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획일화가 만든 이중인격, ‘파이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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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현대인은 야생의 본능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호모사피엔스인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유목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1만 년 전 농경이 시작돼 정착하면서부터 새로운 환경에 대한 ‘탐색’보다는 기존 환경에 대한 ‘적응’이 중요해졌다. 그러면서 다양화가 아닌 획일화를 추구하게 됐다. 오랜 세월 유목 생활을 통해 초원을 달리고 사냥을 하던 능력은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지루한 일상은 인류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됐다.

1999년 개봉한 <파이트 클럽>은 공허한 삶에 대한 일탈을 꿈꾸던 세기말적인 시대정신을 읽어냈다. 개봉 당시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으나, 비디오나 DVD 등 부가판권의 매출은 높았다. 감독인 데이빗 핀처도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무기력한 자동차 리콜 심사관 잭(에드워드 노튼)은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는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필요한 가구들로 집안을 채운다. 하지만 해갈은커녕 불면증만 더 깊어진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소비의 양상과 같다. 현대의 소비는 ‘내가 무엇을 원해서’가 아니라 ‘자본이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자극하면서 이뤄진다. 소비된 주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그저 그걸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따라서 끝이 없고, 욕구만 커진다.

잭은 일회용 치약과 설탕 등 일회용으로 가득 찬 일상에 염증을 느끼던 중 비행기가 폭발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현대문명을 환멸 하는 낯선 남자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을 만난다. 그의 말은 황당하지만 묘한 설득력이 있다. 잭은 타일러를 일회용 친분으로 여겼지만 그를 다시 찾게 된다. 가스 누출로 폭발해버린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망연자실하면서다. 집이 잿더미가 돼 오갈 데 없는 상황에서 타일러와 재회한다.

이후 타일러를 만나 폭력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 잭은 그의 말대로 본능이 이끄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집은 잭의 삶을 상징하는 지루함이다. 지루함을 철학적 용어로 풀이하면 ‘공허하게 방치된 것’이다. 쉽게 말해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좌절된 상황이다. 사건이란 어제와 오늘,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는 것이며, 사건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사건을 바라는 이는 자신에게 흥분을 가져다 줄 무엇인가를 고대한다.

잭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만든 ‘파이트 클럽’을 통해 불면증을 해소하고 안정감을 얻는다. 하지만 파이트 클럽은 회원들이 하나 둘씩 늘면서, 일종의 도심 테러 단체로 변한다. 지루한 삶의 탈출구였던 파이트 클럽은 군대처럼 변하고 회원들의 개성읃 무너져 획일화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체의 의미가 변질되자, 잭과 타일러의 갈등은 깊어진다.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둘의 갈등은 사실 동일인의 분열된 두 자아가 반복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게 밝혀진다.

잭과 타일러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이중인격의 존재다. 법학박사이자 의학박사인 지킬 박사는 낮에는 점잖고 학식 있는 지킬 박사로 살아가다가 밤이 되면 약물을 마시고 하이드로 변해 억압된 스트레스를 분출한다. 지킬 박사의 유서에는 “저항도 못하는 상대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한 대 한 대 칠 때마다 환희를 맛보았다”는 고백이 적혀 있다.

다중인격이 발생하는 원리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환자의 90% 이상이 어린 시절 심각한 학대와 폭력을 겪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주체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아를 바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잭은 지루한 일상의 반복과 획일화에서 오는 억압된 스트레스를 분출하기 위해 타일러를 만들어냈다.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파이트 클럽>이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강렬하다. 냉소한 소비자본주의는 기세가 더욱 커졌다. 잭은 가구 카탈로그를 보며 전화로 주문하지만,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다. 당시에는 다소 의아했던 반금융권 정서가 지금에 와서는 유효하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 영화가 액션, 드라마를 넘어선 스릴러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