 [별
헤는 밤]에 나타난 것들은 그보다 훨씬 고태형을 지닌 별이다. [서시]
가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의 인유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고전을 들출 것도 없이 그것은 한국
인이라면 누구나 무엇을 다짐하거나 자신의 결백성을 주장할 때 곧잘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하늘은 특정한 종교성보다는 소박한 민간신
앙의 경천사상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신보다도 하늘-땅으로
대응해온 신화적 공간의 무대에 가까운 그 하늘인 것이다.

그러므로 1-2행의 하늘 다음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의 3-4행이 짝을 이룬다. 하늘은 땅, [우러러]보다는 [굽어보다]
로 그 공간을 교체하면 잎새에 이는 바람이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하
늘을 우러를 때의 그 무구한 마음([부끄러움이 없기를])이 땅을 향할
때에는 그 잎새에 이는 바람을 보고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땅에서 하늘로 공간을 바꾸면 그 잎새는 별이 되고 그
괴로움 역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반전된다. 이렇게 하늘-땅으로 교
체되는 윤동주의 시선과 마음은 마치 정교한 대위법으로 구성된 음악처
럼 [하늘의 별]과 [땅의 잎새]를 완벽하게 연주해 낸다. 그래서 [하늘]
은 [별]로 응축되고, [잎새]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로 대치되면서 [별
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5-6행)라는
새로운 하늘-땅의 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괴로워했다]가 [사랑해야지]로 바뀐다. [잎새]
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동격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감정은 부
정에서 긍정으로 역전되어 있는 것이다. 괴로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드
라마는 지금까지 하늘과 땅, 별과 잎새의 대립항을 이룬 병렬구조를 통
사축의 사슬관계로 눈을 돌리게 한다. 즉 지금까지 관계없이 보였던
①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다] ②풀잎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
③별을 [노래하다] ④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다]가 일련의 계기
성을 지닌 사슬구조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시]의 공간구조가 하늘, 땅, 바람의 삼원구조로 되어 있
듯이 그 시간구조 역시 과거 (1-4행 [괴로워 했다]), 미래(4-8행 사랑
해야지, 걸어가야 겠다), 그리고 현재(9행, [스치운다])로 삼등분된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7-8행)는 직설적인 산문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길]은 바로
[서시]의 병렬구조와 통사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항으로 공간(하
늘-땅)과 시간(어제-내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은 공간에 속해 있지만 화살표와같이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
에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시간성을 표시하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할 때는 과거의 시간을 나타내지만 [걸어가야겠다]라고 할
때의 그 길은 [사랑해야지]와 마찬가지로 의지와 행동을 내포하고 있는
미래의 시간으로 출현한다. 그 길을 공간성으로 볼 때에는 땅(잎새)에
서 하늘(별)로 오르는 언덕길같은 것이 될 것이며 시간성으로 볼 때에
는 과거(괴로움)에서 미래(사랑해야지)로 향하는 그 도상의 현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서시는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맺고 있다.
일행으로 단독 연을 이루고 있는 이 시행은 본문으로부터 외롭게 떨어
져 나가 앉은 섬처럼 보인다. 앞의 시들이 과거나 미래형으로 되어 있
는데 비해서 이 마지막 연만이 [스치운다]로 현재형이다. 그냥 현재가
아니라 [오늘밤에도]라는 [도]의 조사가 의미하듯이 그것은 끝없이 반
복하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은 밤과 바람,
그리고 별이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밑]음으로 시작되어 있는 이 세가
지 단어들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어둠과 빛은 대립된 개념이지만 별빛은 밤의 어둠없이는 빛날 수 없
는 것이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밀착되어 있
다. 그리고 별빛과 결합된 어둠은 부정축에서 긍정축으로 그 의미의
화학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바람 역시 그렇다. 땅의 잎새와 하늘의 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서 서로 접촉할 수가 없지만, 그 단절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그 바람이
다. 풀잎에 이는 바람은 저 무한한 높이의 별들을 스치는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일다]와 [스치다]라는 한국말이 이렇게도 절묘하게 어울린
예를 우리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밤을 통해서 별을 만나듯 바람을 통
해서 풀잎은 별과 만난다. 하늘과 땅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바람은
[길]과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소멸의 잎새와 불멸의 별 사
이의 바람부는 공간,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오늘]이라는 그 도상
성이다. 하지만 괴로워하다가 노래하다로, 노래하다가 사랑하다로, 그
리고 사랑하다가 걷다(실천하다)로 바뀌어가는 행동은 별과의 스침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별은 바람과 밤의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들려
주는 낮은 음자리표이며 지상적인 언어의 네가를 반전시키는 감도높은
인화지인 것이다.

