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 ⑪ 카사블랑카 친구가 알려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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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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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찬스’ 덕분에 알게 된 모로코의 환대 문화
모로코의 환대 문화를 경험하게 해 준 현지인 친구 바디아(가운데)·하리마(오른쪽)의 안내로 카사블랑카 최대 명소 하산 2세 모스크를 찾았다.

인류학자 김현경이 쓴 책 〈사람, 장소, 환대〉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적절한 자리(장소)가 주어져야 하고, 타인의 인정(환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 개념은 이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소설가 김영하는 환대의 순환을 경험하기 좋은 예로 여행을 들었다. 돌이켜 보건대, 환대받은 경험은 여행에 대한 기억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아프리카 서북부 모로코 여행 계획을 짤 때 처음부터 카사블랑카가 들어있진 않았다. 영화 ‘카사블랑카’(1942년)에 쏟아진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될 영화’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도시 매력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카사블랑카에 굳이 가기로 한 건 바디아라는 ‘친구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지인 찬스’만큼 여행을 깊이 있게 만드는 것도 없다고 믿고 있다.

친구의 친구인데도 바디아는 회사 휴가까지 내고 찾아왔다. 하지만 문화 차이서 비롯된 혼선이 있었다. 나는 호텔 로비에서, 바디아는 호텔 바깥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호텔서 만나자”고 한 약속을 각자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아랍 국가인 모로코에선 여성들의 호텔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바디아와 함께 온 하리마의 차를 타고 카사블랑카 곳곳을 구경했다. 하산 2세 모스크를 비롯해 모하메드 5세 광장, 카사블랑카 등대, 구도심 메디나의 수크(시장) 등등.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점심 값이라도 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바디아가 정색을 했다. 자기가 내야 할 밥값을 왜 지불하냐면서. 당황스러웠다. 체면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저녁 식사 자리는 더욱 성대했다. 때마침 한 달간의 라마단 금식이 끝나고 맞이한 ‘이드 알 피트르’ 축제 기간이어서 모로코 사람들 대부분이 들떠 있기도 했지만 외국인 친구를 진심으로 대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모로코를 대표하는 요리 쿠스쿠스와 모로코식 찜기 요리 타진 외에도 라마단 기간에 먹는 전통 콩 수프 하리라와 대추야자, 슈바키아 빵을 주문했다. 음식 값은 당연히 바디아 몫이었다. 미안했지만 모로코에 왔으니까 모로코 법을 따르기로 했다.

그로부터 한참 뒤 〈카사블랑카에서의 일 년〉이란 책을 읽으면서 모로코의 환대 문화를 새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특히 모로코의 서로 돕는 시스템, 삶의 중심에 있는 가족, 그 가족의 중심은 음식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인식했다. 바디아가 정색을 하면서 화를 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환대를 중시하는 모로코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의 무심함이 그는 무척 속상했던 것이리다.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고 해야 하나? 카사블랑카 여행에 깊이를 더해준 바디아와 하리마에게 다시 감사를 전한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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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다시' 현장 취재기자로 돌아왔습니다. 문화부에서 음악 무용 국악 뮤지컬 등 무대 분야를 주로 취재하는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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