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曰] 이임생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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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축구단, 4부리그 팀에 고전
씀씀이 줄인 여파, 감독이 떠안아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중앙콘텐트랩
이임생은 ‘붕대 투혼’의 사나이다. 1998 프랑스월드컵 수비수 이임생은 벨기에 선수와 부딪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붕대로 이마를 싸매고 나머지 시간을 버텼다. 강인한 이미지가 부각됐지만 실제로 이임생은 부드럽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태풍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친 지난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프로축구 수원 삼성과 K3(4부리그) 소속 화성 FC가 FA컵 준결승 2차전을 벌였다. FA컵은 축구협회에 등록된 프로·아마추어 강자들이 모두 출전해 왕중왕을 가리는 대회다. 준결승 1차전에서 화성이 1-0으로 이겼다. 2차전에서 수원이 비기거나 지면 4부리그 팀에 밀려 탈락하는 상황이었다.

연장 끝에 염기훈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수원이 3-0으로 이겼다. ‘80억원 대 2억원의 대결’ 승자는 80억원이었다. 수원 선수들의 연봉 총액은 80억원이고, 화성 선수들은 연봉 없이 출전 수당을 받는다. 그 돈을 모두 합치면 1년에 2억원이다.

경기 뒤 인터뷰실에 김학철 화성 감독이 들어왔다. “좋은 꿈을 꾼 것 같다. 저희가 여기까지 온 걸 보고 다른 이들도 꿈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한 김 감독을 향해 기자들이 박수를 쳤다.

이어서 이임생 수원 감독이 들어왔다. 눈자위가 벌게져 있었다. 많이 운 듯했다. 그는 준결승 1차전 패배 뒤 분노한 팬들을 향해 “FA컵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옷을 벗겠다”고 약속했다. 이 감독은 “이번 경기가 스스로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뛰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자리를 걸고 팀을 위기에서 일단 건졌다. 하지만 수원 삼성이 4부리그 팀을 ‘당연히’ 이길 정도의 전력은 아니다. 수원 구단은 매년 선수단 운영 예산을 줄여 왔다. ‘스타’가 빠져나간 자리를 ‘준척’들이 메웠다. 현재 수원 소속 국가대표는 1명(홍철)이고, 23세 이하 대표팀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올 시즌 K리그에서는 상위 스플릿(1∼6위)에도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 8월에는 구단의 인색한 지원에 불만이 폭발한 서정원 감독이 자진사퇴했다.

축구·야구를 비롯한 삼성 스포츠단 운영 주체는 2014년을 시작으로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넘어갔다. 제일기획은 ‘스포츠단 효율화와 자생력 강화’를 내세웠다. 구단 씀씀이를 줄였고,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2011∼14년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 삼성 라이온즈의 2016년부터 성적은 9-9-6-8위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스포츠에 돈을 많이 쓰고도 ‘삼성이 다 해먹는다’는 욕을 먹었다. 그런 일을 계속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 야구단 출신 한 인사는 “그동안 구단 운영이 방만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축구단은 운영비를 줄였지만 유소년 육성 예산은 줄이지 않았다. 전세진·오현규·이종성 등 구단 유소년 출신 ‘영 건’들이 주전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시아의 챔피언”을 노래하던 수원 팬들의 인내심도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

수원의 FA컵 결승 상대는 내셔널리그 대전 코레일이다. 세미프로 형식으로 운영되던 내셔널리그는 내년부터 대한축구협회(KFA) 리그 시스템에 편입돼 ‘KFA 3부리그’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한다. 1943년 창단한 코레일(전 철도청)은 3부리그 팀 최초 FA컵 우승에 도전하고, 내셔널리그도 ‘명예롭고 장렬한 피날레’를 소망한다.

FA컵 결승전은 11월 6일(대전), 10일(수원) 열린다. 이임생 감독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거나 눈물 젖은 사직서를 낼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기업이 운영하는 프로 스포츠팀’의 역할·기능·운영방식에 대한 고민은 계속돼야 한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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