만약 윤동주의 별을 일제에 대한 저항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어떻
게 될것인가. [잎새]는 일제 식민지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국민족이
될것이고, 바람과 그 밤은 일제의 압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별은
광복의 별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민족
애로 축소되고 만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 역시끝까
지 투쟁하겠다는 맹세로 들린다.

반대로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보면 잎새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원죄를 지은 모털(Mortal)로서의 인간이 되고 그 안에는 일제 관헌들까
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사랑해야지]라는 말은 기독교의 박애정신과
직결되고 그길 역시 신앙의 길이 된다. 그 결과로 종교와 정치는 양립
할수 없는 두 개의 별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 어느 시각으로 보아도
우리가 [서시]에서 읽는 그 별이야기와는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 그러
나 인체의 모양이 그대로 빛나는 천체(별)의 모양과 하나가 되는 펜터
그램의 그 도형처럼 작은 잎새들이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빛나는 신화
의 마당에서는 그런 모순들이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그 [서시]는 정치
론이나 종교론이 아니라 고통에서 사랑을, 그리고 어둠에서 빛을 탄생
시키는 희한한 시의 마술…[별을 노래하는마음]의 시론이 되는 것이다.
<이어령·이화여대 명예교수>


* 윤동주의 생애와 시 - 임헌영(문학평론가)

1
윤동주가 시를 썼던 시대인 1936~43년은 온 인류가 시를 외면한 시대였다.그가
릴케와 프랑시스 잠을 노래했을 때는 포연이 장미의 향기를 쫓고 나귀 등에다
탄환을 운반하던 때였다. 그가 즐겨 바라보던 하늘과 바람과 별의 허공엔 공습
경보가 요란하게 울리던 시절이었다.

인간의 역사 중 사람의 생명이 가장 값싸게 거래되었던 시대였고, 자유, 평등,
박애가 군국주의의 넝마주이 집게에 집혀서 오물 처리장으로 실려가던 때였다.
철학자에게는 복종의 철학이 강요되고, 음악인에겐 군가 작곡이 명령되며,시인
에게는 원고지와 펜으로 탄환을 만들 것을 강요하던 시대였다.

이 시대엔 고향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성립되었고,친한 벗들
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까지도 감시를 받았다.하물며 창씨 개명도 하지 않은
'순이'에 대한 추억이나 '흰 옷'과 '살구나무'와 '희망의 봄'이야 영락없는 불
온이었다.

1940년 전후 - 지구는 군가와 화약냄새로 가득 차서 모든 약소 민족은 겟슬러
총독 아래서의 윌리엄 텔처럼 두 개의 화살을 가지고 사과를 겨누고 있었다.
1876년 이후 유럽열강과 미국은 매년 24만 평방마일의 땅을 얻어왔다. 그 결과
1914년에 이르자 지구상엔 거의 모든 약소 민족이 어느 강대국의 한 식민지로
변하고 말았으며, 이것은 194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의 문학은
본의든 아니든 식민 종주국의 이익을 옹호하던가 아니면 민족독립운동을 돕던
가 둘 중 하나에 봉사하게 된다는 양자 택일의 갈림길에 서야만했다.

한국 문학사는 이 시대를 '암흑기'로 말한다. 시와 소설의 발행고가 가장 낮은
시대였을 뿐만 아니라 그 질적인 면에서도 예술적 여과를 거치지 못했으며, 더
욱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도 식민 종주국의 이익에 보탬을 준 것이 많아서,암흑
기란 시대적 명칭은 자연스럽게 사용되어 왔다.

시인 윤동주는 바로 이런 암흑기의 몇몇 유성 중 뛰어난 시인의 하나이다. 이
시대에 우리는 어학자 이윤재와 시인 이육사 그리고 윤동주를 함흥과 북경과
후쿠오카의 옥중에서 잃었다.

