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리뷰] 2. 한국 단편 경쟁작 1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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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바다 저 편에'. BIFF 제공


가장 젊은 영화인들의 고민 들여다보기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세계의 영화를 만나는 일 못지않게 한국영화, 그 가운데서도 독립단편영화를 살피는 건 영화제를 즐기는 하나의 방편이다. 한국영화의 다음 세대의 작업이자 지금 가장 젊은 영화인들이 어떤 고민 속에서 영화적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지, 그들의 시선과 감각의 촉수가 어디로 향해 있는가를 압축적으로 가늠해 볼 기회이기 때문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상영되는 14편의 한국 단편 경쟁작들을 짧게나마 살펴보자.

근래의 많은 한국독립단편은 집으로 대표되는 가족 공동체의 부재나 아이들을 책임지는 어른의 세계가 붕괴한 상황을 기계적인 선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복해 보여줘 왔다. 이러한 경향성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감지된다. 사진기를 훔친 소녀가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바다를 보러 가는 '바다 저 편에'가 전형적이다. 부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기댈 수 있던 유일한 어른과도 곧 작별하게 될 아이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남겨진다.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떠안은 10대 소녀가 결국 문제 그 자체를 유기해버리는 길을 택하는 '화성 가는 길'도 있다. 20대 주인공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눈물'은 경제적 가난이 연애 관계에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보여준다. 자식 세대는 윗세대의 공백 앞에서 어떤 식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가를 목격하게 하는 영화들도 있다. '민혁이 동생 승혁이'에는 부모의 이혼으로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가 있다.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던 한때가 지나간 뒤 덤덤히 각자의 길을 가는 삼 남매의 이야기다.

또 하나의 경향이라면 성 차이에 따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들이 경험하고 감각하는 두려움의 실체를 다룬 영화가 두드러진다는 데 있다. '캣데이 애프터눈'은 여성 혼자 사는 원룸이 공포와 혐오로 꽉 차기까지를, '스트레인저'는 정체불명 남성의 등장으로 어린 소녀가 느낄 공포심을 극대화한다. 각도를 조금 달리하면 여성들 간의 공통된 고민에 주목한 '분무기', '치킨 파이터즈'가 있고, '좁은 문'처럼 다른 세대의 여성들 교감을 미스터리 장르로 잇기도 한다.

경향으로 묶이기보다는 개성 어린 시도의 작품도 있다. 로드무비, 영화 만들기에 대한 메타 영화, 짐 자무시를 향한 오마주로 보이는 '위태로워야 했던 건 오직 우리 뿐',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블랙코미디 풍으로 상상한 '서식지', 달걀을 매개로 세태를 풍자한 '춘분', 늦은 나이에 임신한 부부가 주인공인 '다운'이다. 그렇다면 올해의 경향이 최근의 한국독립영화 전반의 정서와 문제의식에 기대되 그에 균열을 냈는가 묻는다면 물음표일 것이다. 영화적 시도 역시 색다른 실험으로 충만한가 하면 그 또한 확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지금의 많은 단편영화 작업자들이 관심 갖는 소재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감각을 발현하는가 만큼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인디다큐페스티벌 집행위원, 인디포럼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 영화 웹진 'REVERSE'에서 글을 쓴다. 공저로 <너와 극장에서>(2018), <아가씨 아카입>(2017), <독립영화 나의 스타>(2015)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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