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곳곳에서 활용되고 출판사별 판본 수집 등 인기
"전집 찾는 독자는 꾸준히 유입"
이공계 연구원인 정병준(28)씨는 1년째 세계문학을 읽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를 영화 '매트릭스'와 비교해보거나, 임상심리사와 함께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심리학 측면에서 분석한다. 정씨는 "책 편식이 심했는데 독서모임을 하고 고전의 매력을 알게 됐다"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1959년 을유문화사가 국내 최초로 세계문학전집(완역본)을 출간한 지 60년이 됐다. 1998년 출범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이어 문학동네·열린책들·펭귄클래식(웅진) 등 후발 주자들도 속속 시장에 뛰어들었다. 세계문학을 함께 읽는 독서모임이 곳곳에서 열리고, 출판사별로 다른 판본을 수집하거나 번역본들을 비교하며 읽는 적극적인 독자들이 늘었다.
출판사별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서로 다르다. 세계문학전집 시장의 선두 주자인 민음사에선 올해 각각 탄생 100주년과 출간 100주년을 맞이한 작가들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1위는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2위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불안한 청춘을 그린 두 소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데미안'은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의 모티브가 되면서 팬들이 판본별로 수집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3위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4위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문학동네에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가장 많이 팔렸다. 김경은 문학동네 편집자는 "톨스토이 권위자인 박형규 교수의 번역 덕분이기도 하고, 2017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하나의 책'으로 소개하면서 가장 사랑받는 장편소설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했다. 2위를 기록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역시 김영하 작가가 직접 번역해 주목을 받았다. 3위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대표작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였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은 SF나 추리물 등 장르소설도 전집에 포함하며 변화를 주고 있다. 추리소설 '비숍 살인사건'이나 셜록 홈스 시리즈인 '바스커빌가의 개'도 세계문학전집에 포함했다. 열린책들에서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책은 1위 '그리스인 조르바', 2위 '죄와 벌', 3위 '장미의 이름'이었다. 1970년대에 중단됐다가 2008년부터 새로 선보인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에선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루쉰 소설 33편을 엮은 '루쉰 소설 전집',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 순으로 많이 팔렸다.
출판 시장의 불황에도 고전은 모습을 달리하며 살아남는다. 민음사는 지난해부터 '세계문학 북클럽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독서모임을 지원하기 위해 모임 리더들을 교육하는 워크숍이다. 문학동네는 노문학자 이현우가 해설하는 '전쟁과 평화''닥터 지바고' 등 러시아 문학 강연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민음사 허주미 차장은 "독서 인구수가 적어지고 구매력이 과거에 비해 낮아지고 있긴 하지만, 세계문학전집 독자층은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다"면서 "마케팅도 북클럽부터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특별 한정판이나 합본판 등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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