고문, 영양실조, 동상 그리고 정신적 고뇌 등으로 일관된 하루하루의 옥중생활
을 윤동주도 1943년7월, 체포이후 1945년 2월16일, 죽는 날까지 반복했을 것이
다.이 시인의 동생 윤일주의 기록에 따르면 1944년 6월 이후 월 1매의 엽서 쓰
기가 허락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때가 형이 확정된 때로, 그 이전엔 모든 외
부와의 연락이나 독서가 금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후 주사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 내용물은 아직도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으며,
최후의 순간에 큰 소리를 치며 죽었다는 간수의 증언도 그 내용은 알 수가 없
다.이 모국어의 순수 시인이 우리말로 고함 지르고 죽은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
만 왜 간수에게 일어로 한마디를 남기지 않았을까!

2
흔히들 시인 윤동주를 저항의 시인이라 부른다. 원래 저항이란 순수 예술의 한
속성이 된다. 일반적으로 저항의 예술과 순수예술을 이원론적으로 분리시키는
경향이 최근 우리 문단을 지배하고 있는데,예술이란 그 순수성 자체가 가장 강
력한 저항을 나타낸 것임을 수긍해야 될 것이다.

예술적 창조란 말할 필요도 없이 개성의 표현이다. 이 '개성'이란 곧 타아와의
조화와 갈등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이는 바로 모든 '자기 개성'의 반대자에 대
한 조화를 위한 저항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순수 예술의 본질이 된다.

따라서 저항은 고대 원시예술의 시발점부터 순수예술이 지닌 한 속성이 되어
왔다.즉 자연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 동굴의 벽화로부터 종교에 대한 저항을 표
현한 르네상스시대,이어 권력과 사회에 대한 근대화예술과 비인간화해 가는 과
학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현대예술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우리는 본
다. 이런 세계사적 보편성으로서의 저항의 문학이 1940년대 암흑기의 한국에서
도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윤동주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위에서
본 저항문학의 주제에 의한 분류와는 달리 이는 문학인의 기능이나 대사회적
자세로 나누어보면 다음 세 가지의 형태를 보게 된다.

첫째는 문학인 자신이 단체나 결사 등에 직접 가담하는 경우로,이때 그 문학인
의 작품은 오히려 매우 서정적일 수도 있다.

둘째는 일시적인 의무나 지원 세력으로 어떤 단체나 운동에 뛰어든 경우가있다.

마지막 셋째는 직접운동권에 가담하거나 지원하지는 않으면서도 순수한 문학작
품으로 정서적인 저항을 시도하는 예가 있다.

이런 세 가지 형태의 저항적 자세는 세계 문학사에서 얼마든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우리의 짧은 문학사에서도 첫 번째에 해당하는 예로는 이육사를 들 수
있는데,그는 지하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서정적인 작품을 남긴 좋
은 본보기가 된다. 두 번째 경우는 이상화, 한용운이 항일운동에 참여한 것을
들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윤동주나 김소월 같은 시인으로, 자칫하면
이런 시인에 대한 저항의지를 묵과해 버릴 수도 있을 만큼 그 작품은 깊은 서
정과 민족 정서에 뿌리를 박고 있다.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윤동주에게 왜 윤봉
길이나 안중근처럼 되지 못하고, 아니 하다 못해 이육사처럼 비밀 결사에라도
참여하지 못했느냐는 추궁은 할 수 없으며,이런 시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재음
미, 평가하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옥사 그 자체가 윤동주의 시문학 전체를 대변해 주는 것이 되기 때문
이다. 그의 순수한 시가 곧 역사적 저항의지의 표현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
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인류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짜르 치하에서 가장
찬란했던 문학이 창조되었듯이,1940년대의 혹독한 식민 통치 아래서 우리의 순
수 저항시는 태어났던 것이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저항의 시는 진정한 영혼의 고통을 겪는 사람
만이 아는 순수한 고뇌의 절규가 스며 있으며, 그 끝간데 모를 고뇌의 깊이 속
에 '순수 저항시'의 참된 가치가 스며있다. 이런 시는 누구를 선동하지는 않으
나 감동을 주며, 울리지는 않으나 가슴을 찌르며,취하지는 않으나각성제가된다.

윤동주의 저항시도 바로 이런 각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그것은 인간이 원하는
삶의 최소공약수를 빼앗긴 시대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혁명이니,
평등이니,자유니 하는 어마어마한 이상들은 내일의 시인에게 남겨 두고서 그는
오직 하나의 평범한 약소 민족의 생활인으로서 열심히 살고자 했을 뿐이었다.

이 평범한 꿈-"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별과
어머니와 소녀와 서정 시인을 그리며 살고자 하는 꿈이 허락되지 않았을 때 그
는 하는 수 없이 저항시인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윤동주의 이런 순수한 약소 민족의 서정적인 삶의 추구 자세는 어디서 비
롯된 것일까. 가장 쉬운 해답을 우리는 멀리 북간도에서 찾을 수 있다. 1886년,
증조부 때부터 북간도로 이주해 간 윤동주는 짧은 생애 중 모국이라고는 학창
시절 4~5년 정도밖에 있어 보지 못한 영원한 방랑자 였다.

"새봄이 다 가도록/기별조차 없는 님/가을밤 응신까지/또 어찌 참을래요/ 두만
강 눈 얼음은/다 풀리어 간다는데/새봄은 아니오라/열 세 봄 넘어와도/ 못참을
나랴마는/가신 님 날 잊을까/강남의 연자들은/제집 찾아 다 왔는데"
(간도 이민 민요 '기다림')

기온의 차이가 극심한 대륙, 근대 이후 배일 사상의 온상지였던 땅, 일본력이
아닌 단군기원을 공공연히 사용하며 헌옷을 입고 추위에 동포들이 떨며 청국인
지주와 일본 군인들에게 이중으로 혹사당하던 원한과 설움과 서정과 꿈과 웅지
의 옛 땅 -- '총독부 문서 1912년 청국 국경 부근 관계 사건철'에는 간도로의
조선인 이주 원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즉 토지가 비옥해서 생활난을 타개
하기 위하여 가는 것, 항일 및 망명 이주, 기독교 연구 전파 등등.

할아버지 때부터 기독교를 믿었다고 전하는 윤동주는 이런 독특한 환경 속에서
민족 고유의 순수한 정서를 그리워하면서 자랐을 것이며, 특히 문학 청년 시절
에 백석의 '사슴'을 통하여 한민족의 서정을 익혔기 때문에 나중 일본에 가서
도 민족 정서를 잊을 수 없었으리라.


3
이처럼 행동적 저항보다 순수한 민족 정서로서의 저항시인인 윤동주는 시를 통
하여 1) 조국만가와 조국 부재의식, 2) 민족적 피해의식 3) 민족적 저항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이 세 가지는 다 민족적인 정서의 순수
저항으로, 독립이나 조국에 대한 열망에까지 확대 해석된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바람이 부는데/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바람이 불어)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별헤는 밤에)

위의 인용에서처럼 시인 윤동주는 '시대를 슬퍼한 일도'없고 '아무 걱정도 없
이' 가을 하늘의 별을 헤일 수 있는 약소 민족의 이방인의 한 민감한 청년으로
살았다. 따라서 그의 시를 너무 도식적으로 해석하여 '흰 옷'은 민족의 저항을
'봄'은 해방을 상징한다는 식의 풀이는 버려야 할 것이다. 이런 단견적인 비평
은 자칫하면 우리의 민족이 지닌 보다 근원적인 정서의 저항성을 속류화 시킬
소지가 없지 않다. 따라서 윤동주가 지닌 시 세계에서의 저항의식은 대충 다음
과 같은 내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북간도 이주민의 윤택하지 못한 생활 정서를 노래함으로써 우리 민족 정
서의 한 영역을 확보해 주었다.시계도 없는데 애기가 울어서 새벽을 안다는'애
기의 새벽'이나, 장에 가는 엄마를 내다보려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을 쏘옥
쏘옥 뚫는 '햇빛.바람'등은 평범하면서도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소년적 정
서를 잘 전해주고 있다. 또 프랑시스 잠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당나귀와 시골 풍
경의 차분한 묘사는 북간도의 추위를 녹여주는 가작들이다.

특히 이와 같은 생활적인 서정시 속에서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될 점은 궁극적
으로는 허무주의가 아닌,생에 대한 애정과 긍정적 자세가 스며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소년적인 정서의 탈을 벗고 보다 민족적 정서의 원천적인 시로서의 저항
의 세계로 돌입하는 모습이 다음에 나타난다.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무서운 시간)

이런 자괴와 겸허속에서 이 시인은 민족의 슬픔을 깊숙이 맛보며 현실과의 대
결에서도 항상 자성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쉽게 씌어진 시)라고 하면
서도,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자세로 '나팔소리 들려올 '새벽과 '모가
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 흘릴 날
을 기다리면서 지조 높은 개가 어둠을 짖는 소리를 들으며 짧은 생을 끝냈다.

이처럼 동주의 시는 간도로 간 조선인의 정서와 식민지 조선인의 서정을 노래
한 것으로, 그 저항의식을 나타냈다. 그의 저항시가 가진 특징 중 우리가 지적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기독교와 관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크게 노출시키
지 않았다는 점과 복고주의적인 정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기독교는 물
론 우리나라 민족의 저항세력에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 민족적 전통
의 정서와 많은 갈등을 겪어왔는데, 윤동주는 이를 극복하여 종교보다 민족적
정서를 우위에 둔 훌륭한 시인이었다. 또 복고주의 역시 간도로 이민간 사람들
속엔 상당히 간직되었고 당시의 군국주의적 식민지 치하에서도 공공연히 자행
되었건만, 이를 극복하며 새 시대의 민족적 정서를 노래해 주었다.그러기에 윤
동주의 시가 오늘의 독자에게도 신선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4
그렇다면 윤동주의 시와 그의 저항은 우리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에 서게 될까.
위에서 본 것처럼 그는 저항의 자세 중 순수한 서정적 작품으로 저항을 시도한
이른바 예술적 저항의 시인으로서 한 표본을 이룬다. 이런 계열에 속하는 다른
시인으로는 김소월을 들 수 있는데, 윤동주는 소월에 비하면 보다 진한 저항의
체취가 묻어 나온다. 다만 민족적 공동운명체로서의 정서는 소월이 단연 으뜸
이며, 이 점에서는 동주는 그에 뒤진다.

원래 예술에서의 저항이란 가장 전염력이 강하려면 서정성을 지녀야 되는 것이
다. 흔히들 전투적 선동성을 저항문학의 제일로 삼는 예가 있으나,대중적 내지
민중적 저항의 유발엔 짙은 서정이 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코자크 부대가
폴란드를 침략했을 때 쇼팽의 피아노를 박살내어 땔감으로 쓴 것은 가냘픈 그
의 음악이, 그 환상적이고 아름다우며, 서정적인 선율이 어느 독립군가보다도,
폴란드 인에게 애국심을 강력히 호소했기 때문이다.

윤동주가 오늘의 독자에게 깊은 감동과 호소력을 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의
서정성에 있다는 사실은 오늘의 민중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 설정에 많은 암시
를 준다고 하겠다.
 

 
* 윤동주

1917년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출생. 아명은 해환.
1929년 송몽규 등 급우와 함께 "새명동"이란 신문형식의 등사판 문예지를 만들어 동요, 동시 등 발표함. 35년 봄,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입학, 기숙사에 기거하며 독서와 시작에 몰두함. 36년 봄, 숭실중학이 신사참배 거부사건으로 폐교되자 용정의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전입학. 북간도 연길에서 발행하던 "카톨릭소년"지에 용주라는 필명으로 '병아리', '빗자루'등 동요, 동시 발표. 37년 같은 곳에 '오줌싸개지도', '무얼 먹고 사나','거짓부리' 발표. 38년 2월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39년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 학생란에, 동요 '산울림'을 소년지에 발표. 41년 연희 전문학교 문과 발행인 "문우"지에 '자화상','새로운 길' 발표. 12월에 연희 전문학교 문과 졸업. 19편으로 된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졸업기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42년 일본 동경 입교대학 영문과 입학. 가을에 경도 동지사대학영문과에 편입학. 입교대학 시절의 시 5편이 마지막 작품이 됨. 43년 7월, 귀국하기 직전에 경도 제국대학에 재학중이던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의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가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됨. 44년 6월, 경도 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의 죄명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송몽규와 함께 구주 복강 형무소에 투옥됨. 45년 2월16일, 위의 형무소에서 옥사함. 3월초에 고향 용정의 동산에 묻힘. 46년 가을, 유작 '쉽게씌어진 시'가 경향 신문에 발표됨. 47년 2월 16일, 서울 플로워회관에서 추도회 열림. 48년 1월,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31편 수록)가 정음사에서 간행됨. 55년 2월,10주기 기념으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간행함. 68년 11월, 연세 대학교에 동생인 윤일주씨의 설계로 '윤동주 시비' 세워짐.